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녕 Apr 03. 2021

한 발짝만 더 나서면

<브리저튼>: 1813년에서 보는 미래



브런치 넷플릭스 스토리텔러로 선정되어 넷플릭스 멤버십과 소정의 상품을 지원받았으며, 넷플릭스 콘텐츠를 직접 감상 후 느낀 점을 발행한 글입니다.



<오만과 편견>+<가십걸>?




지금은 조금 유행이 지났지만, 넷플릭스에서 <브리저튼>이 예상을 뒤엎고 탑 10을 한참 차지한 시기가 있었다. 사실, <브리저튼>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중 모두가 기대하는 작품은 아니었다. 원작 소설이 어느 정도 인기 있었지만, 1813년의 할리퀸 드라마가 백인만으로 구성되지 않은 점은 분명 낯설었다. 어릴 적에 <폭풍의 언덕>, <오만과 편견>, <작은 아씨들> 등의 원작 소설과 영화/드라마까지 본 사람들이라면 동의할 테다. 그러나 그 예상을 뛰어넘고 성공한 <브리저튼>은 단순히 19세기 <가십걸> 드라마라고만 치부하기는 아쉽다. 퓨전 역사 드라마를 만들 때, 더 나아가 현재 시점에서 드라마를 만들 때 어떤 점을 주의해야 하는지 잘 보여주는 드라마이기 때문이다. 



할리퀸 역사 드라마를 만들 때



<브리저튼>은 개연성이나 스토리가 빼어난 드라마는 아니다. 그런 걸 기대한다면 넷플릭스에서 <에일리어니스트>나 <나르코스>를 보는 게 더 낫다. 그러나 <브리저튼>의 성공이 단순히 핫-한 레지 장 페이지나 ‘고급스러운 19세기 고수위 드라마’라는 점에만 있다고 말하면 섭섭하다. 내가 지금까지도 <오만과 편견>을 좋아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로맨스 서사의 기초가 된 소설이기도 하지만, 제인 오스틴은 사소한 일로 치부되던 당시 여성들의 연애와 결혼 자체를 <오만과 편견>에 담아내는 데에 성공했다. <브리저튼>은 이러한 19세기 소설들의 고민을 담아내는 동시에, 21세기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하는 데 성공했다. 



<브리저튼>의 1813년 영국 세계는 어찌 보면 황당하다. 조지 3세가 흑인을 총애하여 왕비로 맞은 후,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들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 흑인 귀족이 탄생했다는 설정은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나기에 터무니없는 설정이다. 서양사에 있어 19세기는 제국주의가 가장 팽배했던 시기 중 하나다. 그럼에도 <브리저튼>이 이러한 설정을 고른 데에는, 21세기에 맞는 이야기를 보여주어야 한다는 제작진들의 고민이 한몫했으리라고 본다. 사극을 만들 때 고민해야 하는 지점은 바로 이 지점이다. 단순히 현재에서 도피하기 위한 장치로서 퓨전 사극을 활용하지 않고, 사극 안에서도 현재 필요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 <브리저튼>은 이 지점을 고민하고 만들어진 드라마였기에 성공했다. 이러한 태도는 한국 드라마 시장에서도 충분히 배워야 할 점이다. 


그래서 <브리저튼>은 현재에도 유효한 사회적 문제들을 19세기 영국 속에 담아낸다. 흑인 및 소수 인종에 대한 차별이 존재했던 과거의 이야기부터 성교육의 부재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 상류층 안에 숨어있는 성소수자까지 이야기에 조금씩 등장한다. <브리저튼>이 단순한 19세기 신데렐라 드라마가 아닌 이유다. 


우리에게 선택권은 있다



개인적으로 <브리저튼>의 매력은 일등 신랑감 사이먼 공작이 아니었다. 8남매, 그중에서도  자신의 길을 고르는 여성 캐릭터들이 참 매력적인 드라마다. 주인공이자 브리저튼 8남매의 장녀, 다프네는 흔한 일등 신붓감 여성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프러시아 왕자의 청혼을 받고도 결국 사이먼과의 사랑을 선택하는 다프네는, 영국 상위 사회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믿는 캐릭터이다. 



가장 공감 가는 캐릭터는 엘로이즈였다. 내가 저 시대에 태어났으면 다프네와 엘로이즈의 중간 어딘가에 있었을 듯하다는 생각을 하며 <브리저튼>을 보았다. 소식지의 저자 ‘레이디 휘슬다운’ 정체를 밝히기 위해 추리를 거듭하는 엘로이즈는 통통 튀면서도 드라마의 서스펜스를 고조하는 인물이다. 



브리저튼 가의 8남매가 다소 밝은 분위기를 유지한다면, 서브 캐릭터로 등장하는 페더링턴 가의 캐릭터들은 더 현실적이다. 세 자매 중 외모에 대한 자신감이 가장 낮은 막내, 페넬로페와 연인이 떠난 사이 임신한 친척 마리나 톰프슨은 친구가 된다. 페넬로페는 엘로이즈와 어울리면서 자신이 살아나갈 길을 고민하고, 마리나는 자신과 아이를 위해 신랑감을 찾으려고 한다. 누군가는 마리나를 보면서 사기 결혼을 하려고 한 여자라 손가락질 하기도 하지만, 마리나가 처한 상황은 지금도 유효하다. 연인 조지 경의 소식을 듣고 슬퍼하는 마리나, 그러나 곧 조지 경의 동생과 사랑 없는 결혼을 선택하는 마리나는 새삼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브리저튼>에 대해 “할리퀸 역사 드라마에 페미니즘 한 스푼”이라 평한 칼럼을 보았다. 맞는 말이다. 더 첨언을 하자면, <브리저튼>의 페미니즘은 선택권을 보여주는 페미니즘이다. 결혼 이후에도 어려운 상황에 처한 마리나를 돕는 다프네, 사이먼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던 레이디 맥베리, 미혼모로서 고민하는 마리나 등 여러 상황에 처한 여성 캐릭터들은 결국 ‘선택’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연애/결혼/출산/육아 등에 대한 고민은 21세기에도 유효하지 않은가. 


레이디 휘슬다운은 돌아올 테니



<브리저튼>의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지금, 팬들은 들뜬 마음으로 시즌 2를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나 역시<브리저튼>의 다음 시즌을 기다리겠지만, 조금 진이 빠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시즌 1을 보면서 참으로 비호감이었던 장남 앤소니가 주인공이라니… 이게 무슨 말이냐. 오페라 가수 시에나한테 지키지 못할 공수표만 던지는 모습이 저엉말 비호감이었는데. 다음 편은 엘로이즈의 이야기였으면 더 기대가 되었겠지만… 그래도 한번 지켜보련다. 레이디 휘슬다운이 잡히지 않았으니, 앤소니가 시즌 2에서 신명 나게 까이겠지 뭐. 

매거진의 이전글 악마의 손을 잡는 사람은 평범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