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가 강사가 되기까지 3
요가 강사라는 직업을 만만하게 봤던 건 맞다. 몸매만 좋다면 개나 소나 할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이유로 필라테스 강사도 만만하게 봤던 것도 맞다. 요가 강사를 하고 있는 지금까지도 왜 필라테스와 요가가 비교 선상에 있는지 잘 이해는 가지 않지만, 과거의 나 역시 그 두 개를 같은 선상에 놓고 바라보았다. 요가를 좋아하기 시작하니 내 인스타그램 피드에 요가 지도자 과정 광고가 여럿 떴고, 대부분 3개월 정도의 기간이면 취득할 수 있었다. 마찬가지로 필라테스 광고도 그렇게 떴고 그것 역시 3개월이면 가능했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광고에 등장하는 여자 강사는 선망받는 몸매였다. 내 주변에는 오랫동안 각종 시험을 치른 친구들이 많았다. 그중 단 한 명도 1년 이하의 시간으로 합격한 사람은 없었다. 그들의 외모는 그들의 직업에 아무 상관이 없었고, 오로지 그들이 들인 노력과 그 결과인 전문성으로만 시험의 합격 여부가 결정되었다. 그런 사람들이 곁에 꽤 존재해서인지 요가 강사가 만만해 보이지 않을 수 없었다.
추가적으로 그런 것도 있었다. 내가 태권도, 유도, 복싱, 마라톤 등의 강사가 되고 싶다면 최소한 초등학교에서라도 선수를 했어야 그 최소 자격이 주어지는 느낌이라면, 요가는 엘리트 스포츠가 아니었다. 유년기부터 요가 국가대표를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사람은 없는 것이다.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하면 언젠가 따라잡을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요가 필드에서 아쉬탕가 수업을 처음 들은 후 그 생각이 바뀌었다.
수업을 시작한 지 채 십 분도 안 됐을 때부터 헐떡이던 숨이 수업이 끝나는 순간에는 꼴딱이기까지 했다. 대충 하라는 선생님의 말에, 충분히 대충 하고 있음에도, 연이어 계속되는 동작들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호흡 카운트를 말도 안 되게 길게 세는 선생님에 대한 분노와 힘들다는 인식 말고는 아무것도 머리에 남아 있지 않았다. 마시기도 전에 날숨이 뛰쳐나오려고 했고, 팔다리는 내 마음같이 움직여주지 않았다. 빈야사라고 불리는 동작이 사이사이 반복되었고, 그게 나를 미치게 했다. 땀이 흥건하게 고여 손발이 미끄러지는 게 오히려 다행이었다. 미끄러짐을 핑계로 동작을 멈출 수가 있어서. 그렇게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도 모르게 수업은 끝이 났고, 사바아사나라고 불리는 마지막 휴식 자세에서도 심장 박동은 가라앉을 줄 몰랐다. 그때 선생님이 한 말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 터질 것 같은 심장 박동도 눈을 감고 기다리면 언젠지도 모르게 어느새 차분해져 있을 거라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영원히 벅찰 것 같던 숨도 짜증도 눈치 못 챈 사이 어느 순간 조용히 잦아들며,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이 찾아왔다.
가방에 차마 넣지도 못해서 손에 땀에 젖은 옷을 들고 나오며, 이 길을 직업으로 삼는 것은 단지 3개월 만에 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어찌나 멀던지.
그렇게 멀어진 요가원과의 거리는 다시 잘 좁혀지지 않았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도 있다. 좌절을 토대 삼아 딛고서 점차 높은 곳으로 올라가는 사람. 정상까지 오르는 등산로가 곧은 오르막으로만 되어 있지 않듯이, 실패가 그저 과정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 주변에서 많이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가끔 목격한다. 반면 나의 경우에는 정상까지 단 2킬로미터가 남아 있다는 표지판을 보더라도 다시 찾아오는 내리막길에 그다음 오르막을 오를 힘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요가 수업에 참여할수록 요가 강사의 자격으로부터 점차 멀어지는 것만 같은 느낌. 나는 서서히 게으른 사람이 되어 갔다. 매일 요가원에 오겠다는 등록 순간의 호기는 몇 달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내세울 핑계는 너무 많지. 바빠진 회사 일도, 불편한 교통도, 피곤한 컨디션도 모두 꼬투리 잡을 수 있었다. 밥 먹으며 의미 없게 나온 대화 중, 아직도 요가하세요?라는 물음에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이미 요가 강사를 하고 싶다고 떠들어재껴 둔 이후였기 때문에 그랬다. 나는 또 도망가고 있는 걸까? 대체 무엇으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