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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도하 May 05. 2020

우리가 이 맥도날드에서 제일 멋져

그저 그런 날도 있는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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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 맥도날드에서 제일 멋져

-영화 캔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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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기 전, 항상 종로의 지하철역 (정확히 몇 번 출구였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인근에 위치한 맥도날드에서 치즈버거와 콜라 그리고 아이스크림을 먹곤 했다. 창가 쪽 바 테이블에 턱을 괴고 앉아 흘러가는 차량들이 하나둘씩 헤드라이트를 밝히기 시작하는 모습과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을 막차 시간이 다다를 때까지 감상하곤 했다. 몇 시간이고, 몇 번이고.




내게 이십대의 허무와 우울을 대변하는 한 장면은 24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 맥도날드, 피로가 전봇대의 전단지처럼 덕지덕지 붙어 있는 아르바이트 생의 고단한 얼굴, 바닥에 엎질러져 있는 콜라, 창가에 스러지듯 기대어앉아 먹고사는 문제를 뒤로하고 철학을 논하는 내 주변으로 바삐 지나가는 사람들 - 그런 것들이다. 왕가위의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시간의 흐름으로부터 유리된 채 나를 지나치는 사람들의 무정한 표정을 바라보면서 나는 어떤 생각을, 어떤 말들을 했던가.




모든 게 영원할 줄 알았다. 




거기 앉아 햄버거를 씹으면서 네온사인 간판을 눈으로 더듬는 내 어린 날도, 내 옆자리에 앉아 있는 사람과 나누는 감정들도, 적어도 그땐 그랬다.




과거라는 이름 속에 매몰되어 버린 사람들을 생각하면 나는 공연히 슬퍼진다.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다가 창에 어룽지는 가로등 불빛 때문에 눈이 시리다는 핑계를 대면서 청승맞게 눈물이나 흘리게 된다. 나는 지금도 건강에 좋지 않다는 걸 알면서도 퇴근 후 종종 패스트푸드로 저녁을 때우고, 너와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어 막차 시간을 모른 척한다.




나의 타임라인에는 무수히 많은 후회의 방점들이 찍혀 있다. 대부분의 후회들은 현재진행형이 아닌 관계에 기인하고 있다. 그때 술을 마시자는 네 청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관계가 멀어지고 있는 것을 감지했을 때 먼저 손을 내밀었더라면, 퇴근길에 전화를 걸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 걸지 않았던 순간들을 다시 되돌려 망설임 없이 통화 버튼을 누른다면,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리운 사람들은 지금 

모두 

내 

옆에 

있을까. 




딱히 잘못한 것도, 딱히 잘한 것도 없이 살아온 것 같은데 그리운 게 많은 사람으로 나이 들어간다. 누구도 내게 기대고 있지 않은데 때론 다른 사람의 삶까지 짊어진 채 달음박질하고 있는 것처럼 숨이 차다. 지금보다 더 나이 들었을 때 그리움의 무게로 질식하지 않을까 하는 허무맹랑한 생각을 하면서 홀로 맥도날드에 앉아 하나둘씩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거리를 바라보며 늦은 저녁을 먹는다.




내일도 나는 

같은 것들과 사랑에 빠지고

같은 것들을 그리워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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