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스커피에 진심인 한국인
넘칠 정도로 얼음을 가득 담아낸 잔에 진하게 내린 에스프레소 더블샷을 부으면 달그락 소리와 함께 얼음이 녹아내려 공간이 생긴다. 그곳을 물로 채우고 휘휘 저어주면 얼음이 잔에 부딪히는 영롱한 소리를 내며 더위를 싹 날려줄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탄생한다.
‘얼죽아’ 즉, 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사람을 뜻하는 말로 한국인의 남다른 아이스 아메리카노 사랑을 알 수 있다. 푹푹 찌는 더위 탓에 온몸이 불어 터진 어묵처럼 흐물거리는 여름이 오면 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얼음이 가득한 커피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그뿐만 아니라 살을 에는 추위로 발을 동동 구를지언정 커피만큼은 아이스 아메리카노여야 한다는 사람들이 가득한 곳이 바로 대한민국이다. 이렇게 아이스 커피에 대한 사랑이 유별난 나라에서 온 검은 머리 외국인인 나는 얼죽아까지는 아니지만 아이스 바닐라 라테를 사랑하던 사람이었다. 이런 내가 에스프레소의 본고장 이탈리아에서 무엇보다 이해되지 않았던 점이 바로 아이스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었다.
이슬람 국가에서 마시던 커피는 상인들에 의해 유럽 무역의 중심지였던 베니스로 들어왔으며 유럽 최초의 카페인 카페 플로리안이 문을 연 곳도 바로 베니스라고 한다. 카페의 등장으로 커피가 대중화되자 많은 사람에게 더 빨리 제공하기 위해 증기압을 이용한 커피 추출법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기술 발전을 통해 고온의 물을 적정 압력으로 빠르게 통과시켜 낸 커피가 탄생했다. 그게 바로 에스프레소이다. ‘espresso’는 이탈리아어로 ‘급행, 속달’이라는 뜻으로 주문 후 즉시 마실 수 있는 빠른 커피를 뜻한다. 이후 많은 이탈리아인들이 세계 각국으로 이주하면서 이탈리아식 커피도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일은 물론이고 잠을 줄여가며 노는 것조차도 열심히 하는 한국인들은 커피 수혈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 냈다. 이러한 커피 사랑 덕분에 우리가 이탈리아어를 꽤 알고 있다는 사실은 모를 것이다. 무슨 말이냐고? 우리가 마시는 커피의 명칭이 대부분 이탈리아어로 되어있어 정확한 뜻은 모르지만, 일상에서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다는 말이다.
부드러운 거품이 일품인 카푸치노(cappuccino), 우유의 고소한 맛이 좋은 카페라테 (caffè latte)도 이탈리아어다. 카페(caffè)는 커피를 뜻하며 라테(latte)는 우유를 뜻하는데 한국에서 라테를 주문하면 카페라테가 나오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우유만 나올 테니 주의해야 한다. 또한 우리가 별다방이라 부르는 스타벅스의 창업자 하워드 슐츠가 이탈리아 여행 중 영감을 받아 스타벅스 음료 크기에 이탈리아어를 사용하게 되었다. 덕분에 우리는 그란데 사이즈, 벤티 사이즈라는 말을 사용한다. 그란데(grande)는 ‘커다란’이라는 뜻이고 벤티(venti)는 숫자 20을 뜻하는데 스타벅스의 벤티 사이즈는 591ml로 20oz라고 적혀있다. 즉, 온스로 했을 때의 크기를 뜻한다. 이렇게 커피 덕분에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를 자주 사용하고 있다.
한국인에게 카페란 커피 한 잔에 친구들과 무한 수다를 떨 수 있는 곳이자 때론 소모임 장소 혹은 학생들의 스터디룸이 되기도 한다. 커피를 파는 것이 아니라 공간을 파는 것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오랜 시간 머무르는 곳이다. 그렇다면 ‘made in Italy’ 중 가장 성공한 것으로 꼽히는 에스프레소가 탄생한 이탈리아의 카페 풍경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