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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녕 Nov 05. 2020

왜 내 취향은 약점이 될까

그냥 속상해서

 면접은 아무리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걸까

아니다. 말을 고치자. 간절할 수록 면접은 어려운 자리가 된다.

얼마 만에 잡은 기회인데, 절대 놓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떨리면 어제 침대에 눕는 순간부터 긴장이 되더라.

다른 곳은 다 되어도 꿈의 직장이라고 생각했던 그곳만은 항상 서류에서 떨어졌다. 

그럼에도 놓치고 싶지 않은 곳이라 자기소개서를 통째로 갈아엎었더니 올해는 붙었다. 

필기에서도 나쁘지 않게 글을 썼고, 채용 전환형 인턴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다시 확인했다. 

그런데  나의 약점은 작년에도올해에도 변하질 않나.



 




어떤 드라마를 만들고 싶냐는 질문을 들었을 때, 항상 하는 말이 있었다. 

디스토피아를 보여주되 약간의 희망은 보여주는 드라마

그래서 가습기 살균제 사건 피해자들을 사회에 다시 보여준 드라마 <원티드>를 세 번이나 돌려봤고, 아동 학대의 피해자들이 비로소 폭력에 마주 서는 <붉은달 푸른해>를 사랑했다. 요즘 가장 사랑하는 드라마는 <에일리어니스트>다. 19세기의 안개 낀 뉴욕, 미국 대통령이 되기 전에 뉴욕 경찰국장이었던 루스벨트, 19세기에 범죄자들에 대해 정신의학적으로 접근하던 닥터 ‘에일리어니스트’의 세계는 지독히도 매력적이다. 지금처럼 프로파일링 기술이 발달하기 전, 지문이 범인을 밝혀내는 기술로 각광받던 시절. 뉴욕 경찰국의 유일한 여성 직원 비서, 세라 하워드가 비로소 연쇄살인범 수사에 크게 기여할 때의 그 쾌감. 내가 사랑하던 드라마의 세계는 그랬다. 건조하고 차가운 디스토피아 속에서도 조금의 희망은 놓지 않는 사람들이 있는 세계를 항상 동경했고 만들고 싶었다. 






그래서인가. 기획 인턴 동기들에게도 듣던 말이 있다. 

“왜 OCN을 안 써요? 유녕 씨처럼 OCN을 위해 준비된 인재가 어디 있다고.”

<3%>를 좋아한다고 해서, 건조하고 어두운 스릴러를 좋아한다고 해서 그 장르만 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연애를 통해 자신의 성 정체성을 깨닫는 에이 로맨틱의 이야기, 을지로에서 맞춤정장을 만들면서 노인과 청년이 서로 이해하는 이야기, 조선왕조실록에 남아있는 레즈비언 궁녀들의 연애 이야기 등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굳이 따지면 내 취향이 한국 드라마 속에서 대중적이지 않다’ 정도는 참으로 일관성 있지.



 




작년에도, 올해에도 방송국 면접에서 항상 내 명확한 취향은 양날의 칼, 약점이 되었다. 

따지고 보면 기획 인턴을 하던 시절에도 내 취향은 항상 튀었다.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내가 원한다고 해서 스릴러/장르물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여전히 TV 드라마는 TV를 무료로 보는 ‘대중’을 상대해야 한다. 

김은숙 작가가 항상 하는 이야기가 있다.

예술은 자기 돈으로 만드는 영화로 하는 거지, 드라마로 하는 게 아니라고. 

그렇다고 해서 내 취향을 바꾸고 싶지도, 연기를 하고 싶지도 않은데.






아직 결과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좀 씁쓸하긴 하다. 

내 취향이 약점이 된다는 건, 많이 속이 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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