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지원했던 대학원 두 군데 중 한 곳에서 합격 메일을 받고, 나는 학교로, 아이들 앞으로 돌아갔다. 돌이켜보면 미국의 Urban area에서 선생님을 한다는 것은 참 쉬운 일이 아니었다. 큰 뜻과 꿈을 가지고 미국에 온 것은 아니었고, 선생님이 된 것은 더군다나 아니었다. 처음에는 수백 개의 지원 끝에 선생님이 되었다는 그 뿌듯함에 출근을 했고, 중간쯤 되니 페이를 위해서, 또 그것을 넘어서니 방학과 휴일을 기다리며 출퇴근을 반복하는 나였다. 아이들 앞에서 민망을 주며, 소리를 지리는 Supervisor는 기억 속의 좋은 boss는 아니었지만, 학생들을 위해 일하고 싶었다. Pay를 받을 수 없었지만, 아이들이 보고 싶은 마음에, 눈물을 뒤로하고, 떠났던 그곳에 돌아갔다. 하지만, 아이들은 내가 없는 사이, 내 수업시간은 이미 노는 시간이 되어버렸고, 방학이 2주도 채 남지 않아 최악의 상황이었지만, 나는 무보수로 일하는 상황이라, 목 아파라 소리를 지를 이유도 없었고, 언성을 높이지도 않았다.
그러던 중, 합격한 대학원 중 한 곳에 방문하게 되었다. 물론 미국에서 정규과정을 받아보지는 않았지만, 미국의 수십 개의 초, 중 고등학교를 방문했고, Campus tour 혹은 School tour는 너무나도 익숙했다. 나는 어쨌든 미국 학교서 일하는 선생님으로, 학문의 뜻을 가진 한국 학생의 이미지로 Graduate advisor을 만났다. 더군다나, 학부 때 논문을 써보았고, 인도네시아 광산 인턴십을 했으며. 졸업 후 석유 관련 교육을 받은 나의 이력을 강하게 어필했다. 더군다나 내가 미국에서 받은 교육부의 교사자격증과 함께,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티칭 경력도 강조했다. 그 결과, Graduate advisor는 나를 굉장히 마음에 들어하였고, 내가 5월 초쯤, 입학 관련 문의 메일을 보냈을 당시, 장학금은 이미 끝났다고 했지만, 이번 만남을 통해 학과장님의 연락처를 주며 혹시 자리가 비었을 수도 있니 연락해보라고 하셨다. 원래, 나는 아직 결과가 나오지 않은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너무 하고 싶었다. 하지만, Graduate advisor의 호의적인 태도에 약간 흔들리게 되었고, 혹시나 모를 장학금을 위해 학과장님께 메일을 보냈다. 당시 나는 대학원의 장학금이 얼마인지도 전혀 몰랐고, 어떤 형태로, 얼마가 주어지는지도 전혀 무지한 상태였다. 학과장님께 메일을 보내고, 며칠 뒤, 전화 인터뷰를 하였지만 감감무소식이었다. 사실 지원을 너무 늦게 한 탓에 합격만으로도 감사했지만, 뭔가 너무 쉽게 척척 되는 일에 더, 조금 더 욕심이 나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렇게 안 되겠다 싶어, 약속 없이 학과장님을 찾아가 장학금에 대해 문의했다. 그랬더니, 한자리가 비어있을 수도 있다고 하셨고, 나는 그 의미가 내년인 줄 알았었다. 그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해서, 엄마 아빠한테 딱 1년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편안한 마음으로, 용기 있게 여름휴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수많은 곳 중 하와이를 골랐다. 2014년 봄, 아시아나 드림윙즈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당시, 인도네시아 인턴십에서 돌아온 나는 더욱 "외국"이라는 갈망을 했고, 인턴십을 함께 했던 언니와 함께 지원을 했다. 아시아나 취항지 중 한 곳을 골라, 그에 맞는 여행 프로젝트를 계획하는 것이었고, 모든 여행경비는 아시아나 항공에서 지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하와이 지질 기행이라는 이름으로 논문 같은 수준의 제안서를 제출했고, 운 좋게 서류에서 합격해, 몇 백 명 앞에서 PT 발표를 하였다. 물론, 최종에서 떨어졌지만, 21학점을 듣고, 교생실습을 하는 도중 광주와 서울을 오가며, 밤새워서 준비한 그 프로젝트는 참 의미가 있었기에 하와이에 꼭 가보고 싶었다. 그렇게 오랜 꿈이었던 하와이를 가게 된다니, 참 감격스러웠다. 사실, 난 하와이에 대해 조사를 한다고 했지만, 여러 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는지도 잘 몰랐었다. 나의 여름휴가는 호놀룰루, 카우아이, 마우이, 빅 아일랜드 네 개의 섬을 10일 동안 즐길 수 있었다. 일단 대학원 한 곳에 합격을 해서, 마음이 홀가분했고, 말도 안 되는 프로젝트를 하며 기획해봤던 하와이였기 때문에 꼭 와보고 싶었다.
유명한 신혼여행지 중 하나인 호놀룰루는 미국 같지 않은 곳이었다. 어쩌면 한국에서 더 가까운 곳이었고, 새하얀 모래와 푸른 바다는 너무 아름다웠다. 무소비, 초밥, 가락국수 등 너무나 맛있고 싼 일본 음식들에 마음 뺏겼고, 지상의 낙원이라는 말이 걸맞을 정도로 예쁜 곳이었다. 호놀룰루에서 카우아이로 갔다. "하와이"프로젝트를 준비했었다고 자부하던 나였지만, 아마 하와이에 가기 전까지 하와이에 대해 잘 모르지 않았나 싶다. 하와이는 오하우, 카우아이, 마우이, 빅아일랜드 등 여러 가지 섬으로 구성되어있다. 섬들이 모두 특색이 다르고, 분위기도 사뭇 달랐다. 카우아이는 치킨 아일랜드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의 수보다 닭들이 많을 만큼 많은 닭들을 보았다. 조류 공포증이 있는 내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여행지임에 틀림없다. 마우이는 도로가 굉장히 고불고불하였지만, 마치 신선들이 사는 듯한 신비스러운 곳이었다. 레드 샌드, 그린 샌드를 볼 수 있는 참 매력적인 장소였다. 대망의 빅아일랜드. 눈앞에서 화산이 분화하는 장면을 보는 일생일 회의 크나큰 기회를 얻었다. 오래전부터 직접 보고 싶던 화산을 보는 것이라 참 의미 깊었다. 화산을 볼 때면, 지질학을 공부하는 나 스스로를 참 뿌듯하게 여겼다. 빅아일랜드를 끝으로 10일 넘는 여행을 마치고, 현실로 돌아왔다.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