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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Dec 19. 2018

서울숲

취미는 '시작'

  관계에 치이고 생활에 지쳐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 같은 날이면 서울숲에 간다. 나는 2005년 그곳이 경마장이었을 때부터 지금의 넉넉한 숲이 되기까지를 지켜봤다. 그리고 자라는 숲과 함께 어른이 되어갔다.  


  사람들은 서울숲에 오면 모두 허리를 펴고 뒷짐을 진 채 천천히 걷는다. 아이들은 이쪽 메타세콰이어에서 저쪽 은행나무까지 왔다갔다 하면서 ‘누가 먼저 나무를 찍고 오나’ 경기를 하고, 브로콜리 머리를 한 아주머니들은 벚나무 밑 평상에 앉아 참 맛있게도 이야기를 나눈다. 커플들은 손바닥만한 돗자리 위에 앙증맞은 도시락을 펼친 채로, 외국인들은 돗자리도 없이 맨살 그대로 넓은 잔디에 자리를 잡는다. 잡고 누 워버린다.  


  유럽의 공원을 닮은 숲을 걷고 있으면 제인 오스틴 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의미 있는 꿍꿍이를 갖고 사는 사람이 된 것만 같다. 무슨 말이냐면 커다란 나무 사이를 걸으며 말없이 생각에 잠기는 내 표정이 좋다는 말이다. 대단한 영감을 얻는 것은 아니어도 자잘한 고민은 거기 그대로 걸어두고 올 수 있다는 말이다. 가지마다 걸린 부끄러운 고민들은 바람에 풍화되어 새들의 먹이가 되고, 잘 익은 거름이 된다.  


  때로 친구들은 이곳에 보드를 가지고 오고, 따뜻한 커피와 두유를 가지고 오고, 영화를 볼 노트북을 가지고 왔다. 그러면 나는 친구들과 함께 보드를 타고, 두유를 고르고, 영화를 보다 말고 누워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무래도 서울숲은 혼자 걸을 때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나는 숲에서 여름날 소낙비가 우르르 달음질 하는 장면을, 초가을 저녁 여섯 시의 햇볕을, 겨울 새들이 잣나무 위에 앉았다가 포물선을 지으며 날아가는 동선을 바라보곤 했다. 그리고 얼어붙은 강물 아래 잉어들이 살아있고, 죽은 것 같은 나무에도 봄이 들어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내 20대의 마지막 가을에도 숲의 길들은 말없이 나를 밀어주고, 나무들은 어리석은 나를 가만히 굽어봐준다. 고마운 일,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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