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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비스 Mar 30. 2023

나는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단풍국 #냥집사 #싱글라이프

집 밖으로 스치는 대나무 잎 소리와 카페트 알러지 덕분에 재채기가 공존하는 방에서 새삼 깨달음. 캐나다에 와 있구나.


언제부터였지? 눈 뜨자마자 '오늘은 뭘 하지'라는 생각에 갇히지 않게 된 게.

발치에서 자고 있는 동거묘를 쓰다듬으며 '인생. 뭘까'를 고민하지 않게 된 게.


치열했다. 어디에 사는가 위에 무엇을 하느냐가 결정되는 것이 삶인지라 그 치열함 조차도 부족했고 '더 많이, 더 빨리, 더 높이' 그것이 일상이었다.


어느 날 카운슬러에게 물었다.

"내가 가진 게 많은 건지, 이거면 된 건지, 아니면 더 달려야 하는 건지"


간절했다. 기준이 그에게 있는 것도 아닌데 누군가 붙잡고 물어보고 싶을 만큼. 다들 그렇게 살고, 다들 이렇게 노력하는 거니까 몸서리치게 싫었으면서도 벗어나는 건 지옥이었다. 결국 순응하고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


하소연을 한다. 여기까지 와서 앞으로 뭘 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뭘 할 수 있을지 조차 모르겠는 자신에게 환멸이 난다고.


"창업을 하고 싶었으면 실리콘 밸리를 갔어야지"


그러게. 미국은 도저히 자신 없어서 쉬운 길(과연 쉬울까?)인 여길 왔는데 또 왜 이러고 있지?



그냥 한국인인거지 뭐

아!

생각의 길은 언제나 쉬운 쪽으로 흘러가서 30년간 닦아온 치열함과 노오력의 습관은 영 쉽게 바뀌질 않는다.


그만 치열하고 싶어서, 그만 달리고 싶어서 여길 왔는데 영주권 따는 속도마저 경쟁이다. 한국어를 계속하는 커뮤니티에 있다간 도저히 바뀔 것 같지 않아서 글 쓰는 것도 멈추고 있었다. 내가 이렇다.


"앞으로 뭘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여길 왔는데 또 같은 물음이 계속된다. '저 하고 싶은 거 다 해봤고, 할거 없어서 여기 왔는데요'라고 답했다간 외국인이 아닌 외계인 취급을 받을까 싶어 어.. 어.. 얼버무린다.

아니. 인생에 하고 싶은 걸 이렇게 답 하지 못했던 적이 있긴 해?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냥 다들 그렇게 사니까 그게 당연했고 그렇게 살아야 겨우 뭐라도 어떻게든 되니까.




유튜브 알고리즘 덕분에 만나게 된 당연하지만 신선한 생각.


사는 건 그냥 사는 거지 '열심히' 사는 건 대체 뭐예요?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알아요?
출처 - KBS 사람과 사람들 (문제시 삭제하겠습니다)




산을 오른다. 수도 없이 올랐던 관악산과 단풍국 어딘가의 이름 모를 산.

오르는 나는 변했을까? 여기서 멈춰야 하나? 아니면 관뚜껑에 못 박히는 소리는 들어봐야 하나?

할 수 있는 것 중에 제일 좋은걸 하자. 는 생각으로 달려온 15년. 그래도 어찌어찌 여기까지 오긴 왔네.

까마득한 나무들 사이에서 생각한다.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가 아니었어.


그냥 여기에 있는 거였다.

그냥 되면 하자.

'하면 된다'가 아니고 '되면 한다.'


쓰러진 고목은 길이 되었다
그래. 이제 좀 대충 살자.




저는 이제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습니다.

그러니 뭘 하고 싶은지 물어보신다면 답은 정해져 있어요.

그냥 살기로 했습니다.


단풍국에서 고양이 키우면서.                                             


두더지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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