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도 중화권 최대 규모의 박물관
1. 타이베이 국립 고궁 박물원
솔직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을 싫어한 건 아닌데 비행기 타는 게 너무 싫었다. 공대를 다녔지만 이렇게 커다란 쇳덩어리가 하늘을 나는 게 언제나 의뭉스러웠다. 내가 전공한 화학공학과에서도 유체역학을 배운다. 이론상으로는 이 녀석이 날지 못할 이유가 없는 걸 분명히 알지만 언제나 무서웠다.
지금도 비행기 타는 건 싫다. 불현듯 심장이 덜컹거린다. 백 번 넘게 비행기를 탔지만 여전히 맘 놓고 잠들지 못한다. 그래도 여행이 그립다. 여행 가방 장사꾼의 삶에 여행이 없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등 떠밀리듯 시작한 여행이지만 이제는 여행 없는 일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다. 그 무엇도 메우지 못했다.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요원하다.
'그런대로 랜선 여행'
그런대로 살아가는 여행 가방 장사꾼의 지난 여행 이야기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차고 넘친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길 때마다 한 편씩 써나갈 생각이다.
우리나라만큼 '한민족'이라는 유대의식이 강한 나라도 흔치 않을 거다.
오만 걸로 편가르고 싸우는 게 일상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부리를 겨눈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 존중한다)
별생각 없이 방문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히 많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를 묵직하게 던져주는 곳이다. 중국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데 필사적이었던 장제스의 마지막 유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양안 갈등의 첨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 타이베이 고궁 박물원이다.
입장권에 그려진 꽃이 뭘까 한참을 고민했다. 매화인 듯 아닌 듯 긴가민가했는데 아마도 매화가 맞는 것 같다. 중화민국의 국화가 매화다.
사진을 못 찍는다고 해서 풀이 죽었는데 영상은 가능하다. 그래서 고프로를 들고 열심히 설쳤다.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 왕조의 계보를 잇기 위한 패권 싸움이 한동안 계속됐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공산당과 국민당이 영혼의 한타를 시전 했고, 거기에서 패한 국민당은 본토에서 대마를 잃었다. 살길을 찾아 피난길에 올랐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타이완섬에 정착했다. 그렇게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그들에게 중국 본토는 언젠가 수복해야 할 영토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중국 왕조의 계보는 중화민국이 잇고 있는 것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것이 아니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등장하는 연표에서 가감 없이 확인할 수 있다. 송, 원, 명, 청을 잇는 연표의 끝자락에는 중화민국이 써져 있다. 물론 중국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자금성 박물관에도 똑같은 연표가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연표의 끝에는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61만 점에 가까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 번에 전시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몇 유물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순환 전시가 되고 있다.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모든 유물을 순환 배치하는 데 60년 가까이가 걸린다고 한다. 박물원이 생긴 지 6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겹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금성에 있는 모든 유물을 가져온 것도 아닌데 아직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니, 그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