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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Jun 06. 2022

여전히 좋은 어른이 되고 싶다

그게 바보 같은 선택일지라도

퇴사 이후 반년이 지났다. 

그동안 변한 건… 딱히 없다. 

다행인 점은, 그나마 전 직장에서의 트라우마가 반년 전에 비하면 많이 옅어졌다는 것. 

불행이라면, 아직은 다음 직장이 정해지지 않았다는 것. 

퇴사하자마자 방송국의 3, 5 배수 면접에 올라갔다. 

그래서 다음 직장이 빨리 정해질 줄 알았는데, 그러지는 못했다. 

나 자신은 힘들더라도 스스로를 더 믿어주기로 결심했다. 

작년에 첫 정규직 직장을 퇴사할 즈음에 절친한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라라야, 네가 업계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나서 데려온 건데

그 회사가 너를 담을 그릇이 안 되었던 거야. 

그런데 내가 너 힘들어하는 거 보면서 무슨 생각했는지 알아?

한 번만 숙이지.

너무 대나무 같으면 부러지는데, 난 너 오래 보고 싶단 말이야. 

다음 직장에서는 조금 더 오래 버틸 방법을 다시 찾아보자.”




주변 사람들이나 업계 지인들은 다들 내 걱정이 별로 안 된다고 했다. 

니 실력은 다 아는데, 너 데려갈 좋은 직장은 당연히 있어.

그저 아직 때가 아닌 것이라고, 그리고 다음 직장에서 잘 버티는 게 관건이라고. 

그저 나를 믿지 못하는 것은 나와 부모님 밖에 없다. 

정말 가고 싶었던 회사의 필기 탈락 문자를 받자마자 내게

“그거 꼭 해야 하니? 대학원이 더 나은 거 같지 않니?”

라고 속을 박박 긁어놓는 엄마밖에 없다. 




이 길을 걷고자 마음먹은 이후로, 

나 스스로가 정말 징그럽게 느껴지는 순간이 많았다. 

회사를 다니기 이전에도, 이후에도 내게 끊임없이 질문이 날아오는 듯했다.

“이 모든 일을 겪고도 아직도 하고 싶니?”

누군가는 그 부조리를 모두 겪고도 아직도 하고 싶냐고 하고,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몸 상해가면서 하고 싶냐고 한다. 


그런데… 정말 징그럽게도 나 스스로 내린 결론은 언제나 YES였다.

단 한 번도 NO였던 적이 없다. 


    




최근에 <기묘한 이야기> 시즌 4를 인상 깊게 보았다. 

시즌 2, 3는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시즌 4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마음을 다시 제대로 짚었다. 

<기묘한 이야기> 시즌 4는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다. 

일레븐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숨겨두었던 트라우마를 마주하며 초능력을 되찾고, 

맥스는 아직도 자신을 괴롭히는 오빠 빌리의 죽음을 마주하며 자신의 곁에 있는 사람들을 되찾는다. 

비로소 트라우마를 마주하고 극복하고 사람들과 사랑하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 때문에 드라마가 여전히 좋다. 


 




여전히 좋아하는 빈지노의 앨범 <24:26>의 보너스 트랙, <always awake>에서 빈지노는 그렇게 말한다. 


“난 내가 내 꿈의 근처라도 가보고는 죽어야지 싶더라고.”


그러니 아직은 못 놓겠다. 

이루지 못한 꿈을 평생 마음에 쥔 채 후회할 시시한 어른으로 죽고 싶지는 않아. 

그저 과거에 머무르며 자신의 못다 한 꿈과 전성기만 그리워하며,

 다른 사람을 찍어 누르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아. 

아직은 좋은 어른으로 늙고 싶어서 포기 못하는 것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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