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Backpack Honeymoon

Carrion de los condes 산티아고 순례길 day 16

by Serim Park

*2016년 8월 3일 일기

오늘 목적지까지 가는 길은 두 갈래로 나뉜다. 강을 따라 걷느냐, 도로를 걷느냐. 각각 장단점이 있다. 강을 따라 걸으면 그늘이 있다. 단점은 1km 더 걸어야 하고, 걷는 도중에 한 마을만 지나며 표지판이 별로 없다는 것. 반면 도로를 걸으면 세 마을 정도를 지나지만 그늘이 없다. 오늘 일기예보를 통해 확인한 최고 기온은 35도. 당연히 우리는 강을 따라 걷는 길을 선택했다. 11시 넘어서 걷는 것은 피하고 싶어 정각 6시에 딱 출발했다. 전체 거리는 20km니 수월한 날이 될 거라고 기대하며..


아침을 먹으러 들린 카페에서 그리시라는 인도인과 길을 같이 걷기로 했다. 자기도 강을 따리 갈 건데 같이 가도 되겠냐고 해서 당연히 예스! 까미노에서 정말 보기 드문 인도인이다. 경제적인 여건이나 종교적인 이유로 거의 없어서인지 종종 영국인으로 오해받는단다. 그리시는 인도 남부에 사는데 남편과 합의하고 1달 동안 까미노를 결심했다. 돌아가면 남편이 휴가를 떠날 거라고 한다. 오호라! 좋은 방법인데!! 단이랑 나중에 아기 낳고 어느 정도 크면 우리도 저렇게 해 봐야지. 그리시는 무척 생각이 트인, 보통 인도인 같지 않은 여자였다. 정략결혼이 하기 싫어 집을 나갔고, 아기 갖기 싫어서 입양을 했다고 한다. 차분하게 이야기하기 좋은 상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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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걷는 도중에 아몬드를 까고 있는 아저씨가 이리 오라고 손짓을 한다. 가보니 깐 아몬드를 손에 쥐어준다. 이렇게 아몬드를 까서 우리처럼 지나가는 순례자들에게 나눠주고 있었다. 그리시가 너무 고마워 동전을 주니 아저씨가 한사코 거부하며 아몬드를 더 쥐어주신다. 귀가 잘 안 들리시는지 얘기를 해도 우리에게 눈길을 주지 않으신다. 아몬드 상자에는 크레덴셜 도장도 있었다. 이 분은 얼마간의 세월 동안 이렇게 도장을 찍어주고 아몬드를 나눠주셨을까. 어떤 사연이 있을까. 평생 알길 없는 의문을 가지며 행운을 빌어주는 아저씨와 악수하고 다시 길을 나섰다.


수월할 줄 알았던 길은 내 발 덕분에 무척 힘든 날이 되었다. 오른쪽 새끼발가락 전체에 잡힌 물집이 따끔거린다. 오른쪽 발뒤꿈치는 멍이 든 것 같은 아픔이 느껴지고 오른쪽 골반도 순간순간 찌르듯이 아프다. 전체적으로 오른쪽이 모두 문제다. 겨우겨우 도착한 마을.. 내일은 또 어떻게 걸을지.. 나아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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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을 먹고 돌아와 샤워를 하려고 누웠다. 식당에서 우리를 보고 타이완인이냐고 물었던 동양인 여자가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잠시 후 다른 여행객과 이야기하는 걸 본의 아니게 듣게 되었다. 일행이 있었던 모양인데 마을에 도착하고 싸워서 지금은 혼자란다. 싸운 이유는 알베르게 때문. 다른 여자분이 자기는 여기 머물기 싫다고 말싸움을 하다가 서로 휙 뒤돌아선다. 싸우려고 하면 이유는 얼마나 많은지.. 별 걸로 다 싸운다 참나.


체크인을 할 때, 수녀님이 6시에 노래 부르는 모임에 꼭 오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노래시킬까 무서워 갈까 말까 했는데 특별한 경험일 것 같아 시간 맞추어 왔다. 수녀님들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음악. 신은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주신 게 틀림없다. 세계 곳곳에서 모인 재능 있는 순례자들이 기타를 연주하고 노래를 불렀다. 특히 체코 여자애가 부른 노래는 너무 아름다워서.. 뭉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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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은 간단히 전자레인지용 빠엘라로 때우고 순례자들을 위한 미사에 참여했다.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우리를 위해 기도를 해주시고 특별한 별 모양 종이를 주셨다. 와중에 몇몇 사람들이 우는 모습이 보였다. 가슴에서 따뜻한 무언가가 느껴졌지만 지금 너무 행복한 나는 그 감정에 공감하지 못한 것이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 다 가슴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구나. 나는 단과 이 순간 한점 아픔도 없이 이렇게 행복한걸 평생 감사하며 나누며 살아야지. 혹시라도 서로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얼마나 슬플까.. 상상되지도, 상상하기도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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