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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May 13. 2020

참, 시시하지..? <2020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

대상은 역시 대상이야.



매년 봄이면 으레 산다. 

내 또래일 젊은 작가들이 이 시대를 어떻게 포착하고 있을지 궁금해서. 용기도 깜냥도 부족한 나는 이미 글쓰기를 업으로 삼길 포기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선택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글쓰기가 궁금해서.

저마다 평가도 감상도 다르겠지만, 나의 올해 감상은 작년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젊은 작가상은 2010년대 초반이 어마어마했지..


대상작에는 이견 없다. 강화길은 <호수-다른 사람> 때부터 색다르다고 느꼈던 작가님으로, 이후 작품도 몇 편 보게 됐는데 불편하게 긴장되는 조용한 스릴러 같은 서술 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음복>은 한번 읽고 다시 읽어야 제대로 느낌이 온다. 작품 바로 다음에 실린 오은교 평론가의 평론도 제대로다.


아래는 왓챠에 기록해둔 내용들. 다소 거친 감상평이지만, 내 기록을 위해 우선 옮긴다.



강화길, /음복/

  강화길 <음복>에서 무릎 탁 치고, 오은교 평론에서 이마를 탁 쳤다. 이거지, 바로 이거야! 이게 대상이지! 어떤 해에는 대상에 물음표를 찍은 적도 있었는데, 이번 대상에는 이견이 없다. 어떤 이는 올해에 물음표를 찍겠지만.

  보수적이지는 않더라도, 무척 가부장적인 가정환경에서 자라난 나로서는, 그리고 이제 며느리라는 이름도 갖게 된 나로서는 무척이나 공감되는 이야기였다. 세대가 함께 모인 한 집안의 여자로서 알아야 하는 정보와 비밀스레 갖춰야 하는 자세까지. 원치 않는 정보에 너무도 오래 전부터 자연스럽게 노출되어 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 정보를 어떻게 다뤄야만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에 대한 눈치까지 본능적으로 습득해왔다. 드라마 속 이야기로만 생각했을 그런 이야기들.  참, 시시하지...? 아무것도 모르는 너에게는 말이야!

  대단한 사건이 없어도 팽팽한 긴장이 흐르는 서술이 낯설다가도 마음에 들었다. 불쾌하고 불편하고, 토마토 고기찜처럼 오묘하게 뒤섞인 찝찝한 감정들을 안은 채, 평론을 이어서 읽으니, 오은교 평론가가 '여성주의 스릴러'로 통쾌하고 명쾌하게 평을 해준다.


최은영,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작가님 작품은 꾸준히 좋다. 젊은작가상 수상한 작품들도 그렇고, 그간의 소설집도 그렇고 안 좋았던 작품이 한 편도 없었다. 그간의 소설집은 제대로 감상을 못 남겼지만, 요즘은 국내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 작가로 꼽는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라는 작품은, 작가의 바람이 슬프게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읽는 내내 먹먹했다.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글을 쓰고, 그렇게 글을 쓴 누군가가 아주 희미한 빛이더라도 앞서 횃불을 들고 나아가 주었으면 하는 바람까지.

  작가의 말 보니 최근 힘드셨던 것 같다. 우리 희미한 빛으로 연대하며 힘냈으면 싶다. 나에게는 최은영 작가님 같은 분이 결코 희미하지 않은 빛이다. 그 간의 작품들에서부터 풍겼지만, 이번 작가의 말 보며 작가님, 정말 착한 분이라고 생각했다. 글쓰기라는 행위와 그것으로 탄생한 글이 갖는 책임감에 대한 섬세하고도 치열한 고민. 한 편의 글이라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지는 않을지, 혹은 어디까지 읽힐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 그 고민이 여실히 담긴 글이었다. 작가님은 정말 착한 사람이다. 착한 사람들이 상처 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으면 싶다. 한국 작가 중 나와 결이 가장 잘 맞는 데다 정말 인간적으로 친해지고 싶은 작가님. 언젠가는 한번 만나뵙고도 싶다.

  선우은실님 평론은, 작년도에도 그랬지만, 소제목만 여러 개일뿐 겉도는 느낌이 왜인지 자꾸 들어서 조금 아쉬웠다. 이해하기에 내가 부족한 것일지. 다음 평론은 좀 다르게 다가올지 궁금하다.


김봉곤, /그런 생활/

  살다보면 잘 맞는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는 법이다. 나는 최은영 작가님의 글을 좋아하지만 누군가는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젊은 작가상에서 나와 잘 맞지 않는 작가들을 몇몇 만난 적이 있는데, 김봉곤 작가님도 그 중 하나.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그의 글을 좀 게으르게 읽은 것은 아닐지 좀 경계는 하게 된다.

  젊은 작가상 작품들의 주제 중 사랑 이야기는 단골 주제였지만은, 최근 성소수자의 사랑을 다룬 작품들도 여럿 등장하고 있다. 김봉곤 작가와 박상영 작가의 글이 두드러졌는데 경쾌하면서도 담백한 자전적 소설이 주를 이루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번에 실린 김봉곤 작가의 <그런 생활>은 '경쾌하고 담백한 자전적 사랑소설'이라는, 내 마음대로 내린 정의의 정점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아직 그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 않은 나로서는, 이 작품의 글쓴이가 김봉곤인지, 박상영인지 좀 헷갈리기도 했다. 게다가 그의 글을 많이 접해보지 않았음에도 '또' 비슷한 사랑 얘기에 비슷한 구성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건 두 작가 모두에게 느꼈던 점.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래서, 올해는 어떨지 기대했는데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다. 

  자전적 소설 중에 이렇게 자의식이 넘쳐 흐르는 작품은 처음이다. 소설의 경쾌함을 담당하는 그 지점이 내게는 왠지 불편했다. '뒷굽 닳지 않게 사뿐사뿐'라는 대목에서는 '굳이..?'라는 생각만 들었달까. 소설 속 '봉곤'과 성향과 성격이 비슷한 사람과 일한 적이 있는데 좋지 않은 기억이라 그 지점이 겹친 것 같다. 사랑 소설이 퀴어 소재여야만 특별해지는 것은 아니다. 신선한 이야기 좀 보여줬으면.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았던 건 제목 뿐이었다. (그의 글을 게으르게 읽지 않도록 소설집은 한번 찾아 읽어보려고 한다.)


장류진, /연수/

  작년에 장류진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에 단단히 데었는데 올해 수상집에 작품이 실려 있어서 매우 불안한 기대 중이었다. 이번에 실린 <연수>는 이전 소설집에서 가장 좋았던 편인 <도움의 손길>의 변주 같은 느낌이었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뜻. 도로 연수일 뿐인데도 로드 무비 장르에서 빚어질 법한 연대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하지만 이전 소설보다 좋았을 뿐이지 아직도 나는 이 작가의 거친 설명 투의 서술방식이 그리 마음에 들지 않는다. 게다가 이야기에서 오는 기시감을 사실 지우기 힘들다. 이전 소설집에서도 그랬고 이 편도 그랬다. 흠, 그냥 나랑 안 맞는 건지, 정확한 이유는 스스로 고민해봐야 나의 기준이 도출될 것 같다.


김초엽, /인지공간/

  <인지 공간>은 구성에 매우 애쓴 느낌이 나지만 조금 아쉬웠다. 인지 공간을 설명하는 데 꽤 지면을 활용했지만 그나마도 정확한 이미지를 그리는 데 한계가 있어 보였다. 그래도 나름 상상 속 인지 공간을 그려보는 재미는 충분했다. 제나와 이브의 설정은, 뭐랄까 안정적인 선택처럼 보였지만. SF임에도 새로운 느낌은 없었던 것이 조금 아쉬웠다. 왠지 경쾌한 분위기의 SF도 잘 쓸 것 같은 작가. 이 작가의 소설집이 궁금해졌다.


이현석, /다른 세계에서도/

  <다른 세계에서도>는 차분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며 어느 한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다. 지수, 해수, 엄마, 희진, 그리고 희진과 함께하는 사람들. 여성 개개인이 임신과 중절에 대해 갖는 입장 차이에 대해서도 예리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러면서 어느 것도 강요하지는 않으며. 다른 세계에서도 너를 사랑할 것이라는 마지막 문장은 꽤 울림이 크다. 수상집에 처음 이름을 올린 작가인데 앞으로 작품이 기대된다.


장희원, /우리의 환대/

  <우리의 환대>는 가장 노골적이면서도 가장 영리한 작품이었다. 읽어보면, 내가 어떤 인물의 시선에 방점을 찍고 있는지 느껴질 것이다. 서술 자체는 3인칭이지만 '재현' 중심으로 서술되니 그에 대한 감정과 판단을 내려보는 게 좋겠다. '재현'처럼 '우리(we)'라는 공고한 영역에서 '우리(cage/pigsty)'를 명명하며 바라보고 있는지, 혹은 너와 나를 서서히 떼어 내고 각자의 공고한 영역을 위해 서로 자리를 내어주고 있는지 말이다. 작품을 다 읽고 나면 나도 모르게 어느 인물의 뒤에 내가 서 있는지 발견하게 만드는 소설이다.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지만, 결국에 던져진 질문에 답을 해야하는 마이크는 내 앞에 와 있음을.




올해도 역시 대상 수상작에 이견은 없다. 대상작 선정에 몇 번 아쉬웠던 적은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 인정되는 선정이었다. 대상작과 몇몇 수상작 덕에 내년 작품집도 기대해보련다. 2020년 5월에 읽고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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