엄마한테 직접 이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엄마, 엄마가 나한테 뭐라면서 재혼 한다고 했었는지 기억 나? 대뜸 밤에 전화해서는 “률아 엄마 결혼해.” 라고 이야기 했잖아. 망설임도, 장황한 설명도, 그렇다고 미안한 기색도 없이 그렇게 딱 한마디. 사실 나 그 때 많이 섭섭했어. 그리고 내가 결혼식이 언제냐고 물었을 때 그렇게 막힘없이 한 달 뒤의 날짜를 말하는 엄마가 많이 미웠어. 정확히 왜, 뭐가 그렇게 섭섭하고 미웠는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그랬어.
엄마 결혼소식을 듣고 정말 많이 울었어. 엄마는 몰랐지? 작년까지, 아니 올 해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을 꼽으라면 엄마의 재혼을 받아들이던 순간을 꼽을 만큼, 그 때 나는 정말 혼란스럽고 힘이 들었어. 엄마가 내 옆에서 영영 떠나가는 것 같이 느껴졌어.
엄마 그거 알아? 16살 때 이후로 나는 엄마랑 같이 살아본 적이 없었잖아. 내가 16살 때 내 발로 엄마 곁을 떠났지만, 나는 항상 엄마랑 둘이 살고 싶었어. 이모도 외할아버지도 동생도 없이 엄마랑 나랑 우리 둘만 살고 싶었어.
어쩌다가 한 번 주말에만 같이 있는 거 말고. 아침에 일어나면 당연히 엄마가 있고, 엄마가 있는 집으로 귀가를 하고, 엄마랑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자고, 엄마가 지겨울 만큼, 제발 좀 떨어지고 싶다고 생각할 만큼, 엄마한테 온갖 짜증을 다 부리고 싶을 때가 있을 만큼 엄마랑 살아보고 싶었어. 그런데 엄마가 결혼을 한다고 하니 이제 엄마랑 둘만 살게 될 날은 영영 없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던거야.
엄마가 결혼식 때 나한테 축가를 해달라고 했잖아. 사실은 그것도 너무 속상했어. 상처받은 내 마음은 하나도 몰라주고 거기서 노래를 해달라고 하다니, 엄마가 정말 미웠어. 사실 결혼식도 가기 싫었어. 엄마가 나랑 성이를 앉혀놓고 한 번이라도 진지하고 솔직하게 엄마의 속 마음을 이야기 해줬더라면 축가를 해줬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아. 근데 엄마는 별 일 아닌 것처럼 행동했어. 사실 지금도 정확히 뭐 때문에 그 때의 내가 ‘상처를 받았다’고 표현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어. 엄마가 나한테 무슨 설명을 했어야 했는지도 잘 모르겠어. 이건 앞으로 내가 풀어가야 할 숙제인건가 그런 생각을 해.
아무튼, 그 때 나는 분명히 엄마에게 상처를 받았었는데 그걸 겉으로 티 낼 수 없어서 그게 더 상처였어. 나는 엄마를 축하하는 척 했고, 하나도 섭섭하지 않은 척 했어. 하지만 나랑 성이는 결혼식에 가는 길부터 기분이 좋지 않았어. 엄마를 축하하러 온 많은 하객들 중 몇몇이 우리를 불쌍하게 보는 것 같았고 우리의 어깨를 만지는 손길이, 인사를 건네는 그 눈빛이 동정같이 느껴져 빨리 그곳을 나오고 싶었어. 그리고 외삼촌이 준 용돈을 받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조금 울었고 그래도 용돈을 받았으니 오길 잘했다며 서로를 위로 했어.
그렇게 엄마가 결혼을 하고 한참을 서운한 티 하나 내지 않다가 그 해 여름에 상주에서 함께 휴가를 보냈을 때. 엄마가 나랑 안자고 브래들리랑 자는게, 나는 그게 그렇게도 섭섭했어. 자려고 누웠는데 자꾸만 눈물이 나는거야. 엄마는 옆 침대에서 잘만 자고 있는데, 엄마 침대와 내 침대 그 사이가 너무 멀게만 느껴졌어. 브래들리와 함께 잠들어 있는 엄마의 침대에 나는 절대 못 올라갈 것 같은거야. 그래서 너무 슬펐어. 더 이상은 그 섭섭함을 숨길수가 없어서 그렇게 와앙 울어버렸어.
“엄마가 결혼을 해서 미워. 나도 왜 싫은지 모르겠는데 싫다고 말하면 안될 것 같아서 말 못했어. 근데 이제는 도저히 숨기지를 못하겠어. 엄마 미워. 엄마 미워..”
엄마도 나를 안고 울었지. 지금 생각 해 보면 분명 엄마도 나의 응어리 진 마음을 알고 있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어서 그냥 아무렇지 않은 척 하기로 했던 것 같아. 그렇지 않고서야 내가 그 말을 꺼내자마자 이런 말을 했을 리 없어.
“률아 엄마 미워하지 말아주면 안될까? 엄마 사랑해주면 안될까? 엄마도 결혼이 하고 싶었어.”
특별한 말도 더 없었지만 그냥 그 한마디에 내 마음이 다 풀어졌어. 참 이상하지? 엄마가 밉다고 말했는데 그 말을 뱉은 순간 엄마가 밉지 않아 진거야.
엄마 나는 이제 조금 알 것 같아.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행복을 찾아 떠났는지. 스물넷에 나를 낳고 30대, 40대를 지나며 눈물로 나를 키워냈을 엄마의 젊은 날을 위해 눈물을 흘릴 줄도 알게 됐어. 엄마가 엄마의 삶에 얼마만큼이나 솔직하고 열정적인 사람이었는지도. 그토록 치열하게 살아냈던 '강단형'의 삶을 내가 가슴 깊이 사랑하고 있어.
하지만 엄마, 내가 이 모든 것을 알았다 해도 말이야 나는 아직도 아기인 것만 같아. 엄마의 사랑이 그립고 엄마랑 같이 살고 싶어.
엄마, 내가 너무 많이 사랑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