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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르 Mar 16. 2022

가사관리사 덕분에 살아갑니다

우울해도 살아가기

내가 우울증을 앓기 시작한 뒤, 가장 먼저 일어난 변화는 가사를 돌보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우울증의 대표적인 증상으로 일상 에너지 고갈이 있다. 먹고 치우고 자고 장보고... 생활 유지에 필요한 것들을 다 놓아버린 채 우울의 세계의 갇히는 일. 바깥이 콩알만하게 보여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일. 우울증이 가장 심했을 때 나는 일상 에너지가 바닥난 채로 15평 공간에서 오직 몇 평 남짓한 좁은 침대만을 의지하여 살아갔다. 나는 내가 자고 생활하는 침대를 제외한 공간에는 손을 대기를 멈췄다. 먼지와 쓰레기가 쌓여가는 걸 매일 저녁 목도하면서도 도무지 치울 힘이 나지 않았다. 내 책상 위에 수북히 쌓여있는 약봉지와 빨래걸이 위에 대충 포개놓은 옷들, 싱크대 밖으로까지 튀어나와 위태롭게 서 있는 배달음식 용기들.. 이것들이 우리집 풍경이었다.

그래도 밥벌이는 놓을 수 없기에 나는 사회에서 최소한의 기능은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존재에게 내 일상을 의탁했다. 바로 우리집 가사관리사다. 나는 매달 둘째주 화요일, 3시간의 가사관리 서비스를 이용한다. 이름도, 성별도, 나이도 모르는 그 분은 한 달에 한 번 내가 만들어놓은 각종 수치스러운 껍데기들을 목격한다. 나는 단 4만 5천원으로 그분의 시간과 에너지를 사서 내 생활을 유지한다. 누군가가 벗어놓은 옷가지와 먹고 방치해놓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은 노동과 대가의 일대일 교환이라고 보기에는 어딘가 불편한 구석이 있다. 그 노동을 단돈 몇 만원으로 책정할 수 있는 것일까. 시장에서 이 노동에 책정한 가격이 이 정도이면 합리적인 것일까. 많은 질문이 따라오지만 그래도 나는 이 서비스를 중단할 수 없다. 누군가에겐 소중한 일자리이고 나같은 사람에겐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최후의 보루니까.

그래서 우리집 가사관리사에게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간다. 유령처럼 왔다가 어지러진 나의 삶을 원상으로 복귀시켜놓고 소리없이 사라지는 존재. 그 존재는 알까. 자신이 누군가의 삶을 일으키고 지탱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단순히 어느 바쁜 직장인의 가사를 관리해주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정돈 안 된 것들을 정리만 해줘도 되는 서비스임에도 계절이 바뀌면 이불 빨래를 해주고 어느 순간부터 침대와 책상을 유독 정성스레 정리해놓은 손길을 볼 때, 3시간짜리 서비스를 신청했는데도 5시간 6시간 넘게 방 구석구석을 청소해주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어느 순간부터 이름 모를 그 존재가 내 삶에 가장 중요한 존재가 되어있다. 2030 여성 우울증 환자와 여성 가사관리사. 그와 나는 서로의 사정을 모르지만 각자 필요한 것을 주고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나는 그에게 이토록 친절하지 않은 세상을 서로 도우며 살아간다는 근거없는 연대감을 느낀다. 가사 서비스를 받는 매달 둘째 주 화요일은 공허와 냉기로 가득찬 내 마음이 따듯해지는 그런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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