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개나소 10화

어쩌다 퇴사

요가 강사가 되기까지 5

by 이해와

자기 몫을 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부모님의 등골을 거의 핥아먹기까지 하며 돈 천만 원 우습게 드는 단편 영화를 여러 번 찍거나, 최소 학점 평균을 맞추지 못해서 국가 장학금 혜택을 받지 못하거나, 졸업 학점이 부족해 추가학기를 듣거나, 그러는 와중에도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피시방에서 밤을 새우거나, 그런 짓들의 결말로써 구로디지털단지 앞에서 비관의 눈물이나 흘리던 때를 지나서, 사람 구실이라는 것을 제대로 해보고 싶었다. 장편 영화 제작 지원에서 탈락하던 내 마음은 그래서 좌절이 아니라 홀가분이었다. 운이 좋게도 일이 주어졌고, 그 일은 어쩌면 내 인생에서 얻을 수 있는 자리 중에 가장 나은 선택지였을 것이다. 좋은 동료들, 수평적인 조직 분위기, 자율적인 업무 환경, 내가 바라던 모든 것이 있었다. 출근하여 일을 하고, 퇴근하며 맛있는 걸 먹고, 친구들을 만나 근황을 나누고, 사이사이 요가 수련도 하고, 사고 싶은 것들을 고민 없이 사고, 그렇게 지내는 동안 카드 청구서가 도착하면 통장에서 자동이체가 되고도 여전히 많은 돈이 남아 있고. 내 삶의 어떤 때보다도 풍족하고 안정된 나날이었다.


그러니까 회사를 그만둘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요가 강사가 되고 싶다고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나도 카페나 차릴까 봐”, “퇴사하고 유튜브나 해야지” 정도의 마음가짐이었다. 아니, 그 정도의 마음가짐이어야만 했다.


미팅 한 번 잡는 것도 정신이 없던 시기가 지나가고, 업무에 어느 정도 적응했을 무렵 나와 다른 사람들, 특히 콘텐츠 팀의 팀원들과 내가 같은 온도가 아니라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들은 이 서비스의 흥망과 자신의 운명을 같이 하는 것마냥 일에 열정적이었다. 자발적으로 야근을 하고 재택근무를 반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말에도 때때로 출근했다. 나야 단순히 퇴근했다가 출근했을 뿐인데 많은 게 달라지고 진행되어 있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리고 그런 몇몇의 열정에 점화된 다른 인원들도 생겨나며 회사 분위기는 점차 달아올랐다. 누구 한 명도 억지로 일하지 않았다. 나 역시 억지로는 일하고 있지 않았지만, 그 열기 속에서 감화되지 않고 있는 것은 나밖에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들 이어달리기를 하고 있는데 나 혼자만 관중석에 앉은 구경꾼이 된 것 같았다. 직장 동료는 내게 모든 사람이 같은 정도로 일에 열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그 말은 당연히가 위로가 되면서도 씁쓸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짧은 시간 동안 나는 점점 더 흥미를 잃어갔다. 최소한의 책임만 지려고 했다. 서비스 오픈이 가까워져 옴에 따라, 그 외양이 갖춰지고 채워 넣어야 할 내용물이 정리되었고, 내가 그리고 우리 팀이 할 일은 머리를 쥐어짜 내는 회의도, 발로 뛰는 시장조사도, 창의성을 쏟아내야 하는 콘텐츠 기획도 아니고, 모니터 앞에 하루 종일 앉아 기계적으로 편집을 반복하는 것이 일의 대부분이었다. 내게 참을성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요가 강사를 하겠다고 입 밖에 꺼내지만 않았다면, 지금 하고 있는 일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발견해내지 않았더라면, 안정적인 삶의 모습을 유지해 나갈 수 있었을 것이다. 반쪽짜리 아쉬탕가 수업도 가쁜 숨으로 겨우 따라가는 주제에, 앞서 여러 차례 말했듯 나도 할 수 있는 만만한 일이라고 생각해 버린 탓에, 존재하지 않는 길이 실제로 있다고 생각해 버렸다. 요가 강사의 한 달 수입이 어떻게 되는지, 내게 강사로서의 경쟁력이 있기는 한지, 요가 강사의 삶이 어떤 형태인지 아무 정보도 찾아볼 생각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 현실에 놀라 뒷걸음질 치게 될까 봐, 그래서 지겨운 이 일을 계속해야 될까 봐 모른 척했을지도 모른다.


퇴사야말로 내게 정말 맞는 선택인지 여전히 확신은 없었다. 어렵게 얻은 사회인의 지위를 포기하기엔, 그것이 주는 안정감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평생 결핍되어 있던 것이었다. 수능을 세 번 보느라 대학 생활도 늦었고, 영화를 한다고 깝죽거리다가 사회생활도 이미 늦어 있었다. 여기서 한 번 더 헛짓거리를 하다가는 영영 사람구실이라는 노선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었다.

결정의 기회는 내가 아닌 외부에서 왔다. 코로나가 전국을 휩쓸던 것이 영향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회사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투자사들이 새로운 투자들 망설이고 있었고, 수익화 모델이 명확지 않던 회사 자금은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회사의 많은 사람들이, 아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선택의 기로에 섰다. 미래를 보고 몇 달간의 무급 생활을 할 것인지, 이직을 할 것인지. 전자에는 고액 연봉 인상이 약속되어 있었다. 몇몇은 남기로 했고 몇몇은 떠나갔다. 어떤 선택을 해도 탓할 사람은 없었다. 글을 쓰는 이 시점에는 그때 남았어야 했다고 약간의 후회를 하고 있긴 하지만, 당시의 나는 내가 운이 정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양갈래 길 앞에서 고민하며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사이 길 하나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가뿐한 마음으로 퇴사를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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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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