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강사가 되기까지 4
구직활동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 영화 작업을 마치고 남은 몇 달의 시간 동안 장편 시나리오를 하나 썼다. (그 시간 내내 열과 성을 다해서 모든 힘을 쏟아부었다는 뜻은 아니다) 그때만 해도 영화에의 꿈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며 초고를 열심히 수정해서 제작 지원을 받아야지. 제작 지원을 받으면 회사를 그만두고 다시 영화를 해야지. 영화가 잘되면 나도 영화인(의 정의는 모호하지만)으로 먹고살 수 있겠지. 뭐, 그런 생각을 했다. 마침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강원영상위원회에서 주관하는 장편영화 제작지원 프로그램이 있었다. 경쟁률 낮은 강원도 출생이라는 점을 감사히 여기며 지원했고, 최종 면접에까지 올랐다. 춘천 역사 앞은 변한 것 없이 휑했다.
그렇게 최종 면접이 끝나고 펑펑 울었다. 강원영상위원회 건물에서 춘천역까지는 도보로 10분 정도 소요되는 거리인데, 그중 4분 정도의 지점까지 펑펑 울었다. 울음의 기미는 면접장에서 마지막 발언을 할 때쯤부터 시작되었다. 면접관 중 한 분이 좋은 말씀을 해주는 동안, 눈을 깜빡이면 곧바로 흘러내릴 정도의 물이 아래 눈꺼풀에 고여 있었고, 나는 나오면서 '감사합니다.' 대신에 '그스흔니다'라고 말을 흐리며 뛰쳐나왔다.
마침 길에 사람도 없겠다, 나는 실컷 울었다. 눈물의 이유를 당시에는 알 수 없었다. 슬퍼서 운 것은 아니었다. 갱년기도 아니었다. 나 스스로도 당황스러운 경험이라 원인이 무엇일까 후에 고민해 보았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의 마음가짐을 떠올려봤다. 일 자체가 삶의 목표는 아니었고 일을 하면서 영화를 하길 바랐다. 안정적이고 균형적인 환경 아래에서 돈을 벌고, 여분의 시간을 이용해 괜찮은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싶었다. 그러나 구직에 성공한 뒤 시나리오 파일은 한 번도 열리지 않았다. 여자 주인공 이름이 가물가물했다.
5분 내외의 스피치를 준비했다. 태어나서 했던 어느 발표에서도 준비한 발표문을 외운 적이 없었다. 그러니까 이 기회가 소중하다는 걸 나 역시 알고는 있었다. 나름의 절박함이었다. 그러나 이 스피치가 상정한 시나리오는 내가 실제 제출한 시나리오와 달랐다. 실제 시나리오는 텅 비어 있었지만 스피치 속의 것은 옹골찼다. 그 간극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운이 좋으면 들키지 않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설령 들켜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탈고 과정에서 치열하게 그 빈 동공을 채워나갈 거니까(라고 마음먹었었다)
⠀
심사위원 나리들은 정확히 그 빈 지점에 대해 질문했다. 그것이 울음의 첫 번째 원인이었다.
옹골찬 시나리오를 갖고 있는 척, 영화를 찍을 수 있는 실질적 역량을 갖고 있는 척 떠들었지만 사실 허풍선이었다는 것이 질문 두세 번만에 들통이 나버렸다. 싸구려 트릭이었다. 너무 수치스러운 나머지 코난의 시계 모양 마취총이라도 맞고 싶었다.
⠀
울음의 두 번째 원인은 타임 패러독스 때문이었다. 나는 실제로 후회스러운 일이 있을 때마다 타임머신을 종종 탔는데, 결과는 물론이거니와 과정이 바뀌는 경우도 거의 없었다. 대표적으로 탔던 타임머신은 수능 타임머신이 있는데 세 번의 수능을 치르는 동안 나의 성적은 오르지 않았다. 재수강 타임머신 중에는 '자아와 명상' 타임머신을 1, 2 합쳐 여섯 회 정도 탄 경험이 있다. 이번 경우엔 타임머신을 타기 전에 여섯 달의 시간으로 미리 시뮬레이션을 돌려보았는데, 일생일대의 바라마지 않던 기회가 예정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퇴근 후에 잠들기까지 미드 프렌즈를 마지막 시즌까지 달리거나, 피시방에서 돈을 주고 패배를 얻는 경험을 반복하든가, 롤이라든지 하스스톤이라든지 나 대신 게임을 해주는 유튜브를 온종일 보든가, 하면서 얼마 없는 시간을 낭비했다. 그것은 실제와 같았고, 나의 타고난 그릇이 딱 이 정도의 성실성과 이마만큼의 게으름으로 빚어졌다는 것을 타임패러독스를 통해 깨달았고, 그 깨달음 때문에 서러워 눈물이 났다.
세 번째는 영화를 하는 것이 더 이상 재밌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도망치는 건 부끄럽지만 도움이 된다는 건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내가 진정으로 영화를 하고 싶었다면 사실은 구직 활동 따위는 하지 않아도 괜찮았을 것이다. 최소한으로 먹고살 수 있을 만큼 버는 아르바이트를 찾아서 글을 쓰든 연출팀으로 일을 하든 뭐라도 하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일단 미래에 대한 무대책을 ‘영화를 하고 있으니까 괜찮다 ‘라며 도망쳤고, 무직의 불안함으로부터 도망쳤고, 평범한 직장인이고 싶지 않은 허영을 ’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나‘를 통해 도망쳤다. 따지고 보면 친구들과 지지고 볶던 그 경험이 즐거웠던 거지, 영화를 만들어내는 모든 과정이 즐거웠던 것 같진 않았고, 특히 영화를 통해서만 꺼내야 했던 마음의 소리는 어느 순간부터 거의 들리지 않았다. 한마디로 재미를 상실한 지 오래였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 눈물이 났다.
탈락 발표를 확인하고 당연히 아쉽고 마음이 아팠지만, 동시에 당연히 내 몫이 아니라는 것도 너무나 잘 알았다. 내 몫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