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직접 의뢰방식 유전자 검사(DTC)
유전자 검사라고 하면 막장드라마에 필수로 등장하던 친자 확인 유전자 검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과 규제완화에 따라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에서도 개인이 다양한 유전자 검사를 직접 해볼 수 있게 되었다. 간단한 검사 키트를 이용해서 검사기관에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보내면 특정 항목에 어떠한 유전적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오늘은 내가 경험한 유전자 검사 경험을 기준으로 소비자 직접 의뢰방식 유전자 검사(DTC)에 대해서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DTC (direct-to-consumer, 소비자 직접 의뢰 방식) 유전자 검사란 특정 항목의 유전자에 대해 민간 유전자 검사업체에서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직접 소비자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검사 방식이다. 채혈 없이 타액이나 볼 안쪽 세포를 긁어서 검사를 진행할 수 있기 때문에 검사방식도 어렵지 않고 비용도 이전에 비해 많이 저렴해졌다.
더욱이 올해는 검사 항목이 늘어나 기존 12개에서 56개까지 대폭 확대되었다.
출처 : DTC 유전자 검사 항목 12→56개로 대폭 확대 시행
건강검진이 현재 상태를 체크하는 것에 목적이 있다면 유전자 검사는 태어날 때 가지고 있는 유전인자를 검사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생에 한 번만 검사를 진행하면 된다. 4년 전에 건강검진센터에서 진행한 유전자 검사는 주요 질병에 대한 발생 확률을 리포트해줬었는데, DTC에서는 질병과 관련된 내용이 빠진걸 보니 아마 의료법 때문에 의료기관을 거치지 않고 개인에게 제공할 수 있는 정보의 제한 때문에 그런 것 같다.
위에 언급했듯이 DTC는 건강검진과 다르게 태어나면서 얻게 된 변하지 않는 유전정보에 대해서 알려준다. 유전 정보를 사용자의 노력으로 바꾸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에 검사 결과를 유의미한 행동으로 연관시키기가 개인 수준에서는 쉽지 않다. 한계점들을 좀 더 자세히 정의해보면 아래와 같다.
첫째, 내가 태어나면서 얻은 유전정보가 현재 건강상태를 반영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DTC 검사에서 제공하는 영양소 항목들은 각 개인의 유전자형과 체내 영양소 농도와의 결과를 제시할 뿐이다. "마그네슘 농도 : 낮음" 의결과가 다른 사람에 비해 해당 유전자를 가진 사람들이 마그네슘 농도가 낮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지 현재 마그네슘 농도가 부족하다는 건 아니라는 말이다. 설령 그러한 유전자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태어난 이후 오랜 기간 확립된 식생활 습관에 따라 현재 상태는 굉장히 달라진다.
둘째, 관리에 따른 개선 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 건강검진의 경우 과거, 현재, 미래의 건강리포트를 기반으로 이 사람의 건강상태 개선 정도를 체크할 수 있다. 하지만 DTC의 경우 설령 내가 어딘가 부족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DTC단독으로는 개선상태를 파악할 수 없다. 일반적인 의료지식을 가진 사용자가 DTC결과를 통해 유의미한 행동을 이끌어내기 어려운 이유다.
셋째, 유전적 요인도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변수 중에 하나일 뿐이다. DTC가이드에도 나와있듯이 사람의 질병에 유전이 강력한 영향을 주긴 하지만 유전으로만 병의 발병을 설명하는 건 멍청한 일이다. 결국 DTC결과가 좋든 나쁘든 현재 상태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추가 검진이 필요하고 유전 이외의 변수들을 관리하며 발병률을 낮춰야 한다. DTC검사 결과만 믿고 평소 건강관리에 소홀하다 낭패를 보는 일이 생길 수 있다.
넷째, 유전정보 유출 및 낙인효과에 대한 부작용이다. 태어날 때부터 받은 유전적 정보에 의해 이 사람의 능력이 낙인 되어 버리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운동선수를 꿈꾸는 아이가 운동능력이 떨어진다는 유전 결과를 보고 미래를 포기해버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유전정보에는 지략, 환경, 노력, 인성, 끈기 등과 같은 뛰어난 운동선수가 되기 위한 다양한 요소를 알려주지 않지만 개인의 입장에서는 유전정보를 보고 자신의 한계를 쉽게 판단해 버릴 수 있는 위험성이 있다.
참고 : DTC 유전자 검사 가이드라인(일반 소비자용)
참고 : 질병, 과연 유전 때문일까
DTC가 재미용 일회성 검사를 뛰어넘어 삶에 밀접한 유의미한 서비스가 될 수 있을까?
가장 쉽게 떠올려 볼 수 있는 건 보험이다. 태어나자마자 자신의 유전자 정보를 알고 있다면 환경적 변수의 영향이 크지 않을 때부터 건강관리를 할 수 있다. 유병 확률이 큰 보장내역을 중심으로 보험을 설계해서 미래를 대비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많은 보험회사들이 DTC를 통해 보험가입 마케팅을 진행했다. 하지만 보건복지부에서 보험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DTC마케팅을 지양하도록 가이드를 내림으로서 이마저도 쉽지 않게 되었다.
다양한 인종이 섞여있는 미국의 경우 DTC를 이용해 재미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가 있다. 미국의 DTC업체인 AncestryDNA는 DTC를 통해 조상을 찾아주고 SNS와 연계해서 1조 원대의 매출을 얻는다. 소비자는 유전자 검사를 통해 조상의 국적과 외모 등을 알 수 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SNS에서 자신의 유전적인 친척을 찾을 수 있다.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사람이 유전적으로 6촌, 8촌 친척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이 회사의 매출의 50% 이상은 소비자가 DTC검사 이용 후에 지불하는 SNS 구독료에서 나온다.
참고 : [단독] 내 뿌리찾기 DNA 테스트 해보니 … 1% 아메리칸 인디언
이와 같이 DTC단독 서비스 만으로는 아직 사용자에게 이득이 될만한 유의미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한다. DTC+@가 연계되어야 다양한 서비스가 나올 수 있다. 유전정보는 인간의 설계도이다. 이미 만들어진 집의 설계도를 본다고 완성된 집을 바꿀 수는 없지만, 설계도를 알면 앞으로 집을 어떻게 꾸밀지 도움이 된다.
누구나 자신의 유전정보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고 싶을 테니까 재미를 위한 일회성 테스트라고 하더라도 당분간은 가격과 테스트 방식이 개선된다면 DTC검사 자체만으로도 시장이 형성될 것이다. 하지만 유전정보가 좀 더 유의미하게 시장을 키우려면 1. 국가의 규제 완화 2. 검사기술의 발전 3. 가격의 경쟁력 4. 개인 유전정보 보호 토대 위에 유전 설계도를 토대로 우리의 신체를 어떻게 꾸밀지에 대한 다양한 서비스가 연계되어야 할 것이다.
출처 : 인간의 설계도 ‘인간 게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