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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답 Jan 05. 2021

산림으로 캐나다 이민하기 2편

업계 내 극 소수자, 아시안 여성의 걱정 

앞서 구구절절 적었던 산림 업계 내에서의 나의 소수자적 위치(여성이고, 아시안이자, 영어가 능통치 못한 외국인, 빠르진 않은 나이라고 생각했던 30대 초반) 는 모두 그대로 맞았다. 코카시언 남성 중심에 이민인력 비중이 현저히 적은 분야지만, 산업은 이민 인력도 원하는데 공급이 적은 게 맞는 분석 같다. 처음에 이같은 내 조건으로 취업을 할 수 있을까 컴플렉스가 컸고 쓸데없이 그에 걱정하느라 쓴 에너지가 아깝기 때문에 일부러 글을 따로 빼서 적어본다. 결론은, 그게 취업하고 일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걸림돌은 아니므로 단지 이같은 걱정으로 선택을 주저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첫 인터뷰에서 ‘너가 이 일을 하기에 physically fit하다고 생각하니? ‘라는 질문을 받고 멘붕을 겪으며 캐나다 온 지 한달만에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시절도 있었지만… 나는 키 160 좀 넘는 왜소한 체격이지만, 나보다 작거나 엇비슷한 체격으로 일하는 여성분들이 아주 많으니 쓸데없는 고민이었다.


다인종 이민 국가인 캐나다지만 산림 분야 인력은 코카시언 남성이 지배적이다. 통계가 남성 90% 까지 잡힌 건 로거(나무를 기계로 자르는 사람들)들 비중이 거의 100% 남성이라서도 있겠지만, 어쨌든 남성이 주류인 산업이다. 적은 표본이지만, 35명 정원인 BCIT 에서부터 여성 비중이 37%이고, 아시안 많기로 유명한 메트로 밴쿠버에서 학급 내 아시안 비중이 20%에 그쳤다. 아시안 여성은 나 말고 캐나디안이 한명 더 있었으나, 그 친구는 자연과학 분야 학사를 따고 취업 스펙에 하나 더 얹을 생각으로 이 과정에 등록한 것이지 산림 분야에서 일할 계획은 없었다. 유학생은 4명이었는데, 그 중 한국인이 나 포함 셋이었다. 

나중에 여름 인턴할 때 동네에서 만난 한 친구가 UBC 산림 엔지니어링 전공이었는데 여성이 전체 엔지니어링 전공자 중 혼자라고 했다. 자세히 적긴 그렇지만 그는 대다수 동급생들과 말도 섞고 싶지 않다고 했으니 나름의 고충이 꽤 있었던 것 같다. 일터가 훨씬 좋다고 했다. UBC Forestry 학과는 매해 300여명씩 신입생을 뽑는 덩치 큰 곳으로 아는데 그 중 두 개 전공만 forester 혹은 엔지니어 자격증을 딸 수 있는 과다. 


내가 인턴을 했던 곳은 산림, 환경, 엔지니어링 부서를 따로 가진 대형급 컨설팅 펌이었는데, 첫 오티날 여름 동안 일할 학생들 서른명쯤이 둘러 앉으니 나와 흑인 여성 한명을 제외하고 모두 백인이었다. 영어 원어민이 아닌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 회사에서 4년째 일한 아시안 직원 말로는 그간 아시안 인턴은 처음 보았다고 했다. 그 회사에서 일했다가 이직한 한국 분이 한분 있었다고 들었는데, 나는 아마 그의 덕을 보았다고 생각한다. 

재밌었던 건 아시안 남성은 산림 분야는 ‘Caucasian Dominant’라고 말하고, 백인 여성들은 산림 분야가 ‘male dominant’라고 말하는 걸 몇 번 들었다.


오퍼를 받기 전, 인터뷰에 족족 다 떨어진 것 같아서 한창 인턴 취업 문제와 타국에서의 나의 미래는 어떻게 될 것인가 심란해하고 있을 때, 선생님 한분이 멘토가 될만한 선배 한명을 소개해주었다. 나보다 2년 먼저 같은 과정을 시작하고 졸업해서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중국 여성이었다. 내 윗학년에는 아예 아시안 여성이 없었고, 아시안 남성만 한명 있었다. 불안의 구렁텅이에 빠져있을 때, 그와 나누었던 이메일이 얼마나 위로가 되었는지 모른다. 


“Also I want to say that I feel exactly as you for being a minority in forestry world. But the good news is that female are playing more important roles in this field. There are more small women are capable of doing field works. And I believe that there will be more international workers to join us. ”


특히 이 문장은 마법같이 내 불안을 다 녹였다. 현장에서 일해보니 다 사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우연히도 저 메일을 받은 바로 다음날, 두달 가까이 내 애를 태우던 곳에서 인턴직 오퍼를 받았다. 저때 그이와의 따뜻했던 대화를 생각하면서, 내가 나중에 어느 정도 가닥이 잡히면 꼭 경험을 공유해야지 마음 먹었던 게 벌써 2년 전이라니… 이 글은 꼭 마무리해야겠다.  


산림 분야 남성 비중이 높은 건 여기서 다 분석하긴 너무 복합적이고 내가 분석할 수도 없는 이유들이 있지만, 그게 고용과정에서 여성을 의도적으로 배제하기 때문이라고만 하기는 것도 무리다. 애초에 학교에서부터 아시안, 여성, 그리고 아시안 여성은 특히나 숫자가 적고 이 또한 이유가 서로 맞물리는 것이지만 무튼...


물론 차별적인 회사가 존재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은 회사에 충분한 자리가 있다고 본다. 또 소수자로서의 혜택이 차별을 경감하거나 더 크다고 생각한다. 큰 회사일수록, 그리고 정부 기관은 인종과 성별 소수자에 대한 고용 특혜가 있다. 그리고 현장에서 여성이라고 일하는 게 더 불편하고, 여성은 할 수 없는 일이 따로 있거나 그렇지 않다. 이는 물론 회사 문화에 따라 크게 좌우된다고 할 수밖에 없다. 같이 오래 일했던 사수? 말론 그가 학생 때 직원 전부가 남자인 회사에서 본인만 여자로 아버지 친분으로 여름 인턴을 했는데, 그다지 떠올리고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했다 하하.. 


다행히도 내가 일했던 회사는 그런 부분에 있어서 내게 아주 편안한 곳이었다. 산림부서밖에 잘 모르긴 하지만, 부서 중추가 되는 연령대에 여성 인력이 두텁고 목소리가 크고 부서 팀장도 여성, 남성 한명씩 있었다. 일례로 quad를 타고 오래된 트레일을 가로지르던 중에, 쓰러진 큰 나무가 있어서 더 나갈 수가 없었다. 나까지 여성 둘, 남성 둘이었는데, 번갈아가며 톱질을 하고 결국 나무를 절단하고 옮겨서 길을 털 수 있었다. 한 남성이 “Manpower!”하며 하이파이브를 하는데, 다른 여성이 “No, human power”라고 지적했다. 지적받은 이는 “Oh, sorry, woman power”라고 했지만 다시 그 여성이 “No human power”라고 하였다. 둘은 사이 좋은 동료였고 그런 지적이 유별나다거나 불쾌하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지 않았다. 


또 한 남성 동료에 대해서 여러 여성 직원들이 ‘여성 동료나 여성 senior에게 유독 덜 존중하는 듯하는 태도’를 보스들에게 문제제기 한 일이 있었다. 문제의 직원은 나도 많은 시간을 보냈던 이였는데, 그 때문에 짜증나고 위험한 에피소드가 한번 있었기 때문에 인턴 나부랭이지만 한 술 보태 고자질을 했고 그 뒤로 그랑 같이 일하지 않게 되었다. 사실 어떻게 비난하기가 애매한 문제일 수도 있는데 꼭 짚어서 회사 안에서 문제제기를 할 수 있다는 게 보기 좋았다. 


학교에서도 딱히 아시안이건 코카시언이건 정말로 별 상관없이 친하게 잘 지내는 친구들을 보아왔지만, 인턴하면서 인종 간 벽이나 차별에 대한 나 스스로의 선입견을 더 깰 수 있었다. 내가 인턴하던 여름 동안 살던 집주인은 부서 내 유일한 아시안 남성이었는데 모두 백인인 회사의 동료, 보스들과 참 각별히 잘 지냈다. 물론 일을 잘하고 사람이 좋으니 인정 받는 건 당연한 것이지만, 그래도 우정에 대해서는 인종의 벽이 좀 있지 않을까 스스로 생각해왔던 부분이었다. 그러나 그를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물론 그는 캐나다 네이티브니 언어 문제가 없고 또 성격도 참 편안하고 좋은 사람이었다. 대장 보스의 입양한 아들… 로 불릴 만큼 보스와 굉장히 친밀했고 둘이 사냥 파트너로 주말에도 자주 만나러 다니더라. 보스만이 아니라 다른 동료들과도 다같이 주말에 곧잘 어울리곤 했는데, 우리 집이 곧 아지트였다 하하.. 


산림업계 종사자들이 보통 작은 타운에 젊은이들이 모여 있고 다들 나온 학교도 어차피 거기서 거기고 하니 다들 한다리 건너면 친구의 친구의 친구들이고, 주말에 파티도 많고 회사 동료가 곧 다들 친한 친구가 되기 쉬웠다. 여기선 회사 공식적으로 주말 바베큐나 운동회를 열거나, 직원들을 며칠씩 와이너리 투어, 사냥 투어를 보내주기도 했다. 한국에선 주말에 회사 회식이나 행사를 한다면 욕 먹을 텐데, 여기선 그런 불만은 전혀 없이 많은 이들이 참가해서 즐겁게 놀곤 했다. 물론 원하지 않는 이는 아무 부담 없이 안 가도 되니까 그럴 것이다.


어쨌든 나로서는 이 회사의 첫 아시안 여성 인턴으로서 내가 씨앗이라는 생각을 갖고, 나 이후에도 또 이 회사에서 아시안 여성을 뽑을 수 있도록 좋은 인상을 남겨야지 하는 사명감이 있었다. 처음에 일을 시작할 땐 당연히 계속 스스로의 정체성을 그렇게 정의하고 의식할 수밖에 없었는데, 어느 순간 그 사실을 아예 잊고 산 줄도 모르게 잊고 지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인턴한 지 석달쯤 지나 친구가 놀러와 캠핑을 갔다. 무슨 농담을 하다가 내가 캠핑장에서 숨어버린다고 그랬었나? 했는데 그 친구가 여기 전체에 아시안 너 혼자인데 찾기가 퍽이나 어렵겠다, 하는 것을 듣고서야 아 이 캠핑장에 나 혼자 아시안이구나 하는 사실을 인지했다. 예전이었다면 아마 처음부터 그 사실이 크게 의식됐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뭔가 묘했다. 회사와 동료들이 그만큼 편히 대해줬기 때문이었으리라.


여성과 인종에 대한 차별은 당연히 존재하고 나도 계속 그런 차별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며 살 것이다. 그러나 캐나다에서 보낸 1년 동안 어떤 사람들과 어울리는지에 따라, 또 마음을 연다면 이민자 인생에서도 그런 부분이 애초에 생각한 것보다 별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었다.   <계속>


3편 - 어느 학교를 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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