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진 줄 알았다. 좋아진 줄 알았다. 온라인으로 좋은 사람들을 만나 위로받고 용기를 얻으며 앞으로 나아갈 힘이 생겼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완벽한 착각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진짜 자신의 문제를 들여다보지 않고 외면했고 괜찮은 척했다. 활기찬 사람들 속에서 함께 파이팅을 외치고만 있었다. 아마도 그 편이 내 안의 두려움을 마주 보는 것보다 더 쉬웠기 때문에 한 선택이었던 것 같다. 사실 아직도 잘 모른다. 도대체 어떤 두려움을 품고 있기에 이렇게 도망만 치고 있는지를 말이다. 마주 볼 용기가 없으니 모르는 것이 당연한 거겠지. 그 대가로 우울의 그림자는 항상 주변을 맴돌며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다 잠깐 방심한 틈을 귀신같이 눈치채고 무서운 기세로 나를 집어삼킨다. 그렇게 다시 내 안의 어둠 속으로 끌려와 오랜 시간 고통받고 있다. 그동안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선물하는 새벽기상, 긍정적인 생각의 씨앗을 키워줄 자기 계발서 읽기, 알찬 하루를 살기 위한 계획 세우기, 꾸준한 운동 등 다양한 것들을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겉으로 보기엔 열정 넘치는 모습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은 높아지고 영혼이 없는 껍데기만 남겨져 죽어가고 있는 기분 탓에 힘들었다. 결국, 살아있는 것인지 죽은 것인지도 모를 감각으로 지내는 날들이 이어졌다. 다른 점이 있다면 슬픔이 가득했던 예전과 달리 마음이 텅 비어버린 듯한 것이었고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커진 점이었다. 이런 감각에서 간절히 벗어나고 싶었으나 다시 스스로를 일으켜 세울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공허한 눈빛으로 방 안에 앉아있던 어느 날, 봉지에 아무렇게나 담겨있는 남편의 낡은 옷들이 보였다. 재봉틀 연습을 위해 쓰겠다며 쟁여둔 헌 옷들이었다.
텅 빈 마음을 채우기 위해 주변을 비우기로 하다
오랜 세월 옷장을 점령한 채 주인의 손길을 기다리던 남편의 낡은 옷들. 정리 좀 하라며 그를 닦달하길 6년째였다. 10대 시절 입던 옷도 간직했던 남편의 마음에 드디어 변화가 생겨 의류 수거함에 넣겠다고 빼놓은 옷들을 재봉틀 연습을 위해 쓰겠다며 내가 미련을 떤 탓에 이리저리 뒹굴고 있던 옷봉지가 시야에 들어왔다. 무기력과 공허 속에 간신히 숨만 쉬며 하루를 보내면서 대체 무슨 욕심을 부렸던 걸까. 재봉틀 연습은 고사하고 먼지만 쌓여가던 남편의 옷을 수거함에 넣기로 결심한 참에 내 옷들도 함께 정리하기로 했다.
얻은 바지 / 몸무게 앞자리가 4였을 때 입던 바지 / 언니 대학 시절 산 바지
얻은 잠바 / 얻은 니트 및 내 옷 / 남편의 옷가지들
셋 다 20대때 산 옷들
한국에서 이탈리아로 가지고 온 옷들 중 6년 동안 단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꽤 많았다. 아니, 대부분이 그랬다. 살이 빠지면 입겠다고 챙겨 온 바지들, 누군가 입지 않는다고 준 옷, 한 번은 입을 거라며 서랍에 꾸역꾸역 넣어뒀던 옷들이 가득했다. 가진 옷 중 70% 이상이 못 입거나 입지 않거나 버리기 아까운 마음에 '모셔두던' 옷들이었다. 이번 기회에 혹시나 하는 마음은 접어두고 단호한 결정 덕분에 (사실 100% 단호하진 못했다) 이별할 옷 보따리가 하나 둘 쌓여갔다. 양손 가득 옷을 들고 의류 수거함으로 향할 수 있었다. 우리 동네의 병아리처럼 샛노란 의류 수거함은 덜컹 소리와 함께 나와 남편의 낡은 옷들을 꿀꺽하고 삼켰다. 가벼운 양손만큼 마음이 가벼워져 기분이 좋았고 가진 것을 비워내자 마음에 숨구멍이 트인 것 같은 감각을 느껴졌다. 미묘한 기분이었다.
그래도 조금은
낡은 옷들 좀 정리했다고 마법처럼 뿅 하고 우울과 무기력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조금은 기분이 나아졌다. 꽉 막혀있던 어딘가 바늘구멍만큼 뚫린 기분, 그로 인해 다시 숨을 쉴 수 있게 된듯한 기분이 들어 좋았다. 나를 똑바로 마주 보고 들여다보는 것까진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 없다. 천천히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나가다 보면 마음에도 작은 틈이 생겨 용기를 불어넣을 공간이 생길 것이라 믿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