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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삶은계란 Jun 26. 2019

13. 비웠을 때 채워지는 것들

14살, 15살의 아이들은 참 에너지가 넘쳐났다. 내가 일했던 곳은, 대부분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나 히스패닉 학생들이었는데, 95% 정도 형편이 어려워 Free lunch를 받는 아이들이었다. 백인만 가득했던 곳에서 실습을 했던 내게, 아프리칸 아메리칸이나 히스패닉 아이들은 참 낯설었고,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어쩌면 그들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한 선생님이었다. 아이들은 하루 중 내가 말하는 유일한 상대였다. 난 오직 학교와 집만을 왔다 갔다 걸렸고, 퇴근 후 모든 에너지를 쏟아버린 지쳐 쓰러져 항상 불을 켜고 잠들었다. 새벽에 내일 수업 준비를 해야 한다는 강박감으로 깨어나, 수업 준비를 하고 출근을 했다. 아이들의 작은 행동 하나하나는 내게 모두 감정적으로 다가왔고, 외로운 내게 너무나 큰 상처를 주었다. 별일 아닌 것일 수도 있었지만, 나에게는 아이들의 한마디 한마디가 너무 크게 와 닿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외국인 선생님은 아이들 앞에서, 아이들 뒤에서 눈물 없이는 허전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주말에 하루 종일 카페에서 컴퓨터만 바라보며 준비한 수업을 아이들은 전혀 이해하지 못할 때면, 나 혼자 좌절을 했다. 하지만 포기하기에는 너무 어렵고, 힘들게 얻은 직장이었고, 물어보기 시작했다.





한국에서 학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 미국에서 학교에서 일하시는 선생님들께, 솔직한 나의 심정을 터놓았다. 가장 큰 조언은 동료 선생님들을 내 편으로 만들라고 했다. 프렙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다른 과목 선생님들을 찾아가 고민을 토로했다. 그들과 이야기하면서 나 혼자 Class management를 못하는 게 아니라, 학교 자체의 문제라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의 고충을 털어놓으면 학교 선생님들과 친해지면서 점심을 같이 먹고, 집에 초대를 받기도 하고, 금요일 저녁에는 바에 가기도 하고, 주말을 함께하기도 하며 학교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풀었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다루는 좋은 팁도 많이 배웠다. 꼭 조언들을 흘려듣지 않고 사용하고, 응용해서 아이들을 다루었다. 점심시간이나 프렙 시간에도 아이들과 대화하려고 노력했고, 방과 후 아이들이 참여하는 볼링 게임이 있으면 응원하러 갔다. 애프터 스쿨도 로보틱과 승마 두 개를 했다. 특별한 날, 사탕 공세도 하고, 잘하는 학생에게 칭찬하고 보상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수업 내용을 아이들의 수준에 맞춰 쉽게 가르치려고 노력했고, 미술과 컴퓨터를 응용해서 재밌게 가르치려고 애썼다. 점점 더 나를 좋아하는 아이들이 생기니, 나도 그들을 사랑으로 대하게 되었다. 또한, 포기할 아이들에 대해서는 과감히 포기했다. 내가 100명의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고 끌고 갈 수 없음을 알았고, 내가 힘든 아이들은 거의 학교에서도 포기한 아이들이었으니까. 어렵고 재미없는 엔지니어링 수업이 아닌, 재밌고 즐거운 수업으로 만들려고 노력했다.





수업 준비는 점점 요령이 생겼고, 아이들 점수를 주고, 성적을 매기는 것도 요령이 생겼다. 점점 어떻게 하면 슈퍼바이저한테 잔소리를 안 들을 수 있을지 알게 되었고, 누군가의 앞에 서는 것, 아이들에게 "Ms. K"으로 불리는 것 그 모든 것이 너무 좋았다. 여전히 힘든 아이들,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나를 사랑하는 아이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아이들도 있었기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았다. 아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선생님과 학생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다가가면서 이 아이들이 어떤 환경 속에서 태어나고 자라났는지 알게 되었다. 난 아무것도 모르고 그 아이들의 선생님이 되고자 했고, 존경받고자 했으며, 선생님으로 불리고 싶었던 욕심 많은 사람이었다. 아이들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될수록 좀 더 따뜻하게 잘해주려고 노력했다. 한 명 한 명의 장점을 파악하고 알려주려고, 애썼다. 그렇게 미운 정이 커지고 커져 점점 나는 이미 아이들을 엄청나게 사랑하고 있었다. 겨울 방학 전,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마음을 담은, 사랑을 담은 선물을 했고, 겨울방학의 2주가 길게만 느껴졌다. 내가 한 학기를 버텼다는 사실에 뿌듯했고, 행복했다. 한고비 넘었다고 생각했던 내게 내 삶에 단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엄청나고도 어마어마한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To be continu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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