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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erim Park Nov 07. 2018

#23. Backpack Honeymoon

프랑스 생장 -> 스페인 론세스발레스_산티아고 순례길 Day 1

비장한 마음으로 시작하는 첫째날.

낮에는 기온이 37도를 웃돌더니 잘 때는 으슬으슬 추웠다. 호스텔에서 이불을 제공하지 않아 추위에 눈을 떴더니 내 몸 위로 타월이 덮여 있었다. 자는 틈에 단이 덮어 주었나 보다. 2층 침대에서 잤던지라 몇 시인지 알 길이 없어 더 자야 할지 일어나야 할지 몽롱한 정신으로 고민하고 있는데 밑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났다. 다들 어떻게 일어날 시간이라는 걸 알고 깨어나는 걸까. 학생 때부터 잠에 약했던 나는 중요한 일이 있을 때는 차라리 밤을 새웠다. 내가 제 시간에 일어날 거라는 믿음이 없기 때문에. 특히 잠 때문에 일본에서 비행기를 한번 놓치고 나서는 더더욱. 심지어 오전 10시 비행기를 놓쳤다..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주섬주섬 일어나 짐을 챙겼고 나와 단도 거기에 동참했다. 호스텔에서는 일찍 떠나지 않는 사람들의 잠을 방해할까 봐 6시 전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우리는 문이 열리는 시간에 딱 맞추어 가방을 들쳐메고 첫 번째 길에 나섰다.

어제오늘 무척 더울 거라는 얘기를 들은 터라 더욱더 일찍 출발하려고 노력했다. 땡볕 아래 배낭을 메고 걷는 것만은 절대 사양이다. 스무살에 국토대장정을 할 때도 해가 쨍쨍한 시간에 걷는 것을 피하고자 새벽 일찍 출발하고 정오부터 3시까지는 학교부지나 공터에서 낮잠을 잤었다. 아무튼, 오늘 최고 온도는 39도. 그리고 프랑스에서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피레네 산맥을 넘어야 하기 때문에 일정 중에 가장 힘들 거라고 한다. 물론 첫날이라 아직 말랑말랑한 근육이 적응되지 않아 힘든 것도 있겠지만.


지도를 다운받고 가이드 북을 사야 하나 고민했는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었다. 7, 8월이 성수기라 사람들 사이에 섞여 따라가도 되고 곳곳에 이정표가 있어 목적지 이름만 분명히 알고 있다면 길 잃을 염려도 없다. 우리는 가장 먼저 출발한 그룹 중 하나였는데 하나둘 우리를 추월한다. 한번 우리를 추월한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못했다. 하루종일.

유럽사람들의 가방은 가볍고 유럽사람들이 아닌 사람들의 가방은 무척이나 무거워 보였다. 우리도 짐을 줄인다고 줄여 11kg 정도를 만들었으나 물 튜브에 물을 넣으니 3kg 추가되어 14kg을 웃돈다. 단 가방 역시 만만찮다. 미련하게 왜 이렇게 짐을 많이 쌌는지 스스로가 원망스럽다. 변명하자면, 우리는 산티아고 순례길 후에도 3달가량 더 여행을 해야 하기 때문에 노트북이며 두꺼운 가을옷이 여러 벌 있었다. 이게 내 삶의 무게 인가 하는 한심한 개똥철학적인 생각을 하며 열심히 걸었다. 정말 열심히. 나는 정말 걷는다. 국토대장전을 때도 에이스 소리를 들었다. 단거리는 곰처럼 뛰지만, 장거리는 잘 달린다. 공사판에서 기본 2만 보씩 걸었던 경험도 오늘 걷는 데 도움을 주었다. 나는 이렇게 참아야 하는 운동을 잘한다. 숨 오래 참기, 오래 달리기, 오래 걷기. 미련하게 죽을 것 같을 때 까지 하면 된다. 죽지는 않을 거니까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는 거다.

오늘 걸을 때는 죽을 만큼 열심히는 아니고 적당히 단이랑 속도를 맞추어 걸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덥지 않은 날씨다. 첫날은 생장에서 론스발레스라는 스패인 도시까지 27km를 걷는다. 해발 1400km의 피에네 산맥을 오른다. 느낌상 오르막길 60, 평지 20, 내리막길 20정도? 오르막길을 걷는 내내 바람이 거세게 분다. 우리나라의 울창한 숲이 우거진 산과는 다르게 피레네 산맥은 맨머리라 바람이 그냥 몰아치듯 분다. 뜨거운 햇볕과 매서운 바람이 만나 땀은 흐를새도 없이 증발한다. 경치는 무척 아름다웠다. 말들과 양들이 곳곳에 보이고 새파란 하늘과 풀, 그리고 나무. 풀들이 바람 따라 사악 소리를 내며 파도처럼 일렁인다.

어제 마트에서 산 라이스 칩과 햄으로 아침을 대충 때우고 다시 걷고 걷고. 단은 운동을 안 한 지 너무 오래 돼서 많이 지치는 모양이다. 내 스피드로 걷다가 잠시 멈춰 기다리고 다시 걷고 기다리고를 여러 번 반복했다. 체격이나 국적, 성별에 상관없이 사람들은 제각각 자기 속도가 있는 모양이다.

걷는 도중 함께 멈춰선 사람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우리가 이걸 왜 하려고 했는지 회의에 잠기며, 망할 놈의 알배르게는 언제 나타나는지 눈에 불을 켜고 찾으며 4시쯤 겨우 도착했다. 우리가 오늘 머문 곳은 Refugede Peregrinos(12€). 생각보다 너무 깔끔한 시설에 놀라며 짐을 내려놓고 근처 식당에서 순례자 메뉴 저녁(10€)과 맥주 2잔으로 오늘 하루 끝.

내일부터는 좀 더 쉬워지기를.

뻥쟁이 트럭, 라이스칩, 그리고 첫 번째 알베르게


아 스페인 국경을 넘기 전에 음료를 팔고 도장을 찍어주는 트럭을 봤다. 목적지까지 1km 오르막길, 5km 평지, 5km 내리막길이라 쓰여 있서 고생끝이구나 했는데...뻥이었다. 오르막길을 한참이나 계속됐고 내리막길은 경사가 급해 오히려 더 힘들었다...뻥쟁이 아저씨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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