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동안 거의 날마다 조카랑 통화를 했다.
역시 사람은 의미 없는 헛소리나 하고 장난이나 치고 하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것 같다.
도쿄 타워 꼭대기에서 야경도 보여주고 많이 컸네...
추석이 지나면 또 학원 다니느라 바빠져서 통화도 못 하니까 지금 많이 해 둬야지.
어제는 슈퍼에 갔다가 배추와 일본무가 보여서
충동적으로 김치를 담갔다.
새벽 5시까지 두 포기 하고 섞박지도 하고.
나는 왜 요리를 좋아할까, 어떤 사람들은 요리 정말 귀찮다고 하는데.
요리하면서 음악을 듣거나 유튜브를 보지도 않는다.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닌데,
요리가 끝나고 나서야 시간이 이렇게나 지나갔음을 느낀다.
거의 몰입도 최상의 작업.
요리를 하다 보니까 간 맞추는 게 정말 중요한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온도도!
모든 게 그렇겠지만 요리도 이것저것 많이 해 봐야 느는 듯.
이번에는 사찰식 김치를 담갔다!
예전에 절에서 먹어 봤는데 정말 맛있었던 기억이 나서.
잘 발효되기를!
예전부터 느끼는 거지만
난 정말 날씨를 많이 탄다.
고등한 인간으로 태어났으니 날씨 정도는 조금 무시해도 될텐데.
얼마 전까지는 비가 추적추적 와서 젖은 낙엽 맹키로
흐물흐물 늘어져 있었는데
어제부터는 해가 나고 날씨가 좋다!
역시 창이 크고 테라스가 넓은 집으로 이사오기를 잘 한 것 같다.
스스로 결정하고 밀고 나가서 성공?을 맛 본 경험은 중요한 듯.
이런 경험이 부족하면 자기 확신을 갖기 어렵다.
그러면 줏대가 없는 사람이 된다.
어차피 세상에 정답은 없다.
중요한 건 내가 나를 믿느냐 아니냐의 차이.
아주머니께서 정원에서 직접 씨 심고 싹 틔어서 키운 것이라며
바질 화분을 선물해 주셨다.
타인에게 속아 본 사람들은 두 부류로 나뉘는 것 같다.
하나는 세상에는 더이상 믿을 사람이 하나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하나는 사람은 나 포함 원래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깨닫는 것.
내 기준과 타인의 기준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러니 아주 큰 일이 아니면 그냥 그러려니 넘기려 노력한다.
내 목숨이나 안위에 지장 없으면 서터레써 받는 것 보단 조금 손해 보는 것이 훨씬 나으니까.
조금 더럽게 사는 게 최고인 듯.
내가 이렇게 뭐라도 앉아서 끄적거리는 것은
지금 기분이 좋기 때문이다.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난 것은 아니다.
거실 테이블과 의자가 딱 내가 좋아하는 높이이고
실내 온도와 습도가 딱 내가 좋아하는 온도와 습도이고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이 딱 내가 좋아하는 밝기이고
멀리서 들리는 식기세척기 돌어가는 소리가 시끄럽지도 않고 그래서 적막하지도 않으며
환기를 막 해서 집에 아무 냄새도 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분위기를 어딘가에 담에서
필요할 때 다시 내 주변에 흩뿌려 놓을 수 있다면!
- 거기 알지? 모퉁이 오른쪽으로 돌면 까만 아기 고양이 하나 있어. 하얀 양말 신고 있는데, 엄청 귀엽더라. 난 차타고 출근하느라 그냥 왔는데 시간 나면 가 봐.
라는 문자를 받았다.
원래 고양이 관련 농담을 자주 주고 받는 편이라 그냥 하는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다음 날도 또 그 얘기를 꺼냈다.
가볼까도 생각했는데 굳이 가지는 았았다.
그 고양이가 있을까? 있었다 해도 아직도 있을리가? 없겠지? 라는 생각이 들다가
어제는 정말 그 근처를 갈 일이 있어 일부러 찾아가 보았다.
맙소사.
오른쪽 모퉁이를 돌자마자
인도를 폴짝폴짝 돌아다니는 작고 검은 털뭉치를 보았다.
하지만 인기척이 들리니 바로 옆 빈 상가 문 밑으로 재빠르게 들어가 버렸다.
- 정말 있다고?
벌써 며칠이나 지났는데, 이건 말도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나는 그 고양이가 내가 들었던 고양이가 아닌 다른 고양이일 것이라는 사실을 내 눈으로 확인해야 겠다고 생각했다.
- 이리와. 고양아. 냐옹냐옹. 마하! 마하! 미아요, 니아옹. 쯥쯥쯥쯥.
- 냐옹.
- 냐옹.
- 냐옹.
- 냐옹.
문 안에서는 내 고양이말에 꼬박꼬박 대답을 하는데 얼굴을 보이러 나오지는 않았다.
그래서 서로 냐옹냐옹만 한 20분 했나?
지쳐서 가려고 하는데 뭔가 다급한 냐옹냐옹 소리가 가까워지는 느낌.
뒤를 돌아보니
흰 양말을 신은 검은 털뭉치가 나를 빼곰히 쳐다보고 있었다.
근데 이내 다시 상가로 들어가 버렸다...
슈퍼에서 장을 보며 고양이 캔이라는 것을 난생처음 사봤다.
뭐가 좋은지 몰라 그냥 비싸고 맛있어 보이는 걸로 샀다.
고양이들의 혼을 빼 놓는 츄르라는 게 있다는 걸 들었는데, 여기서는 찾지 못했다.
캔을 들고 다시 상가 앞으로 이번에는 차를 타고 갔다.
어둑한 밤.
오렌지색 가로등만이 길을 비추고 있었다.
오른쪽 모퉁이를 도니 작은 털뭉치가 주차되어 있던 차 밑으로 재빠르게 날아 들어가는 게 보였다.
혹시 도망갈까봐 차 안에서 기다렸는데
다시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조금 떨어진 정원이 딸린 집에서 개 두 마리가 화가 나서 짖는 소리가 났다.
필시 고양이를 보고 짖는 것.
캔을 들고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갔는데 아무리 찾아도 털뭉치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골목을 어슬렁 거리다가 바람이 쌀쌀해져서 그냥 돌아왔다.
내일 밝을 때 다시 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