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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레 May 25. 2023

아이스 아메리카노 2

이탈리아 카페와 한국 카페의 다른 점

 스스로 커피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100미터 거리에 다수의 커피전문점을 볼 수 있을 정도로 한국 내 커피 소비가 활발해졌고 이탈리아식 아이스크림인 젤라토 매장에서 일하게 되면서 커피에 관한 책도 읽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카페에 간 날, 계산대 뒤로 빼곡히 나열된 메뉴판을 볼 수 있는 한국과는 달리 그곳엔 가격이 적혀있는 메뉴판이 없었다. 대신 각종 알코올 병이 가지런히 나열된 모습에 당황스러웠다. 메뉴판 없어 놀란 가슴 화려한 술병들 때문에 두 번 놀랐던 것이다. 주류를 판매하지 않는 한국과는 전혀 다른 모습에 정말 다른 나라에 와있다는 것을 실감했을 정도로 너무나 달랐다. 덕분에 방송에서 한국을 처음 방문한 이탈리아 사람들이 카페에 맥주가 없다는 사실에 어리둥절한 모습을 보인 이유를 그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의 카페는 매장에 따라 빵과 젤라토는 물론 맥주, 와인, 칵테일까지 마실 수 있다. 카페와 바가 합쳐진 듯한 모습으로 실제로 커피숍을 카페테리아(caffeteria) 또는 바(bar)라고 부르는데 후자를 더 많이 사용하며 확연히 차이나는 인테리어만큼이나 다른 점이 많다.

 첫째, 진동벨이 없다. 진동벨이 없기에 앉아 있으면 식당처럼 주문을 받으러 오기도 하고 바에 있는 직원에게 주문 후 앉아 있으면 테이블까지 커피를 가져다준다. 한국도 지금처럼 카페라고 불리기 전, 그 옛날 다방 혹은 커피숍이라 불리던 시절엔 종업원이 손님 테이블까지 커피를 가져다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진동벨의 등장 덕분에 적은 인원으로 효율적으로 매장을 운영할 수 있게 되자 카페는 물론 많은 타 매장에서도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한국 사람들에겐 너무나 익숙한 진동벨이지만 아직 이탈리아에서 본 적은 없다.

 둘째, 반납대가 없다. 한국은 매장에서 커피를 마신 후 반납대라는 곳에 잔을 놔두게 되어있지만, 이탈리아는 반납할 필요 없이 자리를 뜨면 직원이 알아서 치운다. 처음엔 내가 머문 자리를 치우지 않는 것이 불편하게 느껴져 때때로 다 마신 잔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불편한 감정도 누그러들었지만, 자리를 뜨면서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 되는 건 아직도 어쩔 수가 없다.

 셋째, 후불이 많다. 지역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동네 작은 카페들은 선불이 아닌 요금을 후불로 지불하는 곳이 많다. 내가 사는 동네 카페는 모두 후불이지만 대형 쇼핑몰에 있는 카페의 경우, 한국처럼 주문과 동시에 요금을 내고 그 영수증을 바에 있는 직원에게 보여주면 커피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듯 비슷한 듯 다른 카페 문화 탓에 한국에선 한글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도 눈치껏 사진을 보고 주문할 수 있지만 이탈리아에 가면 그게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혹시 당신이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카페에서 사용할 이탈리아어를 공부하고 갈 것을 추천한다.

 이탈리아 카페는 카멜레온처럼 오전, 오후, 저녁 풍경이 제각각 다르다. 아침엔 모두 브리오슈라고 불리는 빵과 카푸치노를 마시는 사람들로 넘쳐나며 주말 아침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들이 많다. 아침부터 누뗄라 초콜릿이 듬뿍 들어간 빵을 와구와구 먹는 아이들을 보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곤 한다. 삼시세끼 쌀밥을 먹고 자란 내 눈엔 설탕으로 가득한 이탈리아식 아침식사가 더할 나위 없이 건강에 나빠 보이기 때문이었을까.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이 단전을 짓누르지만 애써 두 눈을 질끈 감고 눈앞에 놓인 커피잔에 시선을 돌린다. 오후엔 오전에 비해 매우 한산하며 간혹 신문을 보는 어르신이나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외에는 잠깐의 휴식 시간에 바에 서서 금방 내린 신선한 에스프레소에 설탕을 넣고 휘휘 저은 뒤 훅 들이키고는 재빨리 일터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카페의 저녁은 아침과는 다른 분위기로 활기를 띤다. 저녁 식사를 8시 혹은 9시, 여름이면 더 늦은 시간에 먹기도 하는 이탈리아 사람들에겐 아페리티보라(aperitivo)는 문화가 있다. 저녁 식사 전에 간단히 요기할 안주와 함께 입맛을 돋울 식전주를 마신다.

 이렇듯 커피를 판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한국과는 전혀 다른 커피 문화를 가진 이탈리아다. 한국과 다른 점을 인정하지만 칵테일을 팔기에 얼음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팔지 않는 이유가 머리론 좀처럼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차갑지 않으면 또 어떠한가! 따뜻한 아메리카노야말로 달콤한 입안을 깔끔하게 만들어 주어 케이크를 무한대로 먹게 만드는 마법의 음료이지 않은가. 평소엔 우유가 든 커피를 마시는 나도 디저트를 먹을 때만큼은 아메리카노를 먹을 정도인데 이 특별함을 모르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그저 안타깝게 느껴졌다.

 우리가 김치에 대한 무한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듯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가진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에 물을 탄다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이곤 한다. 유튜브에 '이탈리아 사람 아메리카노'라고 치면 아주 많은 영상을 볼 수 있다. 경악을 금치 못하는 그들의 표정을 보는 것이 우리는 그저 재미있을 뿐 생각의 차이까지는 이해할 수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은 커피의 맛을 물로 희석하면 아무 맛을 느낄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거기에 얼음까지 넣는 건 더 용납할 수 없는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든 커피에 꼭 설탕을 넣어 먹는 이탈리아 사람들을 보면서 솔직히 설탕으로 인해 커피 맛을 못 느끼는 건 매한가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그러니 어째서 바닐라 시럽이나 캐러멜시럽은 넣어 마시진 않는 건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만 커질 뿐 속 시원하게 답해주는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다양한 시럽이 없으니 당연히 헤이즐넛 향 커피도 없다. 헤이즐넛은 악마의 맛, 누텔라를 만드는 데 써야 하기에 시럽을 만들 넛 따위 남아 있지 않아서 없는 건가 하는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는 나는야 어쩔 수 없는 검은 머리 외국인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에스프레소에 시럽 대신 도수가 높은 알코올을 섞어 마시곤 한다. 카페인과 알코올이라니 보기만 해도 위가 울분을 토할 것 같은 조합이다. 아무리 애써도 결코 이해할 수 없는 문화차이를 나는 그저 받아들여야 하겠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아메리카노란 아마도 한국인인 내가 쌈장을 빵에 발라먹는 이탈리아 남편을 보며 경악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라고 그저 추측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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