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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K Dec 31. 2022

파일럿 진로특강

조종사 직업인 특강 




마스크 위로 반짝이는 초롱초롱한 어린 친구들의 눈빛이 수십 개의 렌즈가 되어 돋보기처럼 나의 미간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아직은 더운 기운이 남아 있던 9월이었다. 강단에 서 보기는 

오랜만이었다. 기종을 전환하는 조종사들의 교육을 담당해서 수업을 진행하던 날들이 떠올랐다. 굳이 동기부여를 하기 위해서 애쓰지 않아도 앞으로 자신들이 해내야 하는 일들이었기에 수업에 대한 집중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사내 교육이었다. 하지만 요즘의 학생들은 어떨까. 



센터의 부탁으로 인천공항이 있는 관내의 한 중학교에서 진로활동 프로그램 비행기 조종사 특강 의뢰가 온 것이다. 흔쾌히 수락했지만 수업을 위한 프레젠테이션을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았다. 15년 전 중학생을 대상으로 학부모 직업인 특강에 초대되어 간 일이 있었다. 그때의 기억을 되살려 교실의 풍경을 다시 머릿속에 그려 보았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무슨 이야기를 했었는지 구체적인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도서관에서 수업이 진행되었고 이십여 명 되는 아이들이 반 친구의 아빠가 하는 말을 열심히 들어주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때의 아이들과 지금의 아이들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15년 차이 아이들의 세대 차이가 얼마나 날지 궁금했다. 하지만 더 많이 변한 것은 나 자신이었다. 국내의 메이저 항공사를 그만두고 중국으로 건너가 5년의 세월을 보냈으며 이제까지 없었던 코로나라는 처음 겪는 사태를 아직도 빠져나가지 못하고 있다. 이야기를 어떻게 풀어낼 것인지 고민되었다. 아이들은 어떤 것들을 궁금해할까, 선생님들은 어떤 메시지를 원할까. 조종사라는 직업을 아이들이 원해서 초청하는 것일까, 아니면 선생님들이 선택한 것일까. 질문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제일 걱정되는 것은 학생들의 수준에 맞게 수업 준비를 하는 것이었다. 크게는 아이들의 주의집중력과 

지식수준이 과거에 비해 크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통상 집중력을 말할 때 ‘20분의 벽’이라는 것이 있다. 

성인도 20분이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진다. 하물며 어릴 때부터 태블릿 PC가 익숙한 신세대들의 집중유지 시간은 더 급격하게 떨어져 유튜브 영상이나 틱톡 콘텐츠도 30초에서 1분, 길어야 1분 30초다. 이런 친구들 앞에서 두 시간 동안 수업을 한다는 것은 굉장한 모험이자 도전이라고 할 수 있다. 


구세대가 텍스트와 말로 정보를 받아들였다면 지금 세대는 사진과 영상이 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작년 겨울 배웠던 각종 영상편집 및 컴퓨터 활용 능력이 동원되어 동영상 편집과 함께 다채로운 발표 자료를 만들기 시작했다. 배우면 다 쓸데가 있다더니 역시 일단 배우고 볼 일이다. 어디서 어떻게 쓰일지는 모르지만 어떤 일을 하는데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작은 능력이라도 적재적소에 활용할 수 있는 지혜만 있다면 보다 높은 양질의 결과물을 만들 수 있다. 또한 기록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꼈다. 메모하거나 일기 쓰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진이나 영상물을 꾸준히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나중에 나에 대해 설명하거나 나의 삶을 소개할 때 쓰일 수 있는 귀한 보물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이 보급되지 않았던 때의 사진 자료나 동영상 자료는 구할 수가
없었지만, 그 시절의 비슷한 과정을 그려낸 드라마 파일럿 덕에 자료 화면을
구할 수 있었다. "파일럿"이 방영되었던 1993년은 군 제대 후 복학했던 해다.
학교 근처 어느 허름한 분식집에서 밥을 먹으면서 선반 위에 달려 있던 티브이를 통해 멍하니 그 드라마를 보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는 그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될지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었다.   

   

지금의 중학생은 과거와 비교해서 고등학생 정도의 정보와 지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의 변화가 심하고 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가 만든 결과이다. 글을 쓸 때 중학교 1학년을 앞에 앉혀 놓고 말하듯 글을 쓰라고 한다. 그만큼 쉽고 간결하게 쓰라는 말인데 요즈음의 중학교 1학년은 아는 것이 너무 많다. 발표자료에 포함되어야 하는 것 중에 강사 소개와 함께 직업을 택하게 된 동기에 대해서 설명해야 했다. 하지만 무언가 콕 집어서 드라마틱하게 들려줄 사건이나 계기는 없었다. 그렇다고 물이 엎질러진 것처럼 그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그렇게 말할 수도 없었다.

      

군에서 제대하고 복학을 준비하는 동안 친구와 도서관에서 영어 공부를 하고 있을 때였다. 친구가 비행훈련원에서 조종사가 되기 위해 훈련하고 있는 조종훈련생들의 생활을 담은 다큐먼터리를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는 안경을 써서 못하지만 내가 너라면 한번 도전해 보겠다라는 말을 건넸다. 그냥 대수롭지 않은 대화였고 그렇게 별 볼일 없이 잊어버렸다. 


복학한 후 정신없이 3학년을 보내는 중 대기업 인턴이 될 기회를 잡았다. 3학년 방학을 인턴으로 근무하면서 연구실에서 보냈고 4학년 여름방학이 되면서 신입사원 교육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그때 마지막 견학 과정이 구미의 TFT-LCD공장을 견학하는 것이었는데 공대생의 특성상 현장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공장이 내다보이는 숙소에서 밤이 깊어지자 대단지 공장의 불이 하나둘 꺼지기 시작했다. 가로등이 모두 꺼지자 온 세상이 컴컴한 암흑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참 외로운 곳이었다.      


그렇게 연수 과정을 마치고 졸업반 마지막 학기가 시작되던 때 어떤 신문 광고를 보게 되었다. 함께 하자는 친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가족 중에 누가 그런 일을 하는 사람도 없었지만, 친구가 무심히 던졌던 그 한마디가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알고 있고 내가 보아온 세상이 아니라 처음 가보는 곳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함께 겪을 일들이 ‘신밧드의 모험’처럼 펼쳐질 것 같았다. 당시에는 올림픽을 치르고 나서 대학생들의 유럽 배낭여행이 유행이었지만 나는 그런 여행을 하지 못했었다. 나름 친하다고 생각했던 한 친구가 한마디 말도 없이 훌쩍 배낭여행을 떠나버려 마음에 상처가 되었던 일도 있다.
아마도 그래서 더 외국에 가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릴 적부터 꿈을 꾸었던 것도 아니고 한 번도 심각하게 그 직업에 대해 알아보거나 부모님과 상의해 본 적도 없었다. 다만 더 넓은 세상에서 전혀 알지 못하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난 원인을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은 어렵다. 제럴드 다이아몬드의 "총, 균, 쇠"에서도 결국 이 모든 

세상의 질서가 지리적 "우연"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요즘의 학생들은 우연이란 비과학적인 말을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 일어난 현상은 설명되어야 하고 인과관계가 분명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마음속에 심어진 작은 씨앗이 어떤 밭에 떨어지는가는 우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씨앗이 싹을 틔우는 것은 그 밭의 흙과 씨앗이 서로 맞았을 때 일어나는 필연이다. 나는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마음속에 내 친구가 무심히 던졌던 말처럼 겨자씨만 한 꿈을 심고자 했다. 수업을 듣는 학생 중에 단 1명이라도 그 싹이 터서 자란다면 그것으로 성공이다.     



중학교 한 곳을 하고 나니 9월에는 경북에 있는 한 대학의 항공운항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멘토링 특강이 또 들어왔다. 그때부터 계속 특강이 이어 줄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태풍으로 직접 갈 수는 없어서 줌(Zoom)으로 수업이 대체되었다. 줌 강의를 하면서 그동안 2년 반 정도의 코로나 기간을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한 학생들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강의하는 입장에서 학생들이 화면에 보이지 않거나 반응을 볼 수 없어서 맥이 빠지는 데다 혼자서만 열심히 떠들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같은 공간에서 느낄 수 있는 공기의 진동이 없어 마치 진공상태에서 쏟아지는 샤워기의 물이 그대로 하수로 떠내려가는 것 같았다.      



반면 대면으로 진행되었던 부산의 한 대학의 항공운항과 수업은 완전히 달랐다. 급하게 연락을 받고 부산까지 달려갔다. 학생들은 모두 제복을 입고 있었고 계단식 대학강의실에서 수업이 진행되었다. 너무 진지해서 다소 무겁고 심각한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다. 몇몇 여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조종사가 되는 과정을 전공하는 학생들이었기에 사전 질문을 받아 그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프레젠테이션을 준비했다. 멘토링을 하면서 받았던 질문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서 크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보다 전문적이고 구체적인 정보를 주어야 했고 강의 중 선택하는 용어나 어휘의 수준을 조금 더 높여야 했다.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멘토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능하다면 멘티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직업에 두 명의 멘토가 필요하다. 이미 그 길을 다 지나서 길의 반대쪽에 서 있는 멘토와 바로 앞을 걸어가면서 길을 안내하는 페이스메이커와 같은 멘토 이렇게 둘 말이다. 저 멀리 있는 멘토는 길의 방향을 잡아주고 바로 앞에서 뛰는 멘토는 속도와 페이스를 조절해 주는 역할을 한다면 먼 길을 떠나는 멘티들에게 완벽한 안내자가 될 것이다. 부산까지 왔지만 바로 부산을 떠나야 했다. 그때 잠시 머무르고 있었던 영월의 한 중학교 특강이 바로 다음 날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겨우 돼지국밥 한 그릇 챙겨 먹고 돌아오긴 했지만 제복을 입고 꿋꿋하게 공부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오히려 내가 더 힘을 얻었던 시간이었다.  

    

강원도 영월의 작은 마을에서 시골 생활 중이었다. 근처 마을에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하나씩 있었다.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이십여 명, 중학생은 십여 명이었다. 곧 도시로 돌아와야 할 시기가 얼마 남지 않은 때였다. 체험마을에 방문한 초등학생들의 포도 따기 체험을 도운 적이 있었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얼마나 귀엽고 사랑스럽던지 아이들의 사진을 정성스럽게 찍어 주었다. 선생님들도 의욕이 넘치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눈빛이었다. 체험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동행해서 선생님들과 대화를 나누며 걷던 중에 진로특강 이야기가 나왔다. 내 소개를 하고 영월을 떠나기 전에 아이들에게 직업인 특강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들은 반색하며 바로 스케줄을 잡자고 했다. 그렇게 이루어진 초등학교 특강은 특별히 준비를 많이 했었다. 아이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도 준비했다. 고무줄로 날리는 종이비행기 키트도 마련했다. 아이들은 특강 다음날 제주도 수학여행으로 비행기를 타야 해서 참 적절한 시기의 특강이었다. 아이들의 반응이 너무 좋았다. 재미있는 이야기에서는 탄성도 지르며 놀라워했다. 수업 진행자로서 그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https://youtu.be/ie6sXiJcVWk

   



도시로 돌아온 후에도 서울의 중학교 몇 군데에서 직업인 특강을 하게 되었다. 역시 중학생 대상 강의는 쉽지 않다. 반응도 없고 자는 학생들도 있었다. 학교의 태도도 학교 별로 매우 달랐다. 정말 "직업인 특강"이나 "롤모델 특강"을 제대로 하고자 하는 학교들은 아침 시간에 특강을 배치했다. 교장, 교감 선생님이 직접 나와서 아이들 잘 부탁한다고 당부 말씀도 잊지 않는 학교들이 그런 학교들이다. 점심 식사 후 5,6 교시는 성인도 견기기 힘든 시간인데 그 시간에 특강을 잡아 놓는 학교들은 특강에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립학교와 공립학교의 차이도 컸다. 사립학교는 빌트인 된 대형 티브이에 터치 스크린까지 이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시설이 좋았지만, 공립학교들은 선생님들이 각각 노트북을 들고 다니면서 수업을 했기 때문에 시간이 바뀔 때마다 기재를 바꾸어야 했다. 

    

중학교 특강 중에는 한 여중의 특강이 기억에 남는다. 네 시간 연속 같은 강의를 반복했는데 똑같은 내용인데도 학생들의 반응이 매 교시 달랐다. 중학교 1, 2학년은 코로나 기간에 입학을 한 학생들이라 그런지 질문이나 반응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하지만 3학년들은 또 분위기가 완전히 달랐다. 강의하는 입장에서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었다. 같은 내용인데 반응이 완전히 다르다면 어떻게 수업을 더 개선해야 하는지 종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중학교 선생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업 중에는 간혹 눈이 초롱초롱해서 무언가를 빨아들이고 있는 듯한 학생들이 있다. 수업이 끝나고 나서 수줍게 다가와 “재미있었어요, 감사합니다”라고 표현하는 학생들도 있다. 그런 학생들을 위해서라도 선생님들은 힘을 내야 한다.     




2022년 마지막 수업은 고등학생 대상 수업이었다. 직업인 멘토들을 초대해서 자유롭게 듣고 싶은 수업을 신청하는 것이었는데 학생 수가 적더라도 이런 방식의 수업이 훨씬 수월하다. 일단 소수라도 관심이 있는 학생들이기 때문에 참여하려는 의지와 수업집중도가 높기 때문이다. 어떤 직업군이 초대되었고 어떤 직업에 관심이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의외로 인기가 높을 것 같은 댄서나 아나운서, 승무원 같은 직업보다는 공학자에 신청 인원이 더 많았다. 고등학생만 되어도 현실에 눈을 뜨는 것인지 아니면 과학중점고등학교여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의외였다. 




공학의 경우에도 전자, 전기가 아니라 화학공학자가 1위를 차지한 것도 의외이며, 상담심리사가 2위란 것도 흥미롭다. 패션디자이너, IT연구원, 프로그래머가 상위를 차지한 것은 그럴듯하다. 직업군인과 간호사가 상위에 속하는 것은 경제상황이 별로 좋지 않다는 신호이고, 파티시에, 반려동물훈련사,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새로운 시류를 말해준다. 반면 승무원의 인기도가 떨어진 것은 주목할 만하다. 그동안 여학생들의 인기 직종에서 코로나 이후 직접 고객을 대면하는 데다 감정노동을 기피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것일까. 항공기 조종사는 일반적으로 널리 알려진 직종은 아니기에 16명에 만족했다. 고등학생이라 그런지 수업 참여도 적극적이고 수업이 끝난 후 질문도 있었다. 올해 마지막 강의는 강의완성도만 따졌을 때는 가장 만족했던 수업이었다.      


시대의 변화 주기가 짧아지면서 아이들은 전공을 택하거나 직업을 선택하기 더욱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다. 새로운 직업이 하루가 다르게 쏟아지는 상황에서 미국과 비교해서 직업의 종류가 반도 안 되는 한국은 아직 개척되지 않은 분야가 너무 많다. 전통적인 직업만 선호하는 한국의 부모들도 이제는 이 하강기류 속의 문화 속에서 필요한 새로운 직업을 아이들이 마음대로 택할 수 있도록 조금 더 넓은 여지를 주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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