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중 개나소 07화

백화점과 청담동의 공통점 - 무섭다

요가 강사가 되기까지 2

by 이해와

백화점과 청담동의 공통점, 무섭다. 첫 요가원에 대한 기억이 안 좋았기 때문일까? 요가원에 선뜻 갈 수 없었다. 그곳은 왠지 금남의 구역일 것만 같았기에, 요가를 하는 남자라는 존재 자체가 어쩐지 음흉한 기운을 풍기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남성 친화적인 인프라와 문화가 있는 수많은 운동을 제치고서 요가라니. 좋지 않은 시선을 받을 것 같다는 것이 망설임의 지분에 어느 정도 기여하고 있었다.


순전히 기분 탓만은 아니었던 게, 구파발에는 남자를 받아주는 요가원이 없었고, 잠실의 어느 요가원에서는 나를 포함한 남자 회원을 맨 앞줄로 이동시키기도 했다. 뒤에 있으면 앞사람 빵댕이라도 훔쳐볼까 봐 그랬을까? 그런 게 불편했으면 남자 회원을 받지 말 것이지. 그들이 빵댕이 노출에 거부감이 드는 것처럼, 나 역시 맨 앞줄에서 남자라는 이유로 본의 아니게 주목받으며 쉬운 동작마저도 헤매는 꼴을 보여주기 싫은 건 마찬가지였다. 부당하다고 생각했지만 당연히 저항하지는 않았다. 그런 것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건을 기억하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이 글을 쓰고 있지도 않았을 것이고 요가를 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그런 건강한 사람이라면.


그래도 방구석 요가가 지겨워지는 참이었다. 요가 애플리케이션에는 다양한 선택지, 예를 들면 빈야사·하타·아쉬탕가·힐링 등이 있었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속도나 지속 시간 등의 차이만 있을 뿐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끔 등장하는 아주 어려운 동작들 몇 개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따라 할 수 있있고(착각이다), 그러다 보니 '이제 나는 중급자다'라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 슬그머니 마음 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나의 추구미는 언제나 무던한 사람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까다롭다. 네이버 지도를 켜 회사나 집 근방의 요가원을 하나하나 눌러보았다. 홈페이지나 인스타그램이 도로에 뿌려진 전단지 같은 곳은 가기 싫었고 곰탕의 효능 -노화 예방에 탁월하며 눈이 맑아지고 혈액 순환에 도움이 됨- 같이 요가를 만병 통치약인양 홍보하는 곳도 가기 싫었다. 강사가 수업 준비보다 외모를 뽐내는 것에 더 치중하는 것 같은 곳도 가기 싫었고 플라잉 요가나 바레 같이 여러 수업이 섞여 있는 곳도 정통성이 없어 보여 가기 싫었다. 설명이 너무 없는 곳도 가기 싫었는데 그렇다고 설명이 아예 없는 곳이 가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 외에도 그냥 안 땡기는 곳, 왠지 느낌이 별로인 곳 등등을 모두 제외하고 나니 근처에 갈 수 있는 요가원은 하나도 없었다.


그러다 누군가 추천해 주어 자이 요가라는 곳을 알게 되었다. 규모가 꽤 컸고 자기네 전통에 자긍심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청담이라는 위치. 그건 내게 어려웠다.


나는 백화점이 무섭다. 그 위압감이 상당하다. 내가 백화점 내에서 그나마 버틸 수 있는 곳은 푸드코트 정도밖에 없다. 미디어가 아니었다면 알지 못했을 다양한 외국어 이름의 브랜드들. 나에게 관심 없는 것을 알아도 괜히 신경 쓰이는, 날카롭도록 깔끔하게 차려입은 그곳의 직원들. 고급으로 도배된 공간에서 나는 왠지 하급 인간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입학 통지서도 없이 호그와트로 들어가 버린 머글의 기분이랄까. 내게 청담동은 그런 공간이었다. 행정동 계의 백화점. 나는 갈현동이나 진관동이 어울리는 사람인데.


하지만 그냥 갔다. 일단 회원을 성별의 잣대로 재단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였고, 실존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는 나만의 기준에 맞는 요가원은 백날 찾아봐야 어차피 없을 것이었다.


따뜻한 우드톤의 인테리어가 눈에 띄는 곳이었다. 차분하고 정돈된 공간이 예상보다도 더 아늑한 느낌을 주었다. 인포데스크와 휴게 공간 그리고 수련실 두 개가 각각 있는 넓은 실내도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안내부터 수련까지 체계적이었다. 수련실은 어디인지, 옷은 어디서 갈아입는지 먼저 물어볼 필요가 없었고, 내 신체적 불편함에 대해서 먼저 말할 필요도 없었다. 요가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그 분위기가 좋은 의미로 상업화된 형태로 형성된 곳이라고 생각했다. 돈을 쓴다면 이런 곳에서 써야겠다는 느낌.


물론 나는 이곳에 돈을 더 쓰지는 않았다. 출퇴근 동선과 맞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금액적으로 부담되기도 했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로는 이곳이 너무 잘 정돈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업 역시 그랬다. 흔들리지 않는 목소리와 군더더기 없는 설명, 매끄럽게 진행되는 수업이, 그 자체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지만, 너무 정제된 것 같은 그 느낌이 어딘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었다. 다른 요가원을 찾아야 했다.


꼭 맞는 요가원을 찾고 싶었던 건 사실 첫걸음을 내딛기 어려워서 내세운 핑계일 뿐이었던 것처럼 다음 요가원을 고르는 것은 쉬웠다. 동선에 맞는 동네를 골라, 적당히 괜찮은 곳으로 골라 수업을 들었다. 요가 필드라는 곳이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샤워실이 있다는 것이었다.(물론 등록을 마치는 시점까지 샤워를 하고 나온 적은 없다) 하타 요가를 체험 수업으로 신청했는데, 지금까지 했던 요가들과 스타일이 많이 달랐다. 인내심의 한계지점까지 한 동작에 오래 머물러 있었다. 나보다 여리여리한 사람들이 어떻게 나보다 오랫동안 그 자세를 버틸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처음 해보는 자세도 몇 가지 있었는데 그중 대표적으로 ‘우드르바 다누라사나’라고 불리는 거꾸로 된 활 자세였다.



마찬가지로 나보다 얇은 팔뚝을 가진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 몸을 들어 올릴 수 있는지, 그곳에서 30초 같은 다섯 호흡을 버티고 내려오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이해할 수 없음은 내게 공포가 아니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고, 바로 등록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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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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