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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인혁 Dec 30. 2021

그런대로 랜선 여행 1. 국립 고궁 박물원

아마도 중화권 최대 규모의 박물관

그때그때 머릿속에 떠오르 이야기하고 싶은 이야기를 합니다.


그런대로 살아가는 여행 가방 장사꾼의 여행 이야기


'그런대로 랜선 여행'입니다.




1. 타이베이 국립 고궁 박물원


여행 가방을 팔고 있다. 2016년에 회사를 그만두고 가방을 만들기 시작했으니 햇수로는 곧 7년, 만으로는 5년 6개월 정도가 됐다.



솔직히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다. 여행을 싫어한 건 아닌데 비행기 타는 게 너무 싫었다. 공대를 다녔지만 이렇게 커다란 쇳덩어리가 하늘을 나는 게 언제나 의뭉스러웠다. 내가 전공한 화학공학과에서도 유체역학을 배운다. 이론상으로는 이 녀석이 날지 못할 이유가 없는 걸 분명히 알지만 언제나 무서웠다.




지금도 비행기 타는 건 싫다. 불현듯 심장이 덜컹거린다. 백 번 넘게 비행기를 탔지만 여전히 맘 놓고 잠들지 못한다. 그래도 여행이 그립다. 여행 가방 장사꾼의 삶에 여행이 없다는 건 앞뒤가 맞지 않는다. 등 떠밀리듯 시작한 여행이지만 이제는 여행 없는 일상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너무 갑작스럽게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빈자리가 생각보다 크다. 그 무엇도 메우지 못했다. 곧 돌아올 거라 생각했지만 아직도 요원하다.


'그런대로 랜선 여행'


그런대로 살아가는 여행 가방 장사꾼의 지난 여행 이야기다. 깔끔하게 정리하고 싶었는데 쉽지 않다. 가고 싶은 곳이 너무나 많다. 하고 싶은 이야기도 차고 넘친다. 그냥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길 때마다 한 편씩 써나갈 생각이다.



아마도 중화권 최대의 박물관이자 세계구급으로 확장해도 손에 꼽 박물관이다. 그런대로 랜선 여행의 첫 번째 손님이자 오늘의 주제는 타이베이 국립 고궁 박물원이다.





우리나라만큼 '한민족'이라는 유대의식이 강한 나라도 흔치 않을 거다.


오만 걸로 편가르고 싸우는 게 일상이지만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총부리를 겨눈다는 건 상상해 본 적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의 생각 존중한다)


별생각 없이 방문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 역사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고 대단히 많은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할 거리를 묵직하게 던져주는 곳이다. 중국 왕조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데 필사적이었던 장제스의 마지막 유산,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양안 갈등의 첨예함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할 수 있는 그야말로 역사의 산증인, 타이베이 고궁 박물원이다.



입장권에 그려진 꽃이 뭘까 한참을 고민했다. 매화인 듯 아닌 듯 긴가민가했는데 아마도 매화가 맞는 것 같다. 중화민국의 국화가 매화다.



사진을 못 찍는다고 해서 풀이 죽었는데 영상은 가능하다. 그래서 고프로를 들고 열심히 설쳤다.


청나라가 멸망한 이후 중국 왕조의 계보를 잇기 위한 패권 싸움이 한동안 계속됐다. 간단하게 요약하면 공산당과 국민당이 영혼의 한타를 시전 했고, 거기에서 패한 국민당은 본토에서 대마를 잃었다. 살길을 찾아 피난길에 올랐고 후일을 도모하기 위해 타이완섬에 정착했다. 그렇게 중화민국이 탄생했다. 그들에게 중국 본토는 언젠가 수복해야 할 영토이다. 그들의 입장에서 중국 왕조의 계보는 중화민국이 잇고 있는 것이지 중화인민공화국의 것이 아니다.



전시장에 입장하자마자 등장하는 연표에서 가감 없이 확인할 수 있다. 송, 원, 명, 청을 잇는 연표의 끝자락에는 중화민국이 써져 있다. 물론 중국의 입장도 별반 다르지는 않다. 자금성 박물관에도 똑같은 연표가 있을 것이고, 아마도 그 연표의 끝에는 중화민국이 아니라 중화인민공화국이 새겨져 있을 것이다.



61만 점에 가까운 유물을 소장하고 있다. 한 번에 전시하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말 중요한 몇 유물을 제외하고는 해마다 순환 전시가 되고 있다.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모든 유물을 순환 배치하는 데 60년 가까이가 걸린다고 한다. 박물원이 생긴 지 60년이 다 되어 가지만 일단 아직까지는 겹친 적이 없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언제나 새로운 기분으로 박물관을 둘러볼 수 있다는 뜻이다. 자금성에 있는 모든 유물을 가져온 것도 아닌데 아직도 감당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니, 그 규모가 얼마나 거대한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명과 청대의 끗발 날리던 황실 유물은 모조리 가져왔다. 보고만 있어도 입이 쩍 벌어지는 수준이다.



큰 동그라미 안에는 작은 동그라미가 있다. 그리고 그 작은 동그라미는 빙글빙글 돌아간다. 사진을 제대로 찍었으면 이 조각의 유려함을 더 극적으로 보여줄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하는 게 아쉽다. 모든 것은 직접 조각했고 그 재료는 코끼리 상아다.


중국에서 틈만 나면 훔쳐간 유물들을 내놔라고 난리인 이유가 있다. 여기 말고는 그 어디에서도 본 적 없는 기상천외한 유물이 지천에 가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자만큼은 조선의 실력이 한 수 위다. 문양의 섬세함, 색상의 조화로움은 감히 비교를 불허한다. 국뽕일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다. 조선 백자의 아름다움과 비교하기에 이곳의 도자기는 조금 민망한 수준이다.



마참내 등장.


청나라가 낳은 가장 귀중한 유산이자 대만의 자랑, 취옥백채가 등장했다.



이 몸 등장.



자이현에 위치한 국립고궁박물원 남부 분원에 순환배치가 자주 되는 유물이다. 그래서 시기를 잘못 맞춰 가면 이 녀석을 못 볼 수도 있다. 생각보다 자리를 자주 비우는데 운이 좋았다. 아무 생각 없이 방문했지만 이 녀석을 만날 수 있었다.


배춧잎 위에 여치가 앉아 있는 모습을 옥에다가 조각한 것으로 서태후의 무덤에서 발견됐다. 말 그대로 청나라의 말년을 함께한 유물이다.



당시에는 별생각 없었는데 지나고 나서야 알았다. 이 녀석까지 동시에 볼 수 있는 시기는 일 년에 정말 며칠 안 된다. 취옥백채와 함께 중국 역사의 가장 찬란한 유물 중 하나로 꼽힌다. 동파육을 본따서 만든 '육형석'이라는 이름의 조각이다.


믿기지는 않겠지만 동파육의 질감을 그대로 살리기 위해서 자연 상태의 돌을 찾는데 엄청난 노력을 들였다고 한다. 별도의 후처리 없이 오직 조각만으로 완성한 육형석이다.



대만 사람들은 크게 세 부류로 나뉜다. 본성인과 외성인, 그리고 원주민


국민당의 국부천대 이전에 타이완 섬으로 건너온 한족을 본성인이라 부른다. 국민당이 공산당에게 패한 이후 타이완 섬으로 건너온 한족 사람들을 외성인이라고 하는데, 이들은 소수지만 대만 사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마지막으로 오래전부터 타이완 섬에 터를 잡고 살아온 대만 원주민들이 있다. 대만 땅을 지탱하며 살아가는 세 축의 이해관계가 다르다. 그래서 이 박물관을 바라보는 시선도 약간은 미묘하다.


국립 고궁 박물원은 중국 왕조, 나아가 한족의 정통성을 계승하기 위한 명분으로써 존재하는 곳이다. 원주민이 바라보는 타이완 섬의 역사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이 땅에서 나고 자란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덧붙일 수 없다. 생각하기에 따라서 참 다양한 입장이 있을 수 있겠구나 지레짐작만 할 뿐이다.



여행을 갔다 온 직후에 역사를 전공한 친구와 술 한 잔 했다. 궁금한 게 너무 많았고 해결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이것저것 물어봤지만 명쾌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흐르는 시간만이 오늘의 역사에 당위성을 부여해 줄 거라는 대답밖에 듣지 못했다.



전공자가 그렇게 얘기하는데 덧붙일 말도 없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양안의 현재를 볼 수 있는 곳이다. 대만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뭐가 됐든 한 번은 가볼 만한 곳이다. 그게 국립 고궁 박물원이다.




여행이 그립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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