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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Sep 02. 2020

여행 가방을 파는 장사꾼이 살아남는 법


온갖 악다구니를 있는대로 질러가며 질척거린게 언제부터인지 가물하다. 더 이상 특별하게 여길 것 없는 일상의 연장으로 느껴지는 탓에, 가끔 숨통이 트이는 것 같은 착각에 들 때도 있다. 녹록지 않음이 변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는 근거 없는 희망이 여전함에 감사하기도 한다. 2020년의 초침은 참으로 지난하고, 진정으로 고난하게 삐걱거린다.



여행 가방을 팔고, 크지는 않지만 여행을 주제로 유튜브 채널을 꾸려가고 있으니 이것을 업으로 삼고 있다고 해도 무방한 삶이다. 혼자서 모든 것을 해내려니 가끔 힘에 부칠 때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아쉬운 것은 없었으니, 분명 만족스러웠다. 일본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초리가 엄중해지고, 훗날 세계사 교과서를 새로 쓴다면 여러 쪽을 할애할 만큼이 되는 홍콩의 현 시국을 맞이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간사이 공항을 빠져나와 자전거 바퀴를 부지런히 굴려 찾아간 교토, 그곳에서 커피 한 잔 마시는 소소한 호사를 다시 누려보겠다는 기대를 접은 것은 애저녁이었는데, 이제는 일말의 여지마저 소멸해버렸다. 일상과 맞닿은 면이 늘어가는 만큼 당연하고 익숙하던 여행이라는 단어가, 그렇게나 갑작스레 국어사전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말이 되어버렸다.



올해의 시작을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혼자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함이 슬며시 내려앉았고, 그럼에도 어떻게든 살아보려고 저항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물론 별 의미는 없었다. 불가항력의 존재를 탓하면 마음이라도 편해지려나 싶어 시장을 살펴본 적이 있다. 우리는 1989년에 해외를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게 된 이래로 30년의 역사 속에 단 한 번도 찾아온 적이 없는, 그야말로 여행이 몰락한 시대를 살고 있다.


너무나 당연한 귀결이었다. 업계에서 십 수 년, 수십 년을 몸 담은 사람들 마저도 고개를 내젓는 거대한 물결이 휩쓰는 와중에 경험의 외연마저 일천한 나에게 대단한 수가 있을 리 만무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한 동안 내가 그릴 수 있는 미래 역시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사실들을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나는 그 모든 것이 공포스러웠다.


그렇다고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당장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얼마가 됐든 나를 써줄 곳을 찾아야 했다. 그런 와중에 머리 속에는 온갖 고민과 근심과 걱정을 포도송이처럼 달고 있었으니, 그 과업을 함께 나누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머리카락들이 하나 둘 이별을 고하기 시작했다. 매일 아침 바닥을 닦으며 녀석들을 떠나보내는 마음이 적잖이 저릿했다.



벌써 반 년을 넘어가고 있다. 조금씩 국면의 전환을 맞이한 덕분에 글 몇 자 끄적이려고 손가락 놀릴 만큼의 여유도 생겼다.


요즘은 친구네 회사의 이런저런 일을 도와주면서 하루 하루 살아내는 목표를 충실히 이행하고 있다. 영 뜬금없게도 구체관절인형 소품을 만드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데, 여기에서도 가방을 만들고 있으니 이것도 팔자라면 팔자인 듯 하다. 여러모로 어려운 상황에 큰 결단을 해준 친구에게 고마운 마음이 크다.


매몰차게 이별을 고하던 머리카락들과는 과학의 힘으로 불안정한 동거를 이어가고 있다. 녀석들이 언제 다시 변심할지는 모르지만, 당장에 고민할 거리가 아니기에 일어나지 않은 미래를 담보로 현재를 어렵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



이렇게나 지리하고 고단한 시간을 얼마나 더 견뎌야 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쩌면 지금의 시대를 정의하는데 있어서 '견딘다'라는 표현은 용도가 폐기되어야 할지도 모른다. '뉴노멀'이라는 단어의 등장은 기원 전과 후를 구분하는 그것과 동일하게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더 빠르게,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연결을 수많은 이들이 외쳤고, 이것은 세이렌의 노랫소리 만큼이나 매력적인 것 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노랫소리를 다시 들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결국은 답을 찾아낼테고, 그에 맞춰서 적응할테지만 분명히 이전과 같은 모습은 아닐 것이다. 미래에 대한 기대와 근거 없는 긍정이 깎이고 무뎌진 것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내다보면 또 다른 우연이 찾아오려니 하는 마음으로 바뀌어가는 현실과 친해지는 중이다. 비록 잔지바르의 푸른 하늘과 부서지는 파도를 다시 조우하는 것은 요원한 일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마냥 손에서 놓아버리기도 아까운 일이다.


어제보다 오늘이 조금 더 나은 모습으로 살아내고, 살아지고 있는 요즘이다.




그래도 장사는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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