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와 비둘기

세상에 불필요한 존재는 없었다.

 사람들이 삼삼오오 앉아 평온한 시간을 보내는 어느 오후의 수변 공원. 유독 한 남자 주변에만 사람이 없다. 대신 비둘기들이 한 가득 그의 주변에 모여 있다. 사내는 라면봉지에서 한 움큼 주먹을 쥐어 꺼내더니 둥글게 손을 오므려 잘게 부순 라면조각을 비둘기들에게 나누어준다. 아이에게 정성스레 밥을 떠먹이는 어머니의 모습이 겹쳐졌다. 사내를 에워싼 비둘기들이 땅바닥을 분주하게 쪼아대고, 주변에 흩어져있던 비둘기들도 하나 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어떤 비둘기들은 짧은 소매에서 뻗어 나온 흙빛의 두 팔 위로 파드닥 날개짓하며 기어오른다. 

 나뭇잎 가득한 가지 사이로 미끄러지는 햇살이 바람에 흔들거리며 그의 이마를 비춘다. 자글자글한 주름 끝에 매달린 조그만 눈, 며칠 간 세수는 하지 않았을 것 같은 거칠고 마른 얼굴 위로 미소가 흐른다. 광대에서 턱까지 이어지는 몇 겹의 주름이 입가에서부터 물결처럼 퍼져나간다. 사내는 홀로 자리에 앉아 있었지만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리고 곧 일어서서 라면봉지를 곱게 접어들고 몇 걸음을 걸어가더니, 붉은색 휴지통에다가 정성껏 쓴 편지를 부치듯 살포시 집어넣는다. 비둘기들을 배불리 먹였다는 흐뭇한 마음이 봉지 속에 담겨져 있었을 것이다.

 그러는 사이 장난기 가득한 아이들이 달려와 비둘기를 향해 주먹을 휘두르고 발길질을 한다. 비둘기들은 놀란 듯 사방으로 흩어지고, 그 모습을 본 사내는 입술을 깨물고 비둘기가 보이지 않는 쪽으로 애써 고개를 돌린다. 아이들의 장난은 더욱 과격해지고, 몇몇의 비둘기들이 걸음만으로는 부족한지 푸다닥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도약한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비둘기에 소스라치며 한 젊은 여성은 소리를 질렀다. 세상에서 비둘기가 제일 싫다고.    

 

 나는 다시 사내를 찾았다. 어디론가 걸어가던 그의 목적지는 편의점이었다. 유리문을 힘껏 밀고 나오는 그의 손에는 라면 한 봉지가 쥐어져 있었다. 누군가에게 혐오스러운 존재가 누군가에게는 위로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내가 비둘기들의 곁에 있는 것은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어서 였을까. 모든 존재는 세상에 있어야 할 이유를 품고 있었다. 무의미한 것은 없다. 누군가 싫어하는 것도, 미워하는 것도 어떤 다른 것을 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