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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녕 Dec 05. 2020

그래, 나 엄마 없다. 어쩔래?

내가 먼저 나의 약점 공개하기

  옛날이나 지금이나 이 말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닐 모양이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에 부모님이 이혼을 한 탓에 엄마와 떨어져 살며 ‘엄마 없는 애’ 소리를 지겹도록 들었는데, 25살의 나이에 엄마가 돌아가시는 바람에 지금은 진짜로 엄마가 없게 됐다. 


  작년에 엄마와 함께 <동백꽃 필 무렵>이라는 드라마를 보았다. 엄마는 초등학생 아이를 혼자 키우는 미혼모 동백이를 위해, 나는 한 부모 가정에서 ‘쟤 아빠 없대’ 소리를 10년 넘게 들으며 자라온 필구를 위해 울었더랬다. 올 해는 <부부의 세계>를 엄마와 함께 보았다. 엄마는 바람 난 남편을 둔 전적이 있기에 지선우에 100% 몰입을 했고, 나는 불우하고 불안한 이혼가정 자녀답게 준영이에게 완전히 몰입을 했다. 실제로 준영이처럼 살벌하게 방황을 한 전적도 있고 말이다. 필구와 준영이를 보며 옛날의 내 모습이 떠올라 그 작고 여린 것이 얼마나 불쌍하게 느껴지던지 나는 엄마한테 이런저런 훈계를 했다. 저런 상황에서 아이가 정서적 안정이나 찾을 수 있겠냐고, 아이가 삐뚤어지는 것에는 무조건 이유가 있고 그건 대부분 부모의 문제라고 단단히 못 박았다. 글로만 읽으면 진지하게 따져 붙인 것 같은데 그런건 아니었고 그냥 진담 반, 장난 반 핀잔을 준 것이다. 내 말을 듣더니 억울하다며 엄마가 물었다.     


‘그럼 부모가 어떻게 해야 되는데? 절대 이혼 안하고 무조건 참고 살아야 돼?’

‘아니 그건 아니지만.. 아 모르겠다. 너무 어려운 문제야.’

‘그럼 니가 이혼가정 자녀 대표로 그 부모랑 자식들한테 하고 싶은 말을 글로 써봐.’

‘음..나중에 써볼게..’     


  그래.. 언제 한 번 써 보려고는 했는데 이런 식으로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이야기가 갑자기 딴 길로 새는 것 같지만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별건가 싶은 생각을 요즘 한다. 엄마가 죽고 내가 엄마의 브런치를 가보와 유산으로 물려받아 이렇게 ‘이번에는 어떤 것으로 글을 써볼까?’ 하는 제법 작가 스러운 고민을 하고 있으니 엄마의 죽음이 내게 터닝 포인트가 된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앞으로 몇 편이 될지 모르겠지만, 감히 이혼 가정의 자녀들을 대표해 나의 이야기들을 풀어보려고 한다. 아, 할 말이 정말 많다!      


  서로만 보면 잡아먹을 듯이 미워하고 싸우는 엄마와 아빠 사이에서 나는 항상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엄마는 아빠 욕을, 아빠와 할머니는 엄마 욕을 했다. 나는 7살 때부터 양쪽에서 하는 말에 이골이 났다. 나는 엄마와 아빠를 둘 다 사랑하는데, 그런 말을 들으면 ‘어느 한 쪽을 꼭 미워해야만 하는 건가?’ 하는 생각에 정말 괴로웠다. 엄마랑 있으면 아빠가 보고 싶고 아빠랑 있으면 엄마가 보고 싶었는데, 솔직하게 엄마 혹은 아빠가 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면 양쪽 다 영 불편해했다. 특히 엄마가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떠났을 때 나는 밤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 울었는데, 아빠는 노골적으로 ‘너를 버리고 간 엄마가 왜 보고 싶냐’며 윽박질렀다. 그래서 나는 아빠가 잘 때 까지 기다렸다가 소리를 안내고 울었다.


  어느 날 우연히 소식을 전해 들었을 때 기분이 확 나빠지며 ‘그 새X는 죽었다고 생각하자’ 싶은 전 남자친구가 있다. 고작 2년을 사귀어도 그런데 몇 년을 지지고 볶아 이 꼴 저 꼴 다 보고 이혼 도장까지 찍은 사이에 예의를 차린다는 것이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엄마랑 아빠가 왜 그랬는지 이해는 된다. 하지만 그런 행동들은 분명히 아이들에게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행동이고 어른으로써 너무나 미숙한 행동이다. 만일 이혼을 생각하는 부모님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나는 우리 엄마 아빠처럼은 행동하지 말아달라고 꼭 당부하고 싶은 것들이 몇 가지 있다. 그리고 이혼 가정에서 자란 자녀가 이 글을 읽는다면 어린 날의 상처를 소환해 함께 치유해보자고 말하고 싶다. 이것이 내가 감히 이혼가정의 자녀들을 대표해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아빠 눈치가 보여 엄마가 보고 싶다는 말도 제대로 꺼내지 못했던 나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면 그 어린 것이 안쓰럽고 불쌍해서 미치겠는거다. 근데 또 희한한 것이 남이 나한테 안쓰럽다고 하거나 그 비슷한 눈길로 쳐다보기만 해도 기분이 와락 나빠지면서 두고두고 생각이 난다. 이건 나의 열등감과 피해의식이 맞다. 드러내고 싶지 않은 상처이며 나 스스로도 이것이 그리 자랑스럽지는 않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런 나의 상처를 이용해 우월감을 느끼고 싶어 하기도 했고, 기분 나쁜 충고를 하기도 했다. 

  이럴 때 엄마가 한 말이 있다. 내 약점을 내가 먼저 확 까보이며 괜찮은 ‘척’이라도 하다보면 속이 시원해지면서 진짜 괜찮아지기도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한다. 


그래, 나 엄마 없다. 어쩔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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