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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Mar 27. 2019

사랑의 안과

그런 부성애-

안과에 갔다. 휴일 전날이라 그런지 많은 사람들이 빨간날을 피해 안과에 몰렸다. 나는 구석에 마련된 빈자리에 앉아 차례를 기다리며 책을 읽고 있었고, 한 남초딩과 그의 부모님이 내 옆쪽으로 왔다.

그들의 이야기를 굳이 듣고 싶지는 않았으나, 그애의 아버지가 너무 쉴새없이 이야기를 했고, 나는 그덕분에 들고있던 책의 한문장을 세번 네번 읽어야 했다. 아무래도 남초딩이 손으로 눈을 너무 비벼서 눈병에 걸린 듯 했다. 남초딩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말했다.  


"너, 안경 끼면 얼마나 불편한지 알아? 자전거 탈 때도 어렵고. 엄마를 봐. 엄마는 안경 끼고싶어서 끼는줄 알아? 눈이 나빠 어쩔 수 없이 끼는거야."


여기까지는 평범한 엄마 디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계속 이야기했다.


"아빠는 정말이지 네가 초등학생때부터 안경끼는 모습 생각하고 싶지 않구나."


아들의 눈 건강을 각별히 신경쓰는 아버지라고 생각했다.


"다른건 몰라도 네가 그 나이에 해야할 일은 오직 하나. 안경을 쓰지 않는거다."


나는 그의 멘트가 좀 쓸데없이 비장한건 아닌가 생각하며 읽던 책을 슬슬 접었다. 자리를 옮기고 싶었다.


남초딩은 딱히 목마르지도 않은것 같은데 정수기에 가서 물을 마시고왔고, 아이의 엄마는 남편에게 "저쪽 에어컨 앞 시원한 데 가서 앉지 그래?"라고 권유를 했다. 당신만 가서 앉으라고. 우리와 좀 떨어져서. 

하지만 아버지는 꿈쩍하지 않았다.


드디어 간호사가 남초딩의 이름이 불렀다. 아이와 부모님은 벌떡 일어나 대기의자에 가 앉았고, 잠시 후 아이만 외래를 받으러 들어갔다. 로비로 나온 아이 엄마는 쇼파에 앉아 잡지를 집어들었고, 아빠는 긴장한듯 끊임없이 엄마 주변을 왔다갔다 했다. 


왕십리 사랑의 안과에는 그렇게 부성애가 가득했고, 나는 에어컨이 잘 나오는 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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