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가 도대체 뭔지 모르겠다.
현대 요가와 고전 요가 간의 관계에 대한 물음이 나를 동국대학교 융합요가학과에 지원하게 만들었다. 나는 두 번의 요가 강사 과정을 수료했는데, 그 두 번의 과정 모두의 요가철학 파트에서 요가수트라에서 정리된 8지요가 체계에 대해 배웠다. 당시에는 아무런 배경 지식이 없으니 그것이 맞겠거니 생각했지만, 요가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왜 현대요가의 철학적 바탕이 요가수트라의 8지요가 체계가 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요가”라는 단어의 외형은 공유하고 있지만, 고전 요가와 현대 요가는, 내가 느끼기에,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인정하지만, 전혀 다른 종교인 기독교와 이슬람교처럼 전혀 다른 것으로 느껴졌다. 이 글은 그 둘의 차이점과 무관성에 대해 집중하기보다 그것의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남아 있을 일말의 관계성을 찾고 싶은 마음에서 출발한다.
대표적인 요가 학자 중 한 명인 마크 싱글턴의 경우, 현대 요가에 대해 “서구에서 발전된 초조교적인 현대 체육문화의 기법들과 토착적인 인도의 아사나 수련, 그리고 최소 비베카난다 시기 이후로 인도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영어로 이루어진 요가에 관한 다양한 담화들 사이의 변증법적인 관계에서 비롯된 결과물”이라고 말하면서 이것을 “초국적 영어권 요가(Transnational Anglophone Yoga)”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이 용어를 통해 현대 요가라는 용어를 대치하려고 시도했으며 이것이 “인도, 유럽, 그리고 미국에서 19세기 중반 이후로 나타나기 시작한 요가의 일정한 체계”로 정의했다.
현대요가는 네 가지 요소가 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1. 서구의 체육문화 영향
- 스웨덴식 체조, 보디빌딩, 여성 조화 체조 등이 인도 문화에 융화되며 요가의 체위 문화를 건강 증진과 신체 단련이라는 프레임으로 재해석하는 데 기여했다.
2. 서구 신비주의 영향
- 신사상, 신지학회, 오컬트, 뉴에이지 등의 문화가 오리엔탈리즘을 등에 업고 서구의 관점에서 인도 문화와 융합해 현대 요가를 단순히 신체 훈련이 아니라 영적 성장이라는 관점도 갖게 하였다.
3. 인도 민족주의 영향
- 식민지 시대에 영국인들은 인도인을 “무력한 민족”으로 폄하했으며 “강건한 기독교인”과 대비시켰다. 이러한 식민지 담론에 대한 반발로 요가 문화의 부흥이 일었다. 특히 신체적 훈련과 정신적 훈련을 민족적 자부심과 연결시키며, 서서히 요가가 개인의 수행이 아니라 국가적 민족적 자존심 회복의 수단으로 변화했음을 보여준다.
4. 서구 과학과 의학의 영향
- 스와미 쿠발라야난다와 스리 요겐드라 같은 인물들이 서구의 과학적 방법론을 받아들여 요가의 생리적 의학적 효과를 입증하기 위한 연구소를 설립했으며, 실험을 통해 요가를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운동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이것들의 융합으로 1910-20년도에 비로소 우리가 아는 형태와 닮은 최초의 현대 요가(현대 하타 요가)가 탄생한다.
고전 요가는 베다 전통에 뿌리를 둔 수련 방식으로, 파탄잘리가 집대성한 요가 수트라를 중심으로 발전했다. 고전 요가는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으로 정의되며 궁극적으로 해탈을 목표로 한다. 상키야 학파의 불이론을 철학적 배경으로 삼으며, 8지 요가(Ashtanga Yoga)라는 실질적인 수련 방법이 제시된다.
상키야 철학
세상의 모든 존재가 순수의식(Purusha)와 원질(물질적 원리, Prakriti)의 상호작용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설명한다. 다시 말해, 순수 의식이 원질과 만나며 지성과 자아의식 그리고 의식으로 전개되고, 지각기관, 행동기관, 미세요소와 거대요소까지 전개되어 세상을 구성한다고 설명한다. 요가수트라에서는 순수의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야말로 고통으로부터의 완전한 해방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한 수련 체계로써 8지 요가를 제시한다.
8지 요가(아쉬탕가 요가)
야마(도덕적 규율) / 니야마(개인적 규율) / 아사나(좌법의 훈련) / 프라티야하라(감각의 철수) / 다라나(집중) / 디야나(명상) / 사마디(삼매) 로 구성되어 있다.
이와 같이 고전 요가와 현대 요가는 수련의 목표, 방법과 그 철학적 배경에 이르기까지 “요가”라는 이름을 공유한다는 것 외에는 공통점이 없다. 그럼 이 간극이 왜 발생하였을까? 그 중간 과정에 하타 요가가 있다.
하타 요가는 15세기에 스와미 스와트마라마가 저술한 하타 프라디피카에 의해 체계화된 수행 방법론이다. 삼매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하지만, 육체를 등한시하는 여타 다른 수행 전통과 다르게 육체를 신성시하며 때문에 신체적 훈련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삼매와 요가수트라에 등장하는 삼매가 같은 상태를 정의하지는 않는다는 것이 중론이다.
요가수트라와 달리 베다 전통에서 출발한 것이 아니라, 비베다 전통에 뿌리를 둔다. 인도 전역에 퍼져 있던 고행주의 전통과 탄트리즘 전통, 나트파 전통 등이 융합되어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비베다 전통에서 출발한 하타 요가는 후에 브라만과 아뜨만의 합일을 추구하는 불이론적 베다 전통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하층 계층의 실천적 전통에서 시작한, 일부 잔인하고 일부 방탕하고 일부 자유롭기도 하고 해방적이기도 했던 하타요가의 원형이, 결국엔 체계화되는 과정에서 엘리트 계층의 입맛에 맞게 힌두 전통에 통합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타 프라디피카에 따르면, 삼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신체를 정화하는 방법, 신체를 안정시키고 명상에 적합한 상태로 만들어줄 수 있는 자세(아사나), 프라나야마라고 불리는 생명 에너지(프라나)를 조절하는 호흡법, 생명 에너지를 깨워내거나 유지하는 무드라와 반다를 훈련해야 함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현대 요가가 하타 요가를 바탕으로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비록 정밀하게 들어맞지 않을지라도 아사나와 프라나야마, 무드라, 반다는 모두 현대 요가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는 용어다. 하나의 차이가 있다면 현대 요가에서는 대부분 삼매를 목표로 수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상키야 철학은 인도의 오래된 철학 중 하나이며, 요가 학파의 이론적 틀이 되었다. 그러나 여러 한계점 때문에 후에 베단타 철학에 밀려 쇠퇴하게 되었다.
그 중 하나로 상키야 철학의 복잡성 때문이었다. 물질 원리가 되는 프라크리티와 순수의식인 푸루샤로 우주를 두 가지의 실재로 구분하는 이원론적 체계는 철학적으로 정교할 수는 있어도, 단순하고 통합적인, 소위 말해 이해하기 쉬운 철학을 선호하는 대중에게는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그에 반해 현재 힌두 문화에 기본 틀이 되는 베단타 철학의 브라만(우주적 정신)과 아트만(개인적 자아)의 동일성, 즉, 일원론은 간단하고 이해하기 쉬웠다. 게다가 대중들은 경전 외에도 각 지역의 신들을(비슈누, 쉬바 등)을 섬기고 있었는데, 상키야 철학의 무신론적 체계는 그들의 종교적 신화나 의식 등과 결합되기 어려웠다. 끊임 없이 융합하고 변화하는 유연성을 가진 인도 문화에서 상키야 철학이 힌두교 문화의 뿌리가 되는 베단타 철학은 자연스럽고 당연한 변화일 수 있다.
위의 도표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 요가와 현대 요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현대 요가에서 요가수트라를 설파하는 것은, 단순히 요가 지도자들이 그들의 종교철학적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히 결론을 내리기에는, 어쨌든 요가의 일말의 영성에 이끌려 요가 강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 나로 하여금, 이러한 철학적 논의는 단순히 학문적 추론이나 비판으로 끝날 수 없는 내면의 질문을 던지게 한다. 고전 요가와 현대 요가 사이의 단절과 연속성에 대한 논쟁은, 요가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요가를 통해 무엇을 추구하려 하는지를 깊이 성찰하도록 만든다.
현대 요가가 주로 고난도의 체위 수행(아사나)과 건강 증진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그것이 고전 요가의 영적 뿌리를 완전히 배제하거나 부정할 수 없다고 느낀다. 실제로, 요가 수트라에서 말하는 “마음의 작용을 멈추는 것”과 같은 명상 상태는 현대 요가에서도 여전히 -그 목표는 다르지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현대 요가와 명상을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요가수트라 – 하타 요가 – 현대 요가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서 아무것도 이어지고 있는 것 같지 않지만, “수련”이라는 행위만큼은, 최소한 그 단어만큼은 연속성을 유지하고 있다. 현대의 요가가 수련을 운동이 아니라 수련이라고 정의할 수 있느냐는 물음은 차치하더라도, 5,000년 전 인더스 문명의 가부좌 자세의 인장으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하나의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을 스스로 더 나은 상태로 변화하고 싶은 애씀일 것이다.
재외국민 2세가 뿌리에 대한 궁금증으로 제 나라를 찾아 돌아가듯이, 나 역시 그러한 과정을 거치고 있다.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궁금증은 많지만, 요가를 넘어서서 수련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내가 무엇을 추구하고 싶은 건지 계속 알아 나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