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림인의 생활, 그리고 머니머니해도 중요한 머니
- 크게 정신적, 육체적 스트레스 없이 비교적 안정적인 소득을 원하는 사람
- 캠핑, 하이킹, 낚시, 수영, 사냥, 스키, 스노우보딩 등 야외 스포츠를 사랑하는 사람
- 남들이 보지 못하는 곳을 보고 싶은 탐험가 정신이 있는 사람
- 몸에 흙 묻히고 상처나고 그런 거 괜찮은 사람
-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생활을 원하는 사람
- 상사 안 보고 자유롭게 일하고 싶은 사람
- 사무실 생활이 답답하고 지겨운 사람
- Tech disruption이 싫은 사람
- 자연과 동물들에게서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
- 운전 면허는 필수! 안전 수칙은 금같이
한정된 회사에서 짧은 경험이지만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한 적성, 선호들을 적어보았다. 어떤 일의 장단점은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에 이렇다 저렇다 하긴 어렵지만.. 대략 감이 오다시피 길이 없는 오지에 가까운 숲속에서 이동하는 게 일의 큰 부분이기 때문에 체력 관리와 자연 좋아하고 좀 터프할 수 있고 그런 게 중요한 것 같다. 그러나 힘이 세야 한다거나 엄청난 신체 능력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고 일하면서 적응되는 것이기 때문에 특별히 어디 아픈 데가 있는 게 아니라면, 뜻이 있으면 길이 있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나는 평생 한번도 운동 신경이 뛰어난 축에 속해본 적 없는데 학교 다니면서 하루 1시간쯤 그냥 평범하게 런닝 뛰고 근력 운동 조금 해온 것만으로도 처음 일해보는 것 같지 않게 빠르다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다. 첫 한달은 매일같이 몇번씩 넘어져서 온 다리에 멍과 상처투성이였는데 처음 한번도 안 넘어진 날 아이가 첫 걸음마 뗀 것처럼 너무 신났던 기억이 난다 ㅎㅎ
우선 가장 중요한 돈 이야기를 짚고 넘어가자면, 간단히 말해 내 경우에는 인턴 때 여름 4달 동안 이모저모 사정으로 2주쯤 휴가낸 걸 빼고 15주간 일했는데 임금, 식비 등 수당, 보너스 다 합쳐보니 대략 세금과 환급금 제외하고 18,000불 좀 못되게 내 수중에 들어왔다. 매일 다르지만 여름엔 대략 평균 하루 통근 + 필드에서의 시간 합쳐서 10시간 정도 (오전 6시 반 - 오후 4시 반), 현장이 가까우면 9시간쯤 일한다고 보면 된다. 겨울은 해 뜨는 시간이 짧으니까 더 늦게 시작해서 3시 이전에 마친다고 들었다. 산림은 일터까지 가는 길이 멀고도 멀어서 (심한 날엔 9시간 하루 내내 운전만 하다 그냥 숙소로 간 적도 있다) 통근 시간까지 임금에 포함되고 기타 이모저모 수당 비중이 높은 편이다.
테크 스쿨 두 학기 다니고 경력 없는 학생 인턴 초임이 이 정도면 괜찮은 수준이고 같이 첫 인턴이면 4년제 대학 학생들과 차이나지 않는다. 다른 컨설팅 펌에서 여름 인턴한 친구들도 대강 들어보니 이와 엇비슷하고, 라이센시 대기업에 간 경우에는 직접 물었는데 시급 28불이라고 들었다. 그 친구는 landscaper 경험이 좀 있어서 그게 반영됐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아마 학생 인턴 대개 비슷할 거다. 유학생은 학비가 더 비싸지만, 현지인의 경우는 학교 2년 다니면서 중간에 넉달간 인턴 한번 하면 학비 전부 커버하고 남는 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자세한 임금 체계는 복잡한 데다 회사마다도 시급이냐 월급이냐 또 개인 계약마다 많이 다르기에 뭐라 말하긴 어렵지만, forester의 경우엔 자격을 따면 대략 기본 시급 30~35불 선에서 초봉이 결정된다고 들었다. 이후엔 얼마나 올리느냐는 본인 능력과 기회에 따라 천차만별이겠고 물론 끝도 없이 올라가진 않을 것이다. 나 인턴하던 때 살던 집주인은 일 시작한지 4년밖에 안됐는데 이미 3년 차 20대 중반 때 괜찮은 하우스를 샀다. 물론 대출이 끼어있을 테고 프린스 조지는 밴쿠버에 집값이 훨씬 싸다.
요지는 캐나다에서 산림 기술직으로 일하면 크게 경쟁이나 스트레스가 심한 분야가 아니고 특별히 능력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안정적인 환경을 갖추기엔 충분한 임금을 받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산림을 선택한 현지인들은 대부분 기본적으로 자연과 환경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혹은 가족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들어서는 것 같았는데, 이같은 경제적 안정성도 중요한 선택 요소라고들 했다.
중요한 돈 이야기를 마쳤으니 낭만적인 기억들을 되짚어 봐야겠다. 일하면서 맞닥뜨린 풍경들은 어떻게 묘사할 수도 없고 그저 충격처럼 기억에 남은 것 같다. 네팔 히말라야 근처 오지 마을에 출장차 갔을 때 봤던 모습 외에는 평생 봐온 걸 비견할 데가 없었다. 이제까지 알아온 경관의 지평을 바꿔 버리는 장면들. 거대하고 넓은 정도가 살아오면서 봐온 것과 격이 다르고, 또 자주 아름다웠다는 이야기다. 하루는 6월 중순 어느 날이었는데 갑자기 예고 없이 눈이 내렸다. 온 사방이 한겨울처럼 뒤덮일 만큼, 물론 추웠지만 여름이라고 해도 그리 덥지 않고 왠만한 방한복은 항상 챙겨 다녀서 괜찮았다..고 말하기엔 추웠다. 그래도 신기해서 그보다는 신이 더 났다. 생각해보니 원래 안 더운게 내가 일했던 여름이 이상하리만치 비가 많고 안 덥다고 매번 동료들이 말하긴 했다. 원래 이 지역 여름은 엄청 덥고 가물다는데, 아 더워 죽겠다 했던 날은 한 손가락에 꼽았던 것 같고 보통 날씨가 나쁘지 않았다.
내 취향이 그런 것이겠지만 역시 가장 아름다운 곳은 보통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길이다. 일할 때만이 아니라도 학교 다니면서 현장 학습을 자주 나가니까 캐나다에서 산림에 몸담는다면 눈 호강은 실컷 할 수 있다. 한달 일하고 밴쿠버에 놀러와서 도심을 돌아다니는데 너무 답답하고 불쾌할 지경이었다.
두렵지만 매혹적인 야생 동물들을 진짜 야생에서 보는 것도 한국인으로선 첫 경험일 수밖에 없었다. 출근길마다 흰꼬리사슴 가족이 총총총 뛰어가는 뒷모습(우리를 피하려고 하는 것이지만 ㅠㅠ)을 보고, 무스 엄마와 그 자식을 며칠 연속 마주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건너편 산봉우리 호숫가에 곰과 사슴?류 동물들이 물 마시는 모습을 봤을 땐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달려가는 블랙베어 뒷엉덩이는 토실토실 얼마나 귀여운지. 곰을 발견하는 게 모두가 가장 신나는 순간이다, 물론 차 안에 있을 때만. 필드에서 곰이 어느 방향으로 지나간다는 무전을 받으면 엄청 긴장하게 되지만.. 다람쥐들이 말린답시고 나뭇가지 사이사이에 걸쳐놓은 버섯을 발견할 때, 색이 찬란한 독버섯을 마주쳤을 때, 미련한 산토끼가 안 움직이면 안 보이는 줄 알고 차 앞을 가로막고 한참 우두커니 얼어 있을 때..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순간을 매일 맞닥뜨리지만, 그 못지 않게 사랑스러운 건 수년 간 일을 하면서 이미 많이 봤을 모습들에도 매번 천진하게 감탄하고 즐거워하며, 내게 이모저모 설명해주는 동료들의 모습이었다. 내가 겪은 산림인들 일반화를 해보자면 carefree하다는 말이 가장 적합한 것 같다. 다정하고 쾌활한 사람들.. 안 그런 회사는 없겠지만 레주메용 용어로 말하면 interpersonal & 커뮤니케이션 skill이 역시 산림에서도 중요하다. 보통 동료 둘이서 파트너로 출퇴근 동행하고 가고, 필드에선 떨어져 일하며 무전으로 소통하기도 하고 같이 붙어다닐 때도 있지만 어쨌든 혼자 일하는 법이 없이 항상 기본이 팀이다. 경력이 쌓이거나 관리자가 되면 클라이언트 관리도 중요한 부분이고. 무튼 캠프 쉬프트는 종일 내내 팀원들과 캠프에서 생활한다. 물론 퇴근 후에는 각자 시간 알아서 보내고 자의에 상관없이 뭘 같이 해야한다거나 그런 건 없다. 같이 차 타는 시간이 길기 때문에 팟캐스트나 음악을 들을 때도 많지만 이런저런 별의별 이야기를 나누게 되고, 개중 가장 흥미로웠던 건 같이 일하는 파트너에 따라 그이들의 다양한 취미생활들 이야기였던 것 같다.
그리고 비롯 산림 일 자체가 어떤 관점으로 생태계를 파괴하는 일이긴 하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양한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고 물자 절약 등을 실생활에서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사실 캐나다서 만난 사람들이 학교랑 일터에서 다 산림분야인들 뿐이니 이것이 산림인의 특성일지 캐나디언의 특성일지는 모르겠다. 같이 부대끼면서 배우기도 했고, 작은 묘목 하나가 길게는 백여년을 자라서 베어지고 사람들한테 쓰이기까지, 세대에 걸친 계획이 이어지고, 또 결국 무엇을 망가뜨려서 얻어질 수 있는지 보고 나니, 종이 한 장 허투루 쓰는 일이 쉽지 않게 됐다.
늦여름 베리류가 익기 시작하면.. 일에 집중하기가 힘들다. 베리를 따 먹는 걸 멈추기가 힘들어서다. 그땐 이름을 다 알았는데 이젠 가물가물한 십수가지 종류의 베리가 사방에 가득하다. 곰들의 주식이 베리인 것도 캐나다에 가서야 알았는데, 엄마곰과 아기 곰 두마리가 푸른 베리밭에 철퍼덕 앉아 쉼없이 베리를 따먹던 모습은 주체할 수 없이 귀여웠다. 곰은 두려움의 대상이면서도 사랑스럽고 똑똑하고 결국엔 사람 손에 많이 죽고 참 사람과의 관계가 묘한 존재다. 한국인들이 곰의 자손이라는 단군신화 이야기를 해주면 동료들이 재밌어했다. 처음에는 숲속에서 맨몸으로 곰을 만날까봐 두려움이 컸다. 몇 주 지나 세상에 나와 파트너 밖에 없고 언제 어디서 곰이 튀어나올지 모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사실 비논리적인 것도 이해하게 됐다. 야생 동물들도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보통 사람과 대거리할일은 잘 생기지 않고 안전 수칙만 잘 기억하고 지키면 된다.
경험은 컨설팅 펌에 한정돼 있지만 필드에 나갈 땐 안전 문제로 어디나 보통 둘이 짝을 지어서 파견되고 2~4명이 팀으로 일한다. 보통 직원들은 자기가 맡은 프로젝트들이 있고 여름에 학생 인턴들은 거기에 보조로 붙여주는 식이다. 뭐랄까 forester와 테크니션들은 가장 현장 가까이서 전체적인 산림 계획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이들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Foresters are true ecologists with a long-term vision," (Keen, 2014)도 정적절한 표현 같다.
산림 개발에 관한 규정과 감시가 까다롭고 어겼다간 벌금이 엄청 나기 때문에 클라이언트가 그걸 어기는 일이 없도록 각종 조사와 구역 표시를 하고, 수익이 얼마나 날지 나무들 연령대에 따라 샘플링해서 이모저모 수치와 질병 조사하고. havest할 구역을 현장에서 눈대중으로 봐가면서, 몸에 GPS를 달고 구역을 직접 장치에 표시해가며 지도의 바탕을 만들고, 도로 계획을 위해서 땅 파서 토질 조사하고, 도로 낼 자리를 정하기도 하고 스트림 주변을 잘못해서 파헤치지 않도록 구역 표시를 하고, 뒤에 올 이들을 위해 길을 표시해두고... 나열하니 지루하지만, 궁금한 사람들을 위해서.
물론 이런 일을 하기 위해선 첨단 장비들만 들고 우아하게 서베이하러 다니는 게 아니라, 쓰러진 나무 톱으로 썰어서 치우고, 말 그대로 삽질도 많이 하고, 진창에 빠진 트럭이나 quad를 다같이 끌어내고, 도끼질도 해야 하고 그렇다. 체인톱을 켜면서 "내가 이러려고 디그리를 딴 게지", 농담조로 말하던 한 동료의 표현이 적절한 느낌이다. 학생 인턴은 현장에서 보조 역할하고, 풀타임은 사무실에서 계획 짜고 수집한 자료로 조사 보고서 작성하고 클라이언트와 소통하고 그런 임무가 더해진다고 보며 된다.
산림 분야에는 나도 다 알지 못하는 다양한 일들이 있고 직접 산림을 경작하는 대기업이나 정부 기관으로 가면 landscape 계획도 큰 부분이라고 알고 있다. 어쨌든 forester나 테크니션 자격증을 딸 생각이면 일단 졸업 후 2~3년 자격증 따고 영주권 딸 때까지는 컨설팅 펌에서 스폰 받는 게 이민자가 아니라도 가장 흔하고 확실한 길이다. 스폰이란 영주권 스폰이 아니라 자격증 스폰을 말하고, 자격을 따면 독립기술이민은 알아서 진행하면 된다. 많은 이들이 컨설팅 펌에서 자격증 따고 난 이후에 이직을 하거나 말거나 하는 듯했다.
일하는 현장은 보통 주거지역과 떨어진 깊은 숲속이고 대부분 인터넷도 안 터진다. 대부분, 특히 여름철에는 그 근방 캠프에서 주중에 머물면서 근무하는 형태다. 나는 운좋다면 운좋게도 집이나 임대 별장, 모텔, 식사를 제공하는 로거스 캠프 등 샤워시설과 주방이 일반 집처럼 갖춰져 있고 또 인터넷이 터지는 곳에서만 캠프 생활을 했다. 캠프마다 둘이 방을 같이 쓰거나 각방이 주어지거나 한다. 천막 치고 불 피워서 요리하고 트레일러 침낭 속에서 자는 식의 캠프들도 있는데, 어쩌다 보니 넉달 간 그런 레알 캠프 경험은 못해봤다. 이런 나를 굉장히 부러워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레알 캠프도 가보고 싶었는데, 그렇게 일정이 짜인 주에는 하필 파트너가 갑자기 출근 전날 아픈 바람에 나는 다시 다른 곳으로...
캠프에선 사람들은 보통 저녁에 책 읽거나 넷플릭스 보고, 요가나 조깅도 하고, 주변에 호수가 있으면 낚시, 수영, 카약을 하러 가기도 한다. 6시 반부터 출근이니 보통 밤 10시 전에 잠들곤 했는데 여름이면 밤 10시까지 해가 다 지지 않아 낮이 길다. 아침에도 해 뜨고 일어나니까 어느 날 생각해보니 컴컴한 밤과 별을 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갸우뚱했던 적이 있다.
십년차 경력자인 어느 동료가 이 회사가 좋은 이유가 사람들이 술 안 마시고 weed 안피워서라고 했는데, 그건 곧 일하고 캠프에 돌아와 술 마시고 대마초 피우고 취하는 게 문화인 일터도 많다는 것이다. 캐나다에서 대마초는 합법이지만 일터에서는 당연히 대마초가 금지돼 있는데 그럼에도 산림 분야 일하는 사람들은 피우는 경우가 많다고도 들었다. 퇴근 후에 술마시고 대마초 피우는 게 불법도 아니고 뭐가 좋다 나쁘다 할 순 없지만, 어느 쪽과 더 가까워지고 싶은지 생각해 좋은 문화를 가진 회사를 찾는 게 중요한 것 같다.
주중에 캠프 생활을 하는 컨설팅 펌의 형태가 어느 이상 나이가 들고 가족을 이루고 싶다거나 사람들에게는 지속 가능하기 어렵다고 느껴서, 혹은 수 년 이상 하면 뭐든 지겨운데 어차피 여기저기 취업할 곳은 많이 있으니까 이후에 여러 분야로 이직을 하는 것 같다. 비즈니스 스킬이 있고 인맥을 잘 관리한다면 직접 회사를 차려서 계약을 따내 가면서 수익을 내기도 그리 어렵지 않아 보였다, 사실 이민자에겐 어려울 수 있지만. 내가 일했던 회사에는 프린스 조지에 본사가 있고 로컬 브랜치가 여러 군데 있는데, 브랜치에는 아예 그 지역에 사는 40~50대 직원들이 많았지만, 본사에는 매니저급 외에는 40대 이상 직원은 보기 힘든 듯했다. 재차 강조하자면 산림 분야 일자리는 광범위하고 forester 자격을 딴 뒤 선택지는 더 많아지지만, 이민을 위해 컨설팅 펌에서 일한다면 최소 졸업 후 몇년은 주중에 집 떠나 이곳 저곳 캠프에서 사는 생활을 예상해야 한다.
내가 어떻게 N년째 이 일을 하고 있다니 정말 믿을 수가 없다며 농담 섞인 불평을 하는 이들도 있는데 결국엔 몇 주 사무실에만 박혀 있으면 좀이 쑤시고 답답하다는 사람들이다. 습관이기도 하고, 중독이라면 과하지만, 앞서 적은 풍경들은 어디서도 보기 어려운 것들이고 숲속에선 하루 동안 쏘다니는 구역의 범위랄까 하는 게 있는데, 그게 당연히 일반적인 오피스에서는 채워질 수 없다. 나도 겨우 넉 달 일했을 뿐이고, 결국엔 분야를 바꿨지만, 일하던 기억이 1년도 지난 지금까지도 자주 눈앞에 아른아른하다. 한국 고향집에 있을 때 동네 작은 숲 동산에 산책갈 때마다 매일같이 일하던 숲이 그리워 눈물이 약간 핑 돌 정도였다. 좋을 때 그만뒀기에 좋은 기억으로 추억할 수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나 여기서 진짜 밟혀 죽거나 크게 다칠 수 있겠구나 했던 적 있었는데, 곰이 아니라 생각도 못한 소 때문이었다. 캐나다까지 와서 소들한테 죽을 운명이었나, 어디로 더 피할 곳도 보이지 않고 더 따라오지 않기만을 바라며 진심으로 죽음이 가까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던 건 평생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때 일했던 산에 주인이 소떼를 풀어놓고 키우고 있었는데, 그렇게 넓은 데가 그냥 소들 세상이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한국에서도 많이 봤던 소니까, 곰도 아닌데... 별생각없이 혼자 겁없이 동료들과 좀 동떨어진 곳 서베이 하러 간다고 나섰다가, 풀섶 밟는 소리가 자꾸 가까이서 들리고 나무 사이로 소들의 뚱한 얼굴을 몇 번 마주치고서야 체급 차이가 실감났다. 조심히 멀어져도 보통 야생동물과 다르게 슬금슬금 따라오고, 멀지 않은 곳에서 소들이 떼를 지어 마구 뛰어다니는 걸 보고 저기 걷어 차이면 난 죽겠구나 싶었다. 무전으로 구조 요청 끝에 데리러 온 동료와 함께 둘이 소들 눈을 피해서 울타리 밖으로 탈출하는 동안 긴장감은 정말... 울타리가 보이자 엄청 뛰어가서 문 닫고서 얼마나 안도를 했던지.
이 이야기는 물론 많은 동료와 친구들에게 아주 즐거운 이야깃거리로 남았다 하하... 지나고 나니 웃긴 추억이긴 한데, 당시엔 한동안 소고기만 봐도 거북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이 두려움을 극복하자며 스테이크를 구워 먹었던 것 같다.
이외에 한번 나뭇가지에 눈알을 찔려서 결국 일을 중단하고 병원에 갔던 적이 있다. 눈에서 피가 철철난다거나 그런 상황은 아니었고 참을 수 있을 것 같다가 또 미친듯이 아프고를 반복해서 결국 병원에 갔는데, 다행히 중요 부위를 엇나가 좀 긁힌 정도였다. 시력에 문제가 생기는 건 아닌가 걱정했지만 하루만에 흔적도 없이 다 나았다ㅎㅎ 안전수칙을 안 지키면 어떻게 되는지 좋은 예시다. 보안경을 써야 하는데 안 썼고, 항상 급하게 서두르지 말라고 하는데 한국인 근성 못버리고 빨리 빨리 하다가, 또 좀 익숙해졌다고 관목숲을 마구 헤치고 지나가다가 생긴 사고였다. 여담이지만 숲에서 일하고 눈 좋아졌다(가 이제 다시 나빠졌다). 몽골인들은 멀리 보기 때문에 시력이 좋다는데 그게 진짜였다.
산림 분야는 이런저런 사고에 항상 대비해야 하는 일이지만 대부분은 대비가 가능하다. 사고는 흔하진 않았고 내가 일할 당시 심각한 건 없었는데 그래도 더러 누가 다쳤다는 소식이 들려오곤 한다. 산림 분야 산재 역시도 곰이나 소.. 때문이 아니라 99%는 사람이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에서 방심하거나 안전 수칙을 신경쓰지 않아서 생기기에 별 문제 있겠나 안이하게 생각하고 만용을 부리는 게 사고의 씨앗이다. 다쳤던 사람이 또 다치는 경우도 많은 게 그 때문.. 아슬아슬 부주의하게 다니던 사람이 자주 다치면, 사실 누가 봐도 본인 잘못이다. Resource road라고 일반 교통 체계에 속한 게 아니라 산림인들만 쓰는 비포장 도로에서 속도 무리하게 내다가 사고 나는 경우들도 있는데, 어쨌든 조심하면 된다. 언제나 매뉴얼을 지키면서 무리하지 않고 항상 조심 또 조심하는 게 강조됐고 회사에선 매달 한번씩 전 사원이 참석해야 하는 safety meeting을 열어서 그 달 일어난 사고나 주의점을 공유하곤 했다.
캐나다 산림 분야에서 First Nation과의 협업은 중요하다. 캐나다 정부가 여기저기 땅 소유권을 어느 정도 First Nation 그룹들에게 돌려주면서 산림 계획시 그이들이 당사자가 되는 경우가 많고, 관련해 여러가지 복잡한 이슈가 있다. 학교에서도 관련 역사, 그리고 어떤 태도를 갖고 그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꽤 중요하게 다룬다. 한 First Nation 커뮤니티 지역으로 반 전체가 2박3일간 답사를 떠나 이런저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도 있다.
인턴 중에는 내가 첫 두달을 보냈던 프로젝트의 클라이언트가 한 지역 정부였는데, 계약 조건이 그 지역의 First Nation을 몇 명 이상 고용해야 한다는 그런 게 있었다. 사실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서베이인데 헬퍼라는 명목으로 짝을 지어 First Nation 파트너와 함께 일한 적이 많았다. 물론 둘이 하면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다. B는 그런 식으로 회사랑 연을 맺었다가 풀타임으로 고용된 직원이었다. 50대 후반이거나 60대 초반쯤일 듯한 B는 그 지역 브랜치에서 성격 더럽고 일하기 싫어해서 남들이 다 같이 일하기 꺼려하는 그 또래의 어떤 직원과 유일하게 맞춰줘가며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 문제의 분이 휴가를 떠난 뒤에는 나와도 함께한 시간이 꽤 길었다. 생초짜인 내가 평생 산림에서 일해 온 이를 리드하고 일을 시켜야 하는 입장은 미묘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지도를 잘못읽고 동서쪽도 헛갈려서 잘못 끌고 다녀서 B가 나한테 조용히 화낸 적도 여러 번이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게도 서로에게도 익숙해지면서 B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짝지가 됐다. 아마 B도 그랬다고 생각한다.
B는 서베이 보조 역할이 아니라 혼자서도 할만한 능력이 충분했고 오피스에서도 그걸 바라고 있었는데, 본인이 태블릿과 프로그램 다루기를 겁내해서 몇년째 고사하고 있다고 들었다. 어느 날 파트너가 계획을 잘못 세워서 너무 한가해져버린 날에, B를 붙잡고 조사를 어떤 식으로 하면 되고 태블릿을 어떻게 쓰면 되는지 하나하나 가르쳐 주었다. 그가 내가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듯이 수 번씩 반복하고 기다려주니 역시나 그도 곧잘 다루는 걸 보고 정말 기뻤던 것 같다.
여름이 끝나가고 더 이상 B가 사는 지역에 일하러 갈 일이 없어질 것 같을 때쯤에 그에게 인사 전화가 걸려왔는데 그가 "네가 내 평생 만난 최고의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겨우 그 몇 시간 때문에 나더러 그의 60년 가까운 인생의 최고의 선생님이라니, 기분 좋다기보다 마음이 먹먹해지는 말이었다. 말이 많지 않아도 종일 같이 다니다보면 자연스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게 되고, B는 그의 아버지가 어떻게 살아왔고, 또 그 자신이 어떻게 살아왔는지, 직접적으로는 아니지만 대략 어떤 순간들이 그려질 법한 이야기를 가끔 해주곤 했었다.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비참한 역사에 대해서는 이전엔 개략적으로만 알 뿐이었으므로, First Nation과 함께 일하고 그이들이 사는 Reserve에 매일 픽업하고 데려다주러 가면서, 자연스레 관심이 생길 수밖에 없게 돼서 이것저것 찾아보곤 했었다. 산림인이 아니라도 캐나다 이민을 생각한다면 알아두면 좋을 역사이니 그중 지금도 기억나고 추천할 만한 걸 공유하자면 이 글 'Insight on 10 myths about Indigenous Peoples' 과, <The Inconvenient Canadian>이라는 First Nation 저자가 쓴 책이다. 역사서로 분류되지만 칼럼을 모은 형식이라 딱딱하지 않다. 넷플릭스 캐나다 드라마 빨강머리 시즌 3에서도 First Nation에 관한 역사를 다루고 있고, 재미있고 좋은 작품이니 추천. <계속>
6편 - 산림으로 캐나다 이민하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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