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Mar 07. 2021

니가 알던 내가 아냐

<욕의 품격>: 한국어판도 보고 싶다

욕에도 역사가 있다고?



제목을 보자마자 당기는 프로그램이었다. 한국어 제목은 <욕의 품격>, 영어 제목은 <The History of Swear Words(욕의 역사)>인 코미디 프로그램이라니 너무 신박하잖아. 게다가 한 에피소드당 20분 만에 볼 수 있는 6회짜리 프로그램이니 안 볼 이유가 없었다. 호스트인 니콜라스 케이지의 F*ck 오프닝부터 각종 전문가와 코미디언들의 향연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한편으로는 기대하지 않았던 교양까지 챙기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욕에도 역사가 있다고? 무슨 말씀을. 한국어에서도 ‘화냥년’은 청나라에 끌려갔던 조선 여인들이 조선으로 환향해서도 돌을 맞던 시절 생긴 욕이다. 생각보다 욕의 역사는 복잡다단하고도 재미있다. 그래서 <욕의 품격>은 우리가 모르는 영어권 욕의 역사를 가볍게 즐기기에 딱인 프로그램이다. 


이토록 상쾌하고 유익한 코미디




19세 이상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긴 하지만, 우선 니콜라스 케이지를 비롯한 배우와 코미디언들이 기깔나게 욕을 사용하는 장면들은 기똥차다. 영어권의 각종 영화/드라마/예능에서 나오는 욕들을 다양하게 다룰 뿐만 아니라, 욕설로 유명한 배우들을 직접 섭외하여 실험을 하기도 한다. 미국에서 Sh*t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배우를 불러서 Sh*t을 얼마나 길게 할 수 있나 실험하는 프로그램은 <욕의 품격>밖에 없을 테다. 그러나 <욕의 품격>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코미디 프로그램인 동시에 정보성 프로그램의 성격도 가진다. D*ck, D*mn 등의 욕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는 인지과학자/언어학자들의 설명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D*ck이 영어권에서 유일하게 누군가의 ‘이름’에서 온 욕이라는 것을 어떻게 알겠냐고. 




같은 욕이어도 느끼는 건 다르나니





다문화사회에서 자리 잡은 미국의 코미디 프로그램들은 ‘사회적 합의’가 있다. 코미디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그 점이 항상 부럽기도 하다. <욕의 품격> 역시 예민한 소재일 수 있는 욕을 오히려 인종/젠더적으로 해석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인다. 유명한 80년대 힙합 그룹 NWA의 <F*ck the Police> 캠페인은 인종차별적인 당시의 경찰에 저항심을 나타냈고, 켄드릭 라마의 <Damn>은 힙합 역사에 길이길이 남을 명반이다. P*ssy 편과 B*tch 편에서는 니키 글레이저와 같은 여성 코미디언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B*tch을 오히려 자신을 긍정하는 표현으로 썼던 여성 래퍼들, 고양이를 뜻하기도 하는 단어 P*ssy에서는 캣우먼이 상징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즉, <욕의 품격>은 같은 욕일지라도 사회적으로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을 유쾌하고 꼬집는다. 



터부시보다는 코미디!



<욕의 품격>을 한국에서 만들면 어떨까? 한국은 참 신기한 나라다. 그 어떠한 문화권보다도 욕설 문화가 발달한 나라인데, 그에 비해 욕 문화에 대한 통찰은 많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예전에 ‘욕설과 질병’이라는 주제로 기사를 쓸 때도 생각보다 관련된 논문이나 책이 많지 않다는 점에서 놀랐다. 다루더라도 오히려 ‘요즘 것들의 욕설 문화’, 즉 젊은 층의 욕설 문화를 일삼는 논문에는 그저 헛웃음이 나왔다. 대학에 갓 들어왔을 때, ‘암 걸릴 것 같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암 환자 가족을 두고 있는 입장에서 전혀 쓸 수 없는 말인데, 어떻게 저런 말을 일상적으로 쓸 수 있는지 의아했다. 욕 문화를 다루려면 “요즘 것들, 쯧쯧”과 같은 입장이 아니라 더 넓은 사회적 맥락에서 다루어야 한다. 그런 의미로 넷플릭스 코리아에서 한국판 <욕의 품격>도 한 번쯤 만들어줬으면 한다. 호스트는 유해진 씨로.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 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