끄라쩨를 출발한 버스는 약 네 시간을 달려 캄퐁참(Kampong Cham)에 도착했다. 캄퐁참 초입엔 커다란 메콩강이 흐르고 있었다. 버스는 그 위를 가로지르는 대교를 건넜다. 캄보디아에 있으면서 본 가장 긴 다리였다. 창밖으로 황토색 기와지붕과 군데군데 높게 솟은 빌딩이 보였다.
나는 이곳과 관련해서 흥미로운 사진을 본 적이 있었다. 사진 속에는 폭이 넓은 강이 있고, 그 강을 가로질러 대나무로 만든 다리가 놓여있었다. 삐쭉삐쭉 뻗은 대나무들은 식물의 뿌리처럼 강 아래에 촘촘하게 박혀 다리를 지탱했다. 어찌나 튼튼해 보이던지 수많은 사람들이 긴 행렬을 이루고 있는데도 끄떡없어 보였다. 심지어 그 행렬엔 자동차도 몇 대 있었는데 말이다. 그 사진이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이곳에 오면 꼭 그 다리를 건너야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창밖으로 대나무 다리를 찾아봤다. 하지만 다리를 다 건널 때까지 그 비슷한 것도 보지 못했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강변으로 갔다. 대나무 다리를 내 눈으로 직접 찾고 싶었다. 현지 사람에게 대나무 다리의 위치를 물어보면 쉽게 찾을 수 있었겠지만, 서점 직원에게 원하는 책을 찾아 달라고 하기보다는 거대한 책 더미 속에서 직접 책을 발견할 때처럼 설렘과 보람을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리 돌아다녀도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내 힘으로 찾는 건 무리인가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강 너머로 높은 탑을 하나 발견했다. 붉은색 벽돌로 된 탑이 홀로 서서 저물어 가는 해의 황금색 빛을 받고 있었다. 저 탑의 꼭대기에서라면 대나무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한눈에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아무 툭툭이나 잡아타고 그곳으로 향했다.
이 탑은 올드 프렌치 라이트 하우스(Old French Lighthouse)로 프랑스 식민지 시절에 지어져 등대로 사용됐었다. 지금은 그냥 빈껍데기로 남아 전망대 정도로만 이용되고 있다. 가까이에서 본 등대는 높고 고풍스러웠다. 크기가 다른 세 개의 사각형 탑을 차례로 쌓아 올린 것 같은 외관은 위로 갈수록 점점 좁아졌다. 시계탑으로 해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었다.
입구 옆 벽엔 담쟁이덩굴이 달라붙어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자 작은 소리도 울릴 만큼 속이 텅 비었다. 사다리를 이어 붙인 것 같은 녹색 철제 계단만이 그 속을 채우고 있었다.
나는 난간을 붙잡고 계단을 올라갔다. 계단은 앙코르 왓의 중앙 성소가 떠오를 만큼 가팔랐다. 난간이 없었다면 오를 시도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얼마나 힘을 줬던지 난간을 쥔 손이 점점 혈색을 잃어갔다. 꼭대기에 도착했을 땐 손바닥에 비릿한 쇠 냄새가 진하게 배어 있었다. 밖으로 나가자 좁은 공간에 베란다가 둘러져 있었다. 성인 한 사람 정도만 서 있을 수 있을 만큼의 폭이었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딱 사람이 공포를 느낄 만큼 높았다. 나는 그곳에 서서 강을 바라봤다. 탁 트이는 경치가 펼쳐졌다. 강 너머로는 깜퐁참 시내가 한눈에 보였다. 마침 붉은 태양이 다리를 비추며 드라마틱한 광경을 만들었다. 나는 대나무 다리를 찾는 것도 잊은 채 일몰을 감상했다. 잠시 후 정신을 차리고 시선을 강으로 돌렸다. 강 위에는 낚싯배 몇 척이 떠다녔고 주변과는 어울리지 않게 빌딩 하나를 통째로 뉘어 놓은 것 같은 커다란 크루즈도 정박해 있었다. 하지만 이게 다였다. 아무리 봐도 대나무 다리는 보이지 않았다.
실망한 나는 ‘죄송하지만 재고가 없네요’ 혹은 ‘거기 없으면 없는 거예요’라는 말을 들을 걸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점원을 찾아가는 심정으로 툭툭 기사에게 물었다.
「혹시 대나무 다리가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대나무 다리는 우기 때는 볼 수 없어요. 강 수위가 높아져서 다 잠겨버리거든요.」
나는 실망을 감추지 못했다. 우기에 여행한다는 건 사람이 많지 않아 좋았지만 건기에만 누릴 수 있는 것들은 포기해야 해서 아쉽기도 했다.
「코파엔(Koh paen) 섬엔 언제 가세요?」
「코파엔이요?」
「대나무 다리를 찾았잖아요. 코파엔 섬에 가려고 그런 거 아니었어요?」
코파엔은 캄퐁참의 메콩강에 있는 모래섬이다. 대나무 다리는 코파엔과 캄퐁참 시내를 이어주는 다리였던 것이다. 툭툭 기사에게 대나무 다리를 찾는다는 건 당연히 코파엔에 간다는 소리였다. 나는 그런 섬이 존재하는 줄도 모르면서 대나무 다리만 찾았던 것이다.
「다리가 잠겼는데 섬엔 어떻게 가죠?」
「당연히 배를 타고 가야죠.」
「배라면 강에 정박해 있던 그 배요?」
「네. 그리고 섬 안을 둘러보려면 오토바이가 있어야 할 겁니다. 제가 오토바이로 가이드를 해 줄 수 있는데, 어때요?」
「네. 좋아요.」
나는 꿩 대신 닭이라고 생각했다.
다음 날. 나는 그의 오토바이를 타고 선착장으로 갔다. 강변을 따라 얼마 안 가 크루즈가 보였다. 하지만 툭툭 기사는 크루즈를 지나치더니 외따로 떨어져 있는 또 다른 선착장으로 갔다. 그곳엔 뗏목처럼 생긴 배가 떠 있었다. 두 개의 길고 날렵한 낚싯배를 붙이고 그 위에 커다란 나무 합판을 대어 만든 수송선이었다. 뒤에 있는 커다란 모터만이 이 배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음을 알려줬다. 우리는 오토바이와 함께 배에 올랐다. 뒤이어 봇짐을 들거나 오토바이를 탄 사람들이 배에 올랐다. 나중에는 소, 말, 자동차까지 올라왔다.
잠시 후 모터가 돌기 시작하더니 굉음과 함께 배가 출발했다. 강은 잔잔했다. 배 위의 사람들은 섬에 도착할 때까지 미동도 않고 가만히 반대편 선착장을 응시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배 가장자리에는 난간이나 그 흔한 밧줄조차도 두르고 있지 않아 자칫하면 강에 빠지기 십상이었다. 섬까지는 10분도 안 걸렸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탈것을 타고 섬 안으로 들어갔다. 짐이 잔뜩 실린 마차를 끝으로 배 위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내렸다. 나도 툭툭 기사의 오토바이를 타고 섬 안으로 들어갔다.
초입엔 드문드문 외딴 집들이 있었다. 전형적인 시골마을이었다. 학교 앞을 지나는데 반대편에서 자전거를 탄 아이들이 우리와 부딪힐 듯 교차해서 지나갔다. 뒤를 돌아보니 아이들은 다시 방향을 틀어 우리를 따라 전력으로 페달질을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뭐가 그리 신났는지 얼굴에 잔뜩 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자전거로 오토바이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이었다. 아이들의 모습이 점점 작아졌다.
우리는 좁은 길을 지나 평야로 나왔다. 드넓은 초원에는 말과 소들이 각각 무리지어 풀을 뜯고 있었다. 곧이어 논과 밭이 나왔다. 툭툭 기사는 잠시 오토바이를 세우더니 농부들에게 큰 소리로 무어라 말했다. 그러자 일을 하고 있던 농부들이 허리를 펴며 웃는 얼굴로 무어라 대답했다. 서로의 안부를 묻는 것 같았다. 툭툭 기사는 마치 이 섬에서 태어나 유년시절을 보낸 사람처럼 섬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다.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길을 찾아 달렸고, 섬사람들을 만나면 꼬박꼬박 인사했다. 중간에 휘발유가 떨어졌을 때도 어디로 가면 휘발유를 구할 수 있는지 알고 있었다.
섬에는 불교인지 힌두교인지 알 수 없는 사원도 있었다. 사원 한쪽에는 스투파(Stupa, 사리탑)들이 모여 있었고, 흰 코끼리상과 합장을 하고 있는 신상도 있었다. 힌두교 사원인가 생각하고 보면 법당 안에 가부좌를 하고 앉은 부처상들이 있어 혼란스러웠다.
사원에서 멀지 않은 곳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풍경의 마을이 있었다. 남자들은 챙이 없는 모자를 쓰고, 여자들은 히잡(Hijab)을 쓰고 있었다. 이곳은 섬에 있는 무슬림 마을이었다. 마을 안쪽에는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가 있었다. 성처럼 높은 담이 둘러져 있었고, 입구를 통해 본 내부에서는 챙 없는 모자를 쓴 아이들이 뛰놀고 있었다. 툭툭 기사는 모스크에는 들어가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캄보디아에는 소수민족인 참족이 있다. 이들은 대부분 이슬람을 종교로 하는 무슬림인데, 캄퐁참에 많이 모여 산다고 한다. 캄퐁참이란 지명도 참족의 항구라는 의미로 이런 사실과 관련이 깊다. 생각해 보면 캄퐁참 시내에도 눈에 확 띄는 크고 새하얀 모스크가 있었다.
한 시간이 넘게 울퉁불퉁한 길을 달렸더니 엉덩이가 배겼다. 이젠 아무리 달려도 그곳이 그곳 같았다. 나는 툭툭 기사에게 그만 돌아가자고 말했다.
선착장으로 돌아오는 길에 어느 외딴집 앞에서 탁발을 하는 승려를 봤다. 땡볕에 바닥이 달궈질 대로 달궈졌을 텐데 맨발이었다. 승려의 몸은 깃털처럼 가벼워 보였다. 얼마나 작고 말랐는지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하늘 위로 떠오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 앞에는 어머니와 소년이 있었고, 승려는 그들을 위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승려와 함께 어머니와 소년도 눈을 감고 기도했다. 궁금했다. 그들은 무슨 기도를 그렇게 했던 것일까.
숙소로 돌아온 후 밖으로 나가 강변을 걸었다. 오랜만의 산책이었다. 캄퐁참 시내에는 유난히 BBQ라고 적힌 간판이 많았다. 덕분에 저녁 메뉴는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그중 가장 규모가 큰 식당에 들어갔다. 식당엔 사람들이 많았다. 나는 입구 쪽 자리에 앉아 BBQ를 주문했다. 잠시 후 젊은 남자가 와서 불판을 달구고 고기와 오징어, 새우, 각종 야채들을 내왔다. 그는 먼저 돼지비계로 불판에 기름칠을 했다. 그리고는 버터 한 조각을 녹이더니 이제 원하는 재료를 구워서 먹으면 된다고 했다. 원하는 재료? 나는 상 위에 있는 것을 몽땅 집어 넣고 고기와 야채가 익을 때까지 마구 휘저었다. 그리고는 테이블 위의 다양한 소스들을 감에 의존해 섞고 고기와 야채를 찍어 먹었다. 버터의 고소함이 입 안에 퍼졌고 이내 고기의 쫄깃함과 야채의 아삭함이 느껴졌다. 나는 정신없이 불판 위의 음식들을 모두 먹어치웠다. 오랜만의 포식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배가 아프기 시작한 건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할 즈음이었다. 나는 허리를 잔뜩 굽힌 채로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곧장 화장실로 가 좀 전에 먹은 음식들을 모두 토해냈다. 고개를 들어 거울을 보니 새까맣게 그을려 있어야 할 내 얼굴이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배는 여전히 허리를 펼 수 없을 정도로 아팠고 머리도 지끈거렸다. 나는 침대 맡에 세워 둔 배낭을 열어 상비약 봉투를 꺼냈다. 제이에게서 받은 후로 처음 꺼내 보는 거였다. 그 안에는 진통제, 소화제, 종합 감기약, 연고, 상처용 밴드, 지사제, 물파스, 붙이는 파스 등 다양한 약이 들어 있었다. 나는 어떤 약을 먹어야 하나 고민하다가 문득 여행자 보험을 들지 않고 여행을 떠난 게 떠올랐다. 어느 보험이 없는 여행자가 병원에 갔다가 하룻밤 입원비로 몇 백, 혹은 몇 천 만원까지 썼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이러다 병원에 가면 큰일이 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불안한 마음에 감기약, 두통약, 지사제, 소화제를 모두 입에 넣었다. 뭐가 됐든 빨리 이 고통을 멈추고 병원에 갈 일이 없게 해주길 간절히 바라면서.
효과는 빨랐다. 어느새 새우처럼 말았던 등을 곧게 펼 수 있었고, 뱃속에서 울리던 천둥소리도 잠잠해졌다. 깨질 듯이 아프던 머리도 이젠 잠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 만큼 진정됐다. 나는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침대에 누워 반은 잠들고, 반은 깬 채로 있었다. 갑자기 적막이 느껴졌다. 외로움이 밀려들었다. 돌아가고 싶었다. 이제 그만 집으로.
스물아홉 나의 캄보디아 STAY, NOT ST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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