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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룡 Jul 12. 2019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

나는 왜 시를 읽는가?

  내가 백석 시인을 알게 된 때는 대학교 1학년 대학국어작문 시간이었다. 강의실에서 <국수>라는 시를 읽고는 ‘누가 시를 이렇게 잘 쓰나’ 살펴봤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 시에서 ‘흥성거리다’라는 말을 처음 배웠고, ‘히수무레하고 수수하고 심심한 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가를 재발견했다. 그 후로도 한동안은 좋아하는 시인으로 윤동주나 박준의 이름을 대긴 했지만,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내가 백석을 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어서 “백석의 시도 참 좋더라.”라고 말하곤 했다.

  졸업 후, 사회에 나가 일을 배우고 몇 번의 이직을 경험했다. 다양한 분야의 사보를 만들고, 공연을 홍보하고, 여행 책을 쓰고, 무명한 사람들의 인터뷰를 기사로 만들었던 날들. 좋게 말하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사는 삶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막연하고 피곤한 삶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피로감은 한 해 두 해 내 눈빛이나 표정에 차곡차곡 쌓여갔다.

  하루의 고단함을 푸는 나만의 방법은 수영이나 요가, 일기쓰기 등이었다. 유독 지친 밤에는 목욕을 하고 선풍기 앞에 앉아 머리카락이 크게 부풀어 오르도록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그때 책장에서 백석의 시를 꺼내 읽었다. 몇몇 시는 읽어도 무슨 말인지 해독이 안 되어서 방언 풀이를 해 놓은 주석란을 짚어가며 읽어야 했다. 천천히 읽고, 소리내어 읽고, 골똘히 생각하며 읽어야 하는 시. 근데 제대로만 읽으면 왈칵 울고 싶게 좋은 시들이 백석의 시였다. 나는 인절미, 송구떡, 콩가루차떡의 내음새 이런 머나먼 말들로부터 위로 받았고, 상상 속에서 시인과 겸상을 하며 그가 먹는 가자미며 흰 쌀밥이며 평양냉면을 맛보았다. 그리고 이렇게 제멋대로 뒤죽박죽인 나도 언젠가는 그의 시처럼 수수하고 정갈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이 흘러, 나는 끝내 수수하고 정갈한 사람은 되지 못했다. 그 대신 이제 백석의 웬만한 시들을 어렵지 않게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재미있는 것은 아직까지 그의 시에서 매번 새로운 말을 배운다는 것이다. 주석란을 짚어가고 사전을 찾아가며, 나주볕이 저녁의 햇빛임을 깨닫고 좋아한다. 여전히 내일이 보이지 않고 이따금 ‘내 삶은 왜 이렇게 정처가 없는가.’ 생각하며 멍해질 때도 있지만, 그런 날에도 백석의 시는 나를 고요하고 행복하게 한다. 그 그지없이 고담하고 소박한 것으로. 그것이 문학이고 시라서 나는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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