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의외의 Jan 17. 2022

수줍씨

part 2



허름한 기차역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은 여자가 두리번거리며 나온다. 수줍씨는 택시를 잡아탄다. 마지막 의뢰를 받아 든 날이다. 마지막을 기리며, 근사한 피날레를 위해 옷을 한참이나 골랐더랬다. 하얀 블라우스가 예뻐 보였지만 행여나 피가 튈까 빨간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남자친구 만나서 데이트 가시나 봐?” 별안간 백미러로 싸늘한 시선을 본 택시 기사는 민망해져 허허 웃는다. 페인트칠이 벗겨진 아파트에서 택시가 멈춰 서고, 수줍씨는 쪽지에 적힌 호수를 확인한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거울을 확인하며 머리를 정리한다. 경쾌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집 앞에 도착한 수줍씨는 초인종을 눌렀다.


정적 후, 인터폰에서 누구시냐는 소리가 들려왔다. “햇볕에 말려둔 게 여기로 떨어져 버렸네요… 실례지만 찾아가도 될까요?” 수줍씨의 요청에 현관문이 빼꼼 열렸고, 의뢰받은 사진 속 인물이 모습을 보인다. 멋쩍게 웃는 수줍씨를 보고 문을 조금 더 열어준 그는 일단 들어오라고 한다. “뭐가 떨어진 건데요?” 그는 앞장서 베란다로 향했고, 수줍씨는 구두를 또각거리며 들어온다. 순식간에 핸드백에서 사시미 칼을 꺼내 그의 등에 꽂았다. 쓰러진 그에게서 나온 붉은 피가 배란다 배수구로 흘러내려 간다.


현관에서 죽이면 피가 바깥으로 흘러나가니 금방 소란스럽다. 수줍씨는 화장실 세면대에서 손에 묻은 피를 씻어내고 집 곳곳을 뒤졌다. 그가 빼돌린 필로폰 12kg, 엑스터시 255정을 찾아 등에 칼을 꽂은 채 쓰러져 있는 그의 옆에 옮겨둔다. “치즈- 잘 안 보이네. 다시, 김치-” 그를 배경 삼아 사진 찍은 뒤, 사진과 함께 문자 한 통 보내고 집을 나선다. [정리 부탁]


택시를 잡기 위해 아파트 입구를 빠져나왔을 때, 수줍씨의 시야에 사진관 하나가 들어온다. 여권 사진이 필요하던 참에 그녀는 다가오는 택시를 지나쳐 사진관으로 발길을 돌린다. 사진관에 들어가니 사진사로 보이는 남자 한 명이 쭈뼛대며 일어나 인사한다. “여권 사진을 찍으려는데 바로 인화해 받을 수 있나요?”수줍씨가 묻는다. 그는 가능하다며 접수증을 건넸다. “작성 끝내시면… 저기 거울 앞에서 준비하고 계시면 됩니다…” 거울 보며 화장을 고치던 수줍씨는 원피스 소맷자락에 튄 핏자국을 본다. 빨간 원피스를 고른 본인의 선견지명에 웃음이 난다.


촬영이 준비되고 자리에 앉은 수줍씨. 렌즈를 응시하는데 사진사가 카메라를 보며 말한다. “사진은 편하게 찍는 게 가장 잘 나와요. 제일 사랑하는 무언가를 바라본다 생각하고… 렌즈를 바라봐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수줍씨는 사진사의 요구를 듣고 아무도,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뿐더러, 가당치 않은 그의 요구가 같잖고 우스워 웃음이 났다. 곧바로 셔터음이 몇 번 터졌고,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손과 ‘수고하셨다’는 그의 떨리는 목소리를 알아챈다.


의자에 앉아 사진 나오길 기다리는데 시선이 느껴진다. 사진사는 눈을 피하고 삐걱거리며 사진을 건넨다. “잘 나왔네요. 고마워요.”사진을 받아 들고 핸드백을 챙겨 나서다 잠시 멈춰 선다. 수줍씨는 선심 쓰듯 사진 한 장을 떨어뜨리고 사진관을 나간다.


매거진의 이전글 수줍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