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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빨간청개구리 Nov 06. 2022

케이스 스터디는 어떻게 만들어질까

아산기업가정신리뷰 AER

학생시절 적절한 예시만큼 이해하기 쉬운 건 없었다. 열 가지 이론보다 흥미로운 하나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면 꽉 막힌 생각이 뚫리며 머리가 가벼워졌다. 


경영학 학습 방법 중 하나인 케이스 스터디(Case Study)가 가진 힘은 그런 것이다. 기업이 직면한 실제 사건과 이벤트를 스토리 구조의 에피소드 형태로 제공하면 독자(혹은 학습자)들은 이를 읽고 고민의 시간을 가진 뒤 스스로 해결한다. 추리 소설처럼 문제에 몰입해 분석하고 해결하니 흥미롭다. 

하버드 비지니스 케이스는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이용되느 케이스 스터디 교재이다. (출처: 이코노미조선 기사)


케이스 스터디의 교육은 북미지역에서 인기가 높은데 나도 경험하면서 참으로 유익하다고 생각했다. 배움이 재미있다 보니 기회다 되면 나도 케이스 스터디 제작을 막연하게 바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오늘날 운 좋게 스타트업 케이스 스터디 제작에 참여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명함을 건네면 받는 이들의 반응은 비슷하다. 호기심과 함께 ‘스타트업 케이스는 무엇인가요?’, ‘그런게 있군요, 어떻게 만들어지나요?’ 라는 질문을 종종 듣는데 이 질문들에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답해보려 한다. 다만 내가 참여하는 케이스는 창업 교육을 목적으로  제작되기에 콘텐츠의 토픽은 (대)기업이 아닌 스타트업이라는 부분을 전제하고 글을 이어가겠다.



케이스 제작에는 고급 자원이 많이 소요된다

하나의 케이스 제작에는 많은 자원이 소요된다. 케이스의 주인공인 스타트업 기업 선정부터 발간까지 평균 6개월 내외(혹은 그 이상)의 시간을 거쳐 하나의 케이스가 제작된다. 케이스 집필에는 교수, 창업관련 대학원생, 창업 활동가등 다양한 배경을 가진 고급 인력이 선발 및 초청 된다. 케이스 주제와의 궁합(?)을 맞추어 집필진이 다시 조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소셜스타트업 케이스에는 ESG관련 창업 활동가가, e-commerce스타트업 케이스에는 마케팅 교수가 배정되는 방식이다. 보통 창업을 꿈꾸는 대학생, 대학원생들을 독자로 가정하고 이들의 창업 교육을 목적으로 제작되기 때문에 상당한 양의 시간과 재원, 그리고 고급인적 자원이 투입되는 편이다. 


미디어에서 다룬 성공보다는 알려지지 않은 어려움과 성장의 이야기에 집중

내가 참여하는 스타트업 케이스 스터디의 목적은 기업가정신의 학습이다. 스타트업과 창업자의 홍보가 목적인 미디어와 근본적으로 이야기의 포커스와 톤이 다르다. 장점과 성과를 나열하는 미디어의 칼럼과 달리 케이스 스터디는 창업자의 고민과 성장의 어려움에 주목한다. 


그래서 스타트업 케이스는 스타트업 성장의 변곡점이 되었던 이슈를 집중적으로 다룬다. 제품군 확장, 구성원의 변화, 투자유치의 어려움, 플랫폼 확장등 창업자라면 한 번쯤 겪었을 사건들이 케이스의 주요 에피소드이다. 


창업자의 성공에 주목하고 이를 장미 빛으로 색칠하는 미디어들과는 다르게, 스타트업 케이스는 창업자들이 어렵고, 힘들고, 지쳤던 순간과 이에 대한 극복의 해결책을 독자들과 이야기하고자 한다. 나 역시 케이스 집필에 참여 할 때 창업자가 어둠의 터널을 지나던 순간을 상세히 묘사해 독자들이 자연스럽게 창업자의 어려움에 감정 이입을 하도록 제작하고, 궁극적으로 학습효과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학습자와 교수자를 고려하여 제작한다.

케이스는 스토리와 티칭노트, 두 개가 하나의 쌍을 이룬다. 스토리는 스타트업과 사건에 대한 이야기로 학습자를 위한 자료이고, 티칭노트는 이름이 암시하듯 교수자를 위한 교육 가이드이다. 모든 케이스가 티칭노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있는 케이스 스터디 교재인 하버드 비즈니스 케이스(Harvard Business Case)는 티칭노트가 없는 경우도 있다.


내가 참여하는 케이스는 스토리와 티칭노트가 모두 제작되기 때문에, 학습자와 교수자를 모두 고려하여 제작한다. 케이스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함인데, 아무래도 교수자의 입장에서는 권장하는 학습 가이드라인이 함께 제시되어 있으면 창업 수업에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아산나눔재단(https://asan-aer.org/ )에서 발간하는 케이스 스터디 자료는 학습자를 위한 케이스(좌)와 티칭노트(우)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우리가 제공하는 티칭노트는 수많은 케이스 활용 방법의 하나일 뿐, 이용하는 학습자과 교수자의 목적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되고 이용될 수 있다. 


집필 기간동안 여러 차례의 심사와 수정을 거친다.

우리의 경우 1년에 두 번, 상반기와 하반기에 집필을 하는데, 집필 기간에는 수 차례 심사와 수정의 과정을 거친다. 몇 가지를 중요한 심사 요소는 다음과 같다.


-케이스에서 다룬 주제의 범위와 깊이가 적절한가?

-충분한 논쟁거리를 제공해서 학습자들에게 의미있는 자료가 될 것인가?

-논리적 판단의 근거가 될 만한 정량, 정성적 데이터가 포함되어 있는가?

-케이스에서 다루고 있는 회사 관계자의 생생한 인터뷰가 포함되어 있는가?


이외에도 세부적인 평가 요소들이 많이 있다. 이를 근거로 내부 평가와 외부 전문가 평가를 통과해야 케이스는 최종 발간이 된다. 최종 평가를 통과하지 못한 케이스들은 미발간 판정을 받거나 재수정을 거듭하여 평가를 통과한 다음 반기에 발간한다. 


예비 창업자를 위한 창업자의 이야기를 담는다

케이스는 글로 쓰여진 콘텐츠이기에 집필진이 있지만, 주인공은 창업자이다. 개인적으로 집필진은 창업자의 이야기를 듣고 교육 목적에 적절하게 제작하고 전달하는 역할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케이스 집필진은 최소한의 경영학적 배경지식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창업생태계에 대한 이해도가 무척 중요하다. 실제로 집필을 위해 창업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해보면 학문적으로, 특히 경영학 이론만으로 해석하기 어려운 에피소드가 많다. 예를 들어 시장에서의 위험 신호를 본능적으로 빠르게 감지하는 능력, 어려운 상황에서도 퇴사자 하나 없이 이끌어가는 뛰어난 리더십, 사이비(?)교주 마냥 잠시 듣고만 있어도 사람들을 홀리는 언변 등은 결코 학문적으로 완벽히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스타트업 케이스에는 위대한 기업인들의 자서전과는 다른 매력이 있다. 아마 아직도 생동감이 느껴지는 현장 속 창업자의 이야기가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스타트업 케이스는 창업자들의 자발적인 헌신으로 이루어진다

창업자들의 헌신 없이 케이스 스터디는 만들어질 수 없다. 케이스 스터디는 보통 시리즈A이상의 스타트업을 대상으로 쓰여지는데, 특히 성장하는 스타트업의 창업자들은 정말 쪽잠을 자면서 일정을 소화하는 중에 시간을 겨우 내어 복수의 인터뷰를 진행해준다. 이들의 인터뷰는 케이스 스터디의 재료로 활용된다.  


지금은 스타트업을 이끌고 있는 그들도 한 때는 예비창업자였고 어려움의 시간을 겪었기에, 창업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것이다. ‘기여’나 ‘공유’로 표현하기에는 부족하고 ‘헌신’이라는 표현에 가깝다. 

케이스 스터디 제작에 토픽기업으로 참여하기를 제안한 모든 스타트업들이 환영하지는 않는다. 사실 고등 교육기관의 창업교육 자료로 쓰이는 콘텐츠가 회사의 홍보에 엄청난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고 게다가 회사의 어려웠던 상황과 약간의 대외비밀자료까지 공개해야 할 수도 있으니 기대효과 보다는 부담이 클 수 도 있다. 케이스 제작을 위해 운영비 세부내역이나 서비스 성장 지표 같은 숫자를 재가공 없이 제공한 스타트업도 있는데, 이는 학습자들에게 매우 귀한 자료일 것이다. 



스타트업 케이스 제작에 대한 궁금증이 해소되었기를 바라며 부디 우리가 제작한 자료가 많은 분들에게 생산적이고 유익하게 활용되기를 기대해본다. 


*본글에서는 간결한 이해를 목적으로  '케이스 스터디'와 '케이스'를 거의 동등한 의미로 혼용하여 사용하였으나, 본래는 다른 의미임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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