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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gal Mar 06. 2022

2022년 8-9번째 주

세상은 요지경

이번 두 주 동안엔 여행을 제법 했다. 볼로냐로 짧은 여행을 다녀왔고 부재자 투표를 할 수 있는 곳이 근처에 없어 기차를 타고 투표를 하러 다녀왔다. 즐겁다가 슬프다가 화가 나다가 걱정이 되다가 아무것도 못하는 내가 쓸모없게 느껴지던 그런 기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식욕이나 물욕을 잃은 건 또 아니어서 이것 또한 부끄러웠다. 



부재자 투표


투표를 하러 다녀온 프랑크푸르트는 다녀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별 다른 생각이 안 들 줄 알았는데 작년 말에 갔을 때는 친구들이 이끄는 대로 따라만 다녔고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주말이라 평일의 모습을 보지 못했었다. 이번에 평일에 일찍이 가서 출근용 대중교통을 타고 갔더니 또 느낌이 달랐다. 이른 시간에 투표를 마치고 겸사겸사 대도시스러운 카페들이 많은 그곳에서 일도 하고 점심도 맛있게 먹고 돌아오는 오후에는 어차피 듣기만 하면 되는 미팅이 있으니 오후 기차를 타고 돌아오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했다. 영어 상호가 있고 플랫화이트를 파는, 창이 큰 카페를 찾아왔더니, 저번에 친구가 자기가 좋아하는 카페라며 데려온 곳이었다 (나 기억력 진짜 어쩔...). 생긴 것과는 다르게 와이파이도 없고 플러그 꽂는 곳도 없는, 미국 껍데기에 속은 독일인 그런 카페였다. 그다음 문제는 그 카페 점원이었는데, 일을 하고 있으면 느껴지는 시선에 눈을 돌려보면 20대 초반인 것 같은 그 여자 점원이 나를 빤히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추가 주문을 하고 나서 간단한 멘트인 dankeschön, gerne도 하지 않고. 이게 왜 이상했냐면 나 말고 다른 손님들한테는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선 바리스타인 미국인(이라고 짐작되는) 남자에게 끊임없이 영어로 플러팅인지 영어 연습인지를 해서 너무너무 거슬렸다. 내가 사실 베를린을 도시로는 참 좋아하지만 전체적으로는 별로 안 좋아하는 이유가 힙을 찾아 불나방처럼 달려든 가짜 힙스터들인데, 그냥 나의 스몰데이터가 알려준 건 힙스터 중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종 차별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거다. 내재화되지 않은 가치관이 바로 이건데... 아무튼 급하게 마무리할 일을 끝내고 그곳을 나와서 충전도 되고 내가 일을 하든 셀카를 찍든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스타벅스로 향했다.  


이번 투표를 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한 건 다양성이었다. 나의 조카들이 좁은 땅덩어리에서 편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자라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였고, 이제 먹고살만한 나라니 돈돈 그만하고 주변을 둘러볼 여유를 가졌으면 해서였다. 이 날 이런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건 설마... 여서였는데, 후에 벌어지는 일을 보니 이게 얼마나 사치스러운 생각이었는지. 남의 나라 힙스터 걱정 그만하고 내 나라 새는 바가지 걱정을 먼저 했었어야 했는데. 하지만 희망을 잃지 않고 남은 분들에게 기대해보면서 개표방송을 시청할 예정이다.  



볼로냐


(뜬금없이) 이탈리아어를 배워보고 싶다. 실제로 살게 되면 화병이 생기는 나라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한 번씩 다녀오기에 참 맛있고 흥미로운 나라인 것 같다. 볼로냐는 오래된 대학도시고 라구와 토르텔리니의 원조, 회랑이 아름답고 협동조합이 발달했으며 자주적인 사람들이 야무지게 지켜온 곳이었다. 알면 알수록 매력적인 역사를 가진 도시였는데, 예를 들면 순례자들을 위해 수도원까지 이어지는 거의 모든 길을 회랑으로 만들어 비와 햇볕을 피할 수 있게 해 주었고, 회랑이 많아지게 된 계기가 대학이 생기면서 몰려드는 수많은 타도시 출신이나 외국인들을 수용하기 위해 회랑을 만들고 그 위에 추가 공간을 만들어 주거지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막상 가고 싶었던 공연과 탑 투어는 게으름으로 인해 표를 구하지 못했지만 오래된 건물들과 길 위에 펼쳐지는 활기차게 젊은 도시의 에너지는 오랜만의 여행으로 딱이었다. 돌아와서 허브와 치즈, 커피빈을 채워온 짐가방을 열었을 때의 뿌듯함이란. 한국에 다녀오긴 했지만 여행도 아니고 집 방문도 아니었던 것 같은 애매한 기분이어서 이 여행이 참 필요했었고 덕분에 새로운 인풋이 생겨 좋았다. 여행을 하면서 같이 읽은 책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이 많은 도움이 되었고 재밌었다. 


나도 포스팅에 사진 한번 넣어보고 싶었음


원 없이 마신 오후의 에스프레소가 좋았고 동시에 요리와 맛에 대한 감각은 역시 타고나는 거라는 걸 알게 된 게, 아무 레스토랑에 들어가 베지테리언용 라구스러운ㅋㅋㅋ 파스타를 시켰는데 우선 딸리아텔레가 식감도 좋고 맛있었고 소스라곤 토마토와 잘 사테한 양파가 전부였던 것 같은데 맛이 좋았다. 토마토야 독일도 다 해 좋은 나라에서 수입하니까 크게 다르진 않을 텐데, 이렇게 또 맛있을 건 뭐람. 반면, 이탈리아 요리는 의외로 정성이 많이 들어가서 불 앞에서 오랜 인고의 시간을 버텨야 맛있는 요리를 맛볼 수 있다. 예전에 인도 동료한테 무슨 인도 음식 이야기만 하면 맨날 사테사테 이야기를 하고 엄청 간단하다고 말해줬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고 계속 불에 안 타게 팬 앞에서 볶고 있어야 했고, 요리 후에는 온 집안이 마늘 냄새로 가득해졌던 기억이 난다. 이탈리아 요리도 많이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고로 허브를 사 온 나의 선택은 아주 탁월했던 걸로. 날이 따뜻해지니 이제 다시 찬 샐러드를 허브와 함께 맛있게 먹을 수 있다 :)    



그리고 쓸데없는 이야기들


얼마 전에는 왜 그렇게 피지컬이 좋은 유럽 경찰들은 우스꽝스럽게 가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다니다가 갑자기 궁금해졌고 검색을 해봤더니, 1) moderation attitude라 하여 갑작스러운 공격에 가장 이상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높이라고 한다. 2) 그리고 이곳에 손을 두는 게 심장과 가까워 안정작용을 한다는데 이건 잘 모르겠다, 3) 그리고 사람들에게 무기를 소지하고 다니는 경찰의 손이 어디 있는지를 확실하게 알려주어 경계하지 않아도 되게끔 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일반인 답변으로는 그게 편하니까... 도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는 주머니가 더 편할 것 같은데 팔 근육이 많으면 여기가 더 편하려나.


한 동료의 딸이 코로나 확진을 받았는데 그 가족들이 절대 테스트 센터에 가지 않고 자가 테스트만 한다고 한다. 줄어든 확진자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될 것 같다. 물론 증상이 경미하다고들 하지만 안심하긴 이르다. 


일본 실용서들을 별로 안 좋아하는데 어쩌다 읽게 됐다: <심플하게 산다>라는 책이었고 40대부터 어떻게 기억력을 관리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어차피 다 기억 못 하니깐 인풋의 절대 양 자체를 줄이고 잘 추려 선택해서 뇌 과부하를 줄여주어야 한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40대도 아닌데 기억이 예전 같지 않아서 걱정되었는데, 이건 나이도 나이지만 쓸데없는 걸 너무 많이 들여오는 내 지적 욕심 때문이었다. 인풋 줄이기! 매우 중요!!!  


구매한 제품 때문에 서비스를 받을 상황이 몇 번 있었다. 더 싼 가격을 찾아 믿음직하지 않은 플랫폼을 이용하지 말자는 결론을 내렸다. 공식 플랫폼 혹은 믿을 만한 플랫폼을 통해 구매한 제품들은 서비스도 좋다. 꼭 필요한 제품들은 특히 더 오프라인 구매를 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오랜만에 베이킹을 하려고 우유를 산 김에, 커피에 오트밀크 대신 진짜 우유를 넣어보았다. 우유 비린내가 심하게 났다. 스팀 스틱 부분에 우유 기름이 꼈다. 습관이 이렇게 무섭고, 바꾸려면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이사한 지 9개월이 넘었는데도 아직 정리가 끝나지 않은 구석들이 있다. 조만간 집들이로 이사 드림팀을 부르기로 했는데 빨리 청소하고 정리를 마무리해야지. 쓸모를 잃은 가구들은 싼 가격에 팔거나 무료로 나누려고 한다. 오늘은 그래서 옷 정리와 숨은 물건 정리들을 하려고 한다. 겨울 옷을 집어넣기엔 조금 이르지만 한번 도 안 입은 겨울 옷이 있는지 (물론 있다) 옷 상태들은 어떤지도 점검하고, 건전지들은 한 곳에 모아 두고 하는 그런 정리를 좀 해야 할 것 같다. 






토마토를 심으려고 준비 중이다. 씨앗부터 심어보려고 일부러 미니 푸딩을 사 먹고 그 통에 씨앗을 심으려고 한다. 이제부터 마시는 우유통들도 다 보관해야지. 8개를 심어보려고 하는데 얼마나 살아남을지 모르겠다. 다른 허브들은 대충 마트에서 사다 키우더라도 바질은 제대로 키워보고 싶은 마음에 다음 주에는 주말 시장에 가서 씨앗을 사 올 예정이다. 나의 리틀 포레스트는 예전에 살던 스웨덴 집인데 그 집이 팔렸다고 한다. 6월 전에 가면 내가 살던 집에서 마지막으로 머물 수 있을 거라고 하는데, 한번 여행을 계획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배운 농사 스킬로 내 작디작은 발코니에 타이니 포레스트라도 만들어보려고 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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