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강사가 되기까지 6
팀원들과 마지막 식사를 했다. 남는 사람도 있었고 떠나는 사람도 있었다. 남는 사람은 떠나는 사람의 불확실성을 응원하고 떠나는 사람은 남는 사람의 무운을 기원했다. 누구도 미래에 대해 뚜렷한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각자가 옳은 선택을 했다고 믿는 것이 최선이었다. 나조차 요가 강사를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인지, 단순해져만 가는 일상이 무료해서 도망가려고만 한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도통 알 수가 없었다.
얼마 만인지 모를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회사의 사정으로 잘린 모양새라 실업 수당도 받을 수 있었다. 대단치는 않지만, 해방감이 있긴 했다. 최종적으로 요가 강사가 되지는 못하더라도, 우선은 요가를 잘하고픈 마음이 있었다. 요가를 한다는 것 그 자체로도 즐거웠고 더 높은 단계로 올라가고픈 욕심도 있었다. 그래서 두 요가원을 오전·오후로 다녔다. 오전에 다니던 곳은 “요가일상”이라는 합정 근처 요가원이고 오후에 다니던 곳은 “지옴 요가”라는, 지금은 은평구로 옮긴 요가원이다. 내게는 요가를 함께하는 동료가 있던 것도 아니고, 정도를 알려줄 스승님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효과적으로 혹은 전통적으로 수련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기에 단순하고 무식하게 접근했다. 많이, 자주 하는 것이 그랬다.
요가 일상은 수업 소개에 어려운 말이 없어서 좋았다. 빈야사니 하타니 아쉬탕가니 하는 일반인 입장에서 의미를 제대로 알 수 없는 헷갈리는 말로 시간표가 꾸미는 대신, ‘아침 요가’, ‘점심 요가’ 등으로 수업을 안내했다. 그 지점에서 이 요가원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상냥함이 기반이라는 것을 얼추 알 수 있었다. 금액 안내나 회원권 등록과 결제 관련해서도, 몇 개월 등록에 몇 회권 이상을 사용하면 추가로 몇 주가 서비스 되거나 하는 복잡한 수식도 없었고, 직접 문의를 넣기 전까지 얼마인지 알 수 없거나 혹은 방문 상담을 해야 정확한 견적을 알 수 있게 되는 상술도 없었고, 오직 네이버 판매 페이지 안에서 모든 걸 해결할 수 있었다. 이 두 가지의 방향성만으로도 수업 내용이 어떨지는 크게 상관이 없어지게 되었다. 상냥한 진심으로 회원들을 대할 것 같았고, 실제로 수강해 보니 기대한 것과 일치했다.
지옴 요가는 당시 다니던 요가원 맞은편에 있었다. 건물 바깥에 매달린 모직 간판이 마음에 들어서 어쩌다 검색을 해봤다. 시간표에 특이한 수업이 있었는데, 월수금 오후 시간대가 통으로 ‘300주 하타 수련’이란 수업으로 채워져 있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지금껏 경험했던 요가 수업들과 다른 형태라는 것만으로 호기심이 생겼다. 300주라는 단어에서 어쩐지 도전 욕구도 일었다. 블로그 소개 글로 올라와 있던 “지옴요가에서는 하타요가를 바탕으로 몸과 마음을 조화롭게 다스리는 방법을 수련합니다. 내면의 평화와 자기 통제를 배우고, 삶의 깊이를 더하고자 하는 분들을 환영합니다.” 이라는 문구도 내 마음을 끌었다. 이곳에서 수련하면 요가가 내게 단순한 운동 이상이 된 이유를 알 수 있을 것도 같았다.
내 생에 다시 없을 여유로운 나날이었다. 아침마다 직장인들과 만원 지하철을 뻔뻔하게 나눠타고서 요가원에 갔다. 오전에는 상대적으로 땀을 더 흘릴 수 있는 지옴 요가를 했고 점심에는 요가 일상에서 가벼운 요가를 했다. 직장인들이 점심을 먹고 회사로 돌아갈 때쯤 나는 집으로 가는 지하철에 올랐다. 돌아오는 지하철에선 언제나 앉을 수 있기에 좋았다. 별로 하는 것도 없는데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이보다 따뜻할 수 없겠다고 생각한 장갑이 어느새 바람이 새는 성긴 장갑이 됐고, 롱패딩이 없이는 한시도 바깥에 나갈 수 없었다. 지하철역에서 요가원까지 가는 공유 킥보드를 탈 수 없을 만큼 한기가 돌았고 추위에 밀려 요가원을 빼먹는 날도 종종 있었다.
그래도 그 기간 동안 내 몸은 꽤나 달라졌다. 요가 수련을 따라갈 수 있는 체력과 유연성이 얼추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아래로 숙일 때 손끝도 닿지 않던 몸이 어느새 어렵지 않게 손바닥이 매트에 닿았으며, 10초도 버티기 힘들던 헤드 스탠드가 어느덧 10분까지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다. 특히나 헤드 스탠드는 내게 다른 세계를 열어주었다. 몇 초도 버티기 어려웠던 자세가 이제는 마음먹은 대로 오래 유지할 수 있게 되니, 거꾸로 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그 독특한 경험이 묘한 해방감으로 다가왔다. 같은 사물이 눈앞에 놓여 있는데도 바로 보는 것과 거꾸로 바라보는 것은 전혀 다른 감각이었다. 평소에 바라보는 현상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것인지 알 수 있었다.었고 보현내가 평소에 바라보는 현상이 꿀눈이 자세를 유지하는 동안만큼은 일상의 복잡한 생각들이 모두 멈추고, 오로지 호흡과 균형에만 집중하는 순간이 찾아왔다. 요가에서 흔히 말하는 현재에 머무는 시간이 내게도 발생했던 것이다. 는 않았지만, 는조부뜻해지고 뜻
단 하나 문제라면 요가를 조금 더 잘해질수록 더 많이 잘하고만 싶어지는 조급한 마음에 있었다. 다리를 쭉 뻗고 똑바로 앉지도 못하던 몸뚱아리에서 손을 뻗어 발바닥을 잡을 수 있게 되었는데도, 나는 그만큼의 성취를 만끽하기보다 발 너머에서 손깍지를 잡지 못하는 것에 초조함을 느꼈다. 심지어 옆에서 수련하는 타인의 몸과 내 몸을 비교하며 불안감에 휩싸이기까지 했다. 내가 한참을 수련해도 완성되지 않는 자세를 단번에 해내는 사람을 볼 때면 부러움과 초조함이 들었다. 더 별로인 점은, 나보다 유연성이 떨어지거나 자세가 불안정한 사람을 발견했을 때 느끼는 그 미묘한 안도감이었다. 그 순간만큼은 내가 누군가보다는 나은 것 같아 기분이 나아지다가도, 그런 비교 자체에 의존하는 내 모습이 참 찌질했다. 뭔가를 즐기기보다 입증하려 들고 있었다.
요가가 단지 몸의 수련만이 아니라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요가와 명상을 많이들 깊게 연결해서 설명하지만, 와닿을 만큼 체험한 적은 없었다. 요가 강사를 하겠다고 일도 그만뒀고, 실업 수당은 6개월이면 끝나니, 그 전에 요가 강사라고 불릴 만큼의 몸을 완성 시키고 싶었다. '요가 강사의 몸'을 정의하지도 못했으면서 그랬다. 자유롭게 팔 균형 자세들을 구사하는 것이 요가 강사의 자격인 것도 아니고, 입이 떡 벌어지게 뒤로 젖혀지는 몸이 요가 강사의 자격도 아니었는데 그때는 그런 조바심이 일었다. 그래서 다른 운동들도 찾아보기 시작했다. 원하는 요가 자세를 완성하기 위해서 지름길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