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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란소강 Nov 06. 2018

지금 우리에겐 이런 사랑이 필요해, <청설>

나보다 너를 먼저 생각하는, 말보다는 듣는 사랑.


국내엔 2010년에 개봉했었고 올해 11월 재개봉하는 영화 <청설>. 십 년 전 영화가 이제 재개봉하는 이유는 뭘까. 영화 <청설>(Hear me)은 말로 하는 사랑이 아닌 듣는 사랑, 행동하는 사랑을 그린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사랑의 한 조각을 보여준다. 불신과 거짓이 뒤섞인 자극적인 소음들이 사랑의 탈을 쓴 채 난무하는 요즘, 조용히 마음을 듣는 그런 진심 어린 사랑이 필요해서 일까.



영화는 주인공들의 대화가 대부분 수화로 진행된다. 대사가 있지만 들리지는 않는다. 대만 거리의 고요한 일상적 소리들이 수화 너머로 희미하게 들려온다. 멀리서 들리는 오토바이 경적소리, 행인들의 발걸음 소리,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소리들. 영화에는 배경음악도 거의 없다. 상황과 대사는 있지만 눈을 감으면 거의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다. 고요하면서도 적절히 진행되는 이야기들. 영화관에 갈 때면 자연스레 화려하고 웅장한 사운드를 기대하던 내가 낯설게 느껴졌다. 실제로 수화로 대화를 하는 가족들의, 연인들의 모습은 이럴 것이다. 다만 비장애인인 내가 몰랐던 것뿐.


<청설>은 사랑 영화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랑의 단상과 이를 다룬 수많은 영화가 있듯 <청설>도 그런 사랑을 중 하나를 다룬 로맨스 영화 중 한 편. 등장인물이 청각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대단히 새로운 사랑 이야기가 그려지는 것은 아니다. 티 없이 맑고 청명한, 순수한 사랑을 그린다. 어쩌면 정석에 가까운, 평범한 사랑의 모습일 수 있지만 왠지 요즘은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사랑 같다.


메신저를 기다리는 티엔커. PC 배경화면도 양양의 사진이다.
나무로 분장한 티엔커. 이렇게 분장하고 양양의 집 앞에서 한참을 기다린다.


<청설>에는 두 가지 사랑이 등장한다. 

먼저, '티엔커'와 '양양'의 사랑. 부모님 가게를 도와 도시락 배달일을 하는 '티엔커'는 수영장으로 배달을 갔다가 '양양'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티엔커는 양양과 가까워지려 애쓰지만, 수영선수인 언니 '샤오평'을 뒷바라지를 하느라 너무나 바쁜 양양은 티엔커에게 내어줄 시간이 없다. 티엔커는 그런 양양을 배려하고 이해해주며 천천히 섬세하게 다가간다. 양양과 메시지를 하기 위해 메신저를 하염없이 기다리는 티엔커. 실수로 양양의 마음을 상하게 하자, 직접 나무로 분장해 진심 어린 사과를 하는 티엔커. 순수하고 청량한 그의 사랑은 말보다는 마음을 담은 행동을 먼저 하는 사랑이다.



두 번째는 '양양'과 언니인 '샤오펑'과의 사랑. 

아버지는 선교를 떠나고 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셔서 양양과 샤오펑은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간다. 수영선수인 샤오펑의 훈련을 전적으로 서포트하는 양양은, 자신보다 언니를 먼저 생각하는 헌신적인 인물이다. 그런 양양의 마음을 샤오펑은 너무나 잘 알고 있기에, 샤오펑은 양양도 자신의 삶을 찾아가길 바란다. 서로에게 짐이 되지 않기를 바라는, 서로를 먼저 생각하는 무조건적인 사랑, 이런 자매가 또 있을까 싶다가도, 이런 자매가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렇다면 나부터 잘..)


티엔커가 양양에게 준 선물. 유리저금통이다. 귀여워..


영화만 놓고 보면 굉장히 동화 같기도 하다. 사람들이 하나 같이 모두 착하고 귀엽고 순수하니까. 악역도 없다, 어려운 상황에 몇 번 놓일 뿐. 하지만 악역이 꼭 있어야만 한 걸까, 이야기가 동화 같으면 좀 어떤가. 상대방을 먼저 생각하는 사랑, 말보다는 듣고 행동하는 사랑, 특별할 것 없는 이런 사랑이 '동화' 같아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탓해야지. 내 목소리보다 상대의 눈빛과 표정, 몸짓에 집중하는 사랑이 더 많아졌으면 싶다. 내 할 말만 큰 소리로 떠들어대며 합리화를 하고 이기고 지는 데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섣부른 말 대신 상대의 마음을, 감정을, 온도를 헤아리는 사랑. <청설>이 재개봉한 이유는, 카피에서 드러나듯 냉정히 말해 시장 상황(꽤 잘 팔리는 대만 로맨스 영화) 때문이겠지만,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랑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다. 적어도 관객들은 그렇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본 조용하지만 무척이나 집중했던 두 시간은 아주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대만 영화를 보면 항상 그렇듯, 역시 대만에 가보고 싶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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