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이크&알리고 치즈 감자, 통 로메인 샐러드, 가지 롤라티니
“준표 선배, 지후 선배의 파티에 초대받지 못한 자. 나에게 오라.” 겨울이 코앞까지 다가온 날, 고등학교 후배에서 사랑하는 동생으로 남은 그녀를 위해 홈 파티를 개최했다. 이에 앞서, 메뉴 구상부터 시작한다. 식전 빵과 샐러드 그리고 메인 디쉬 두 가지를 생각했다. 고기와 탄수화물은 스테이크와 감자로 미리 염두에 뒀다. 남은 한 가지는 케사디야(quesadillas; 토르티야 사이 치즈, 소시지, 채소 등을 넣어서 구운 멕시코 요리)가 유력 후보에 올랐으나, 가지 롤라 티니에 도전하기로 한다. 샐러드도 레시피와 드레싱이 다양하다. 그러다 며칠 전 블로그에서 흥미롭게 봤던 레스토랑 메뉴 ‘통 로메인 시저 샐러드’가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만족스러운 테이블을 구상하고 그다음, 음식의 조리 순서를 정했다. 한꺼번에 하려면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도 될 음식을 골라낸다.
차가운 요리인 로메인 샐러드부터 준비했다. 이 샐러드는 근사한 모습과 달리 단순한 레시피를 가졌다. 잘 씻어 물기를 제거한 로메인을 썰지 않고 통으로 올려 둔다. 냉장고에 굴러다니는 귤도 로메인 옆에 군데군데 놔줬다. 드레싱은 단맛 없는 플레인 요거트에 홀그레인 머스타드만 섞어 주면 된다. 비율은 대략 5:1 스푼이 적당하다. 톡 쏘는 머스타드의 맛을 좋아한다면 조금 더 넣으면 된다. 채소와 드레싱 소스는 그릇 채 밀봉해 냉장고에 넣어뒀다. 토핑으로 올릴 베이컨도 잘게 썰어 바싹하게 구워둔다.
식전 빵은 버터만 발라 먹어도 맛이 좋지만, 집에 남아 있던 아보카도와 토마토를 활용하기로 했다. 아보카도를 으깨고 방울토마토는 손톱 크기로 썰어 속은 파내고 과육만 넣는다. 양파도 같은 크기로 썰어 넣고 소금 한 꼬집, 통후추 적당히, 레몬즙 조금 넣어주고 섞어주면 ‘아보카도 과카몰리’ 완성이다. 식빵에 올려 오픈 샌드위치로 먹거나 그냥 퍼먹어도 부족함이 없다. 완성된 과카몰리도 그릇에 담아 랩으로 잘 밀봉 해 냉장고에 보관한다.
롤라티니(rollatini)는 이탈리아식 요리다. 글을 쓰느라 자료 조사하던 중 알게 된 사실인데, 이탈리아에서 이 요리의 이름은 인볼티니(involtini)라고 한다. 이래서 기록하는 과정은 유익하다. 거두절미하고, 가지를 길게 썰어 소금으로 간해준다. 가지에서 수분이 빠져나오면 키친 타올로 두들겨 닦아준다. 가지는 프라이팬에 구워주고 한 김 식으면 위에 치즈를 올려 돌돌 말아준다. 보편적으로 리코타 치즈를 올리지만 나는 모차렐라 치즈를 말아줬다. 가지 준비를 끝내면 오븐 그릇에 토마토소스를 넉넉하게 깔아준다. 시판 토마토소스를 사용하면 되는데 특별히 볶은 버섯도 같이 깔아줬다. 그 위에 돌돌 말린 가지를 얹어주고 그릇을 쿠킹포일로 감싸, 전원이 꺼진 오븐에 넣어뒀다.
소고기는 키친 타올로 핏물을 닦아주고 올리브유를 듬뿍 뿌려 소금과 후추로 시즈닝 해둔다. 스테이크에 곁들일 탄수화물은 단연코 감자다. 구운 통감자도 고려했지만 새로운 요리에 거리낌 없는 날이었다. 그래서 선택한 알리고 치즈 감자. 주인공 감자는 간편하게 전자레인지로 쪘다. 잘 익은 감자는 껍질 벗겨 큰 볼에 담아준다. 포크나 매셔로 뜨거운 감자를 으깨고 체에 한 번 걸러 준다. (체에 거르면 훨씬 부드러운 식감이 되니 번거롭더라도 꼭 걸러주는 게 좋다) 부드러워진 감자에 버터를 크게 한 덩이 넣어준다. 뜨거운 감자의 열기로 버터가 알아서 녹으니 문제없다. 소금으로 간해주고 한 번 더 잘 섞어준다. 농도를 맞추기 위해 생크림 혹은 우유가 필요한데 구비돼 있던 우유를 사용했다. 양은 농도를 봐가며 넣어주면 된다. 치즈를 양껏 넣을수록 감자가 모차렐라 치즈처럼 늘어난다. 고소한 맛을 좋아해서 소금을 소량 넣었더니 맛이 심심했다. 결국 매쉬드 포테이토가 완성됐다. 치즈와 소금에 각박했던 과거의 나를 후회한다. 적당히 짠맛을 올려주는 걸 추천한다. 어찌 됐건 완성된 감자는 큰 볼에 담긴 그대로 랩을 씌워 전자레인지 안에 넣어줬다.
해가 지고 ‘변, 비스트로’가 오픈했다. 먼저 식전 빵으로 캄파뉴(campagne)를 프라이팬에 구워줬다. 유럽에서 본 건 있어서 하얀색 면 보자기로 아기 속싸개 두르듯 빵을 품어줬다. 그다음, 냉장고에서 로메인과 드레싱을 꺼내 김장하듯 로메인 사이사이 드레싱을 발라 준다. 맨 위에 바싹하게 구워 준비한 베이컨 칩을 올려주고 통후추, 치즈를 그라인더로 갈아 올려주면 샐러드는 완성이다. 쿠킹포일로 싸 뒀던 롤라티니는 포일을 벗겨 타이머를 맞춘 오븐에 넣는다. 그동안 스테이크를 구워주면 된다. 스테이크 육즙이 섞인 기름에 통마늘도 튀기듯 구워줬다. 적당히 익은 스테이크는 바로 썰지 않고 포일로 감싸 레스팅(resting) 해준다. 육즙을 가두어 주는 과정이다. 레스팅 하는 동안 글라스 볼에 있던 감자를 전자레인지에 데워 그릇에 덜어둔다. 레스팅을 끝내고 썰어 둔 스테이크도 알리고 치즈 감자 옆에 플레이팅 해줬다.
분위기의 8할은 조명과 음악이다. 완성된 요리를 테이블 위에 세팅하고 초를 켰다. 스피커도 연결해 재즈를 틀면 분위기가 또 한 번 전환된다. 전에 가본 와인바에서 각자의 와인잔을 꾸몄던 생경한 추억이 생각나 글라스 펜까지 준비했다. 코스트코에서 사둔 화이트 와인 한 병을 고르고, 서툴게 와인을 개봉하며 홈 파티의 시작을 알렸다.
그녀의 리액션은 몸 둘 바 모를 정도로 컸다. 원 테이블 레스토랑의 셰프를 대하듯, 하나하나, 먹는 방법과 레시피를 물으며, 차려진 음식을 성심성의껏 먹어줬다. 빵 위에 아보카도 과카몰리를 올려서 한 입, 앞 접시에 로메인을 가져다 칼질해서 한 입 먹었다. 변, 비스트로는 전채요리 맛집이었다. 정작 메인 요리는 식어버려 원하던 맛을 끌어내지 못했다. 아쉬운 맛이 남긴 빈틈은 수다로 채우면 된다. 서로의 생각을 알아가는 대화 속엔 수많은 질문과 답이 오간다. 평소 에둘러 생각하던 것도 대답하다 보면 마음이 견고해진다. 흐물흐물하던 나를 단단하게 만드는 과정이다. 이날 우리 집에 솔솔 들어오던 겨울바람은 따뜻한 색을 가졌다. 이상하게 연말엔 주머니 속 불필요한 것까지 모조리 꺼내어 선물하고 싶어지는 몽글한 기분이 든다. 냉장고 속 재료를 모조리 꺼내 요리해 줄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다.
겨울은 해가 짧은 만큼, 밤이 계절의 주인을 자처하는 거 같다. 낮엔 날씨와 옷차림의 채도가 낮고, 밤이 되면 꼭꼭 숨겨 온 색채를 발산한다. 추위에 어깨가 아플 정도로 몸을 웅크리게 되지만, 그 행위는 ‘봄에 알을 깨고 나오기까지 품어주기 위함이 아닐까?’ 하는 바보같은 생각도 한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겨울은 찾아왔고 마음이 들뜨는 건 매한가지다. 이 순간을 숨김없이 꾸밈없이 만끽해야 한다. 봄이 와도 서운하지 않게끔.
나의 마지막 20대 겨울과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복하며
Merry Christma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