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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쭝 브런치 Dec 17. 2019

민물 돌고래






    몬둘끼리를 떠나자마자 쏟아지기 시작한 비는 끄라쩨까지 계속됐다. 버스에서 내릴 땐 트렁크 안으로 비가 스며들었는지 가방이 다 젖어 있었다. 가방 안에 넣어 두었던 노트북부터 입지 않고 아껴 두었던 옷 한 벌까지 모두 젖었다. 아끼면 똥 된다고 하더니 딱 그 꼴이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가장 가까운 식당으로 갔다. 배가 고팠고 잠시 비를 피해 꽁지머리 사내가 알려준 게스트 하우스의 위치를 알아볼 필요도 있었다. 

    나는 버스 정류장 근처에 있는 카페 분위기가 나는 식당에 들어갔다. 비는 어찌나 거세던지 거리에 커다란 웅덩이를 만들었다. 식당 앞을 지나던 오토바이는 바퀴가 3분의 1쯤 잠긴 채로 물살을 만들며 겨우 나아갔다. 

    돌핀이라는 이름의 게스트 하우스가 조금 생뚱맞을 수 있지만 끄라쩨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었다. 바다를 한 뼘도 접하지 않은 이곳에 돌고래가 유명한 건 끄라쩨를 가로지르는 강에 이라와디 돌고래(Irrawaddy Dolphin)가 서식하기 때문이다. 멸종 위기종으로 민물에 사는 희귀한 돌고래다. 푸른빛이 도는 회색에 둥근 이마와 부리가 없는 입, 펜으로 점을 찍어 놓은 듯 작고 동그란 눈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돌고래의 외형과는 조금 다르다. 게다가 늘 입꼬리를 올리고 있어 웃는 돌고래라고도 불린다. 

    최근 돌고래를 보러 오는 여행객들의 수가 많아져 이젠 끄라쩨 하면 바로 민물 돌고래가 연상될 만큼 명소가 됐다. 그래서인지 끄라쩨에 있는 상점과 게스트 하우스, 식당 들에는 돌핀이라는 말이 들어간 상호가 많았다. 이렇게 이미 익숙한 이름을 상호로 하면 여행객들이 좀 더 친근하게 느껴 돌핀 어쩌고저쩌고 하는 곳에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나 또한 실버 돌핀 게스트 하우스를 추천받았을 때 무엇보다도 돌핀이라는 말에 친근감을 느꼈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없었다. 나는 우의를 뒤집어쓰고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라따나끼리에서부터 젖은 신발은 그 후 마를 틈이 없었다. 끄라쩨에서도 거리에 가득한 물웅덩이를 헤치고 나가느라 신발은 다시 젖었다. 그 어느 때보다 흠뻑 젖었다. 

    실버 돌핀 게스트 하우스는 메콩강 바로 앞에 위치하고 있었다. 3층짜리 건물로 정면에 ‘Silver Dolphin Guesthouse & Restaurant(실버 돌핀 게스트 하우스와 레스토랑)’이라고 적힌 간판이 있고 입구엔 돌고래 석상이 꼬리로 몸을 지탱하고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다. 1층엔 입구부터 로비 앞까지 작은 식당이 있었다. 안락해 보이는 라탄 의자와 사각형 식탁이 통로를 사이에 두고 양옆에 놓여 있었다. 로비 안쪽 벽면에는 돌고래 투어와 교통편 관련 정보로 도배가 돼 있었다. 프런트에 헐렁한 셔츠를 입은 중년 남자가 앉아 있었다. 나는 그가 미스터 픽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혹시 미스터 픽이세요?」

   「미스터 픽? 아닙니다.」

   「그럼 미스터 픽이란 사람을 좀 만날 수 있을까요?」

   「잠시만 여기서 기다리세요.」

    그는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잠시 후 머리에 헤어롤을 감고, 꽃무늬 원피스 잠옷을 입은 아주머니가 왔다. 

   「누굴 찾는다고요?」 그녀가 말했다. 

   「미스터 픽이요. 센 모노롬에 사는 이곳 출신 남자의 추천으로 왔어요. 미스터 픽에게 말하면 조금 더 저렴하게 묵을 수 있다고 했거든요.」 

   「미스터 픽? 그런 사람은 여기에 없어요. 설사 있다고 해도 더 저렴한 가격에 숙박은 안 돼요.」  

    나는 그녀에게 꽁지머리 사내가 적어 준 메모를 보여줬다. 메모엔 전화번호와 게스트 하우스명, 그리고 ‘미스터 픽’이 적혀 있었다.  

   「이것 보세요. 그가 적어준 거예요. 여기 전화번호와 게스트 하우스 이름까지 똑같잖아요.」 

   「전화번호와 상호는 맞는데, 그 남자가 착각을 했나 보네요.」

    나는 그녀가 조금 의심스러웠지만 그렇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미스터 픽을 찾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힘이 좀 빠지긴 했지만 우선 젖은 가방을 어떻게 하고 싶었다. 나는 꽁지머리 사내가 말한 대로 5달러짜리 방을 보여 달라고 했다. 아주머니는 창문도 없는 작고 어두운 방 하나를 보여줬다. 방문을 열자 장마철 지하방처럼 습하고 곰팡이 냄새가 났다. 불을 켜자 전등은 침대 하나를 겨우 비출 수 있을 정도로 약했다.

   「여기가 5달러짜리 방이에요. 6달러짜리 방은 이보다 훨씬 낫죠.」 아주머니가 말했다.

    꽁지머리 사내가 5달러가 넘는 방에서는 묵지 말라고 했지만 나는 해와 바람이 들어오는 방이 절실했다. 나는 6달러짜리 방을 보여달라고 했다. 단 1달러 차이인데 6달러짜리 방은 동굴이나 다름없는 5달러짜리 방에 비하면 궁전이었다. 일부러 이런 효과를 노리고 최악의 방을 보여줬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시 한번 미스터 픽을 들먹이며 흥정을 시도했지만 아주머니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웬만하면 조금 더 흥정을 해봤겠지만 겨우 1달러 가지고 이러는 내 처지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결국 제값을 치르고 6달러짜리 방에 묵기로 했다. 아주머니는 ‘거봐, 애초에 내 말대로 했으면 좋았잖아’ 하는 표정으로 열쇠를 건네줬다. 쓰디쓴 패배감이 들었다. 

    창문이 있는 방도 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는 선풍기를 틀고 옷과 노트북부터 말렸다. 1달러를 더 낸 게 속상해 선풍기는 강풍으로 했다. 이렇게라도 1달러를 만회해야지 생각했다. 잠시 후 1층으로 내려가 돌고래 투어를 알아봤다. 

    아주머니는 툭툭이 왕복 10달러, 투어용 보트가 9달러라고 했다. 가이드북에서 본 가격과 같았다. 이 또한 투숙객이라고 해서 할인을 해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 비가 너무 많이 와 밖에 나가 다른 여행사와 가격을 비교하러 다닐 의욕도 생기지 않았다. 

   「비가 이렇게 오는데 돌고래를 볼 수 있을까요?」

   「비는 곧 그칠 거예요. 그리고 지금이 돌고래를 잘 볼 수 있는 때니 걱정 마세요.」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잠시 후 게스트 하우스 앞에 툭툭 한 대가 도착했다. 나는 그것을 타고 돌고래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나루터에 도착하자 정말 아주머니 말대로 비가 그쳤다. 매표소 앞 방명록에 내 이름을 적은 후 입장권을 구매했다. 나는 강기슭으로 내려가 작은 보트에 올랐다. 보트는 탈탈탈, 요란스러운 소리를 내며 강 중앙으로 향했다. 


    돌고래를 보기 위해서 강 한가운데로 가는 건 뭐랄까, 굉장히 성숙한 행위처럼 느껴졌다. 돌고래를 포획해 수족관에 옮기는 것이 아니라 돌고래를 보고 싶은 사람이 직접 돌고래가 있는 곳으로 가라는 것 아닌가. 돌고래 출몰지에 도착한 후에도 먹이를 주거나 돌고래를 괴롭히는 어떤 방법을 통해 돌고래가 수면 위로 나오게 유도하지 않았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한 일이라고는 그저 돌고래가 숨을 쉬러 나올 때까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운이 나쁘면 돌고래를 보지 못하는 날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돌고래를 볼 수 있냐 없냐는 사람이 아닌 돌고래의 결정에 달렸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강 중앙에는 이미 여러 대의 보트가 떠 있었다. 여행객들은 조용히 보트에 앉아 돌고래가 나타나길 기다렸다. 돌고래가 어디서 나타날지 몰라 다들 두리번거리며 수면을 주시했다. 내가 탄 보트도 엔진을 끄고 이들 무리에 합류했다. 정적이 흘렀다. 미묘한 물의 흐름만 느껴졌다. 나는 문에 노크를 하고 선 방문객처럼 가만히 앉아 돌고래가 나오길 기다렸다. ‘돌고래야, 얼굴 좀 보여줘’라고 생각하며.


    

  예전에 엘살바도르 해변에서 서핑을 하다가 거북이를 본 일이 떠올랐다. 연달아 파도타기에 실패한 나는 파도 너머에 있는 잔잔한 수면을 향해 헤엄쳐 갔다. 그리고는 서핑 보드 위에 앉아 눈앞에 펼쳐진 망망대해를 바라봤다. 뒤를 돌아보니 사람들이 서핑을 하거나 해변에서 파도를 맞고 있었다. 하지만 스피커가 고장 난 텔레비전을 보듯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과 나 사이에 보이지 않는 막이라도 생긴 듯 완전히 홀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 순간 내 앞으로 거북이가 지나갔다. 아주 커다란 거북이가. 정말 마법 같은 일이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잠잠했던 수면이 미동하더니 둥글고 윤기 나는 머리가 ‘푸우~’ 하는 숨소리와 함께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이내 꼬리를 치며 들어갔다. 아주 잠깐이었다. 가이드북에 나온 사진처럼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검푸른 등에 볼록한 지느러미, 반원 모양의 꼬리는 분명 돌고래가 맞았다. 갑자기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멀리 떨어져서 못 본 사람들이 빠르게 내가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일제히 몰려들면 돌고래가 도망갈 것이 뻔한데도 흥분한 사람들은 운전기사를 재촉했다. 이번에는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돌고래가 나왔다. 그리고 그 옆에서 한 번 더. 돌고래는 혼자서 나타나기도 했고 둘이 짝을 지어서 함께 나오기도 했다. 나는 운전기사에게 돌고래를 쫓지 말자고 말했다. 여행객들 중 어떤 사람은 돌고래가 잘 보이지 않는다며 투덜거리기도 했지만 나는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돌고래를 사진에 담지 못해도, 자세히 보지 못해도 괜찮았다. 그들의 존재를 확인한 것만으로도 만족했다. 

    투어를 마치고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왔다. 선풍기는 나갈 때와 마찬가지로 머리를 좌우로 돌리며 강풍을 만들고 있었다. 아직 트레킹의 여파가 남았는지 몸을 조금 움직였을 뿐인데도 극심한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푹 꺼진 침대에 몸을 던졌다. 손가락 하나 움직이기도 싫을 만큼 피곤했지만 허기가 느껴졌다. ‘지금 잠을 자버리면 새벽 내내 배가 고플 텐데’하는 생각이 들었다. 밖에 나가서 무엇이든 먹고 허기를 달래야 했다. 이럴 땐 식당이 딸린 게스트 하우스가 좋다. 굳이 피곤한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서 식당을 찾느라 애쓸 필요가 없다. 또 경험상 이런 식당의 음식은 맛도 꽤 좋은 편이다. 

    나는 일층으로 내려가 빈 테이블에 앉았다. 중학생쯤 돼 보이는 소녀가 와서 주문을 받았다. 나는 파스타를 주문했다. 강바람이 시원했다. 나는 음식을 기다리며 어스레한 하늘을 봤다. 먹구름 때문에 노을 같은 건 기대할 수 없었다. 그나저나 끝내 미스터 픽을 만나지 못한 건 많이 아쉬웠다. 꽁지머리 사내가 자신의 안부를 전해 달라고 부탁도 했고, 그를 만났다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잠시 후 파스타가 나왔다. 나는 파스타를 내려놓는 소녀에게 물었다. 

   「혹시 미스터 픽을 아니?」 

   「알죠.」 소녀는 무심한 듯 대답했다. 

   「그는 언제 이곳에 오니?」

    소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리고는 목이 파묻힐 만큼 양 어깨를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가 오고 싶을 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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