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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쟈코비 JACOBY Apr 14. 2020

쟈코비의 물건 No.2

Camera



< 기록의 힘 >
자의든 타의든 우리는 평소에 무수히 많은 장면들을 핸드폰 사진으로 기록하며 살고 있다. 기억에 남는 하루던 너무나도 평범한 보통의 하루던, 계속해서 다가오는 새로운 일상들로 인해 그런 하루의 추억들은 점점 우리의 머릿속 깊은 곳으로 점점 밀려나게 된다. 그렇게 우리가 각자의 정신없는 삶을 살아 내는 중, 가끔 핸드폰의 알림음이 울리며 클라우드에 나도 모르는 새에 자동 백업되었던 'N 년 전 오늘'이 툭 하고 튀어나온다. 이내 우리는 묘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리곤 폰 화면에 떠있는 그 날의 사진을 보며 그날을 떠올리게 된다. 물론 기억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눈치 없이 떠서 흠칫하며 넘겨버리는 경우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경우엔 그날의 기록으로 인해 사진으로 찍어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듯한 햇살 좋은 날 집 앞을 거닐던 평범한 일상의 사진마저도 미세먼지 많은 요즘은 간절하게 돌아가고 싶은 추억이 된다. 이게 바로 기록의 힘이다.


< 내가 좋아하는 기록의 도구와 이유 >
난 여러 가지 기록의 도구들 중 유독 카메라를 좋아한다. 시간을 한 장에 잡아둘 수 있다는 게 나에겐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같은 장면을 본다 해도 찍는 개개인의 신체조건들로 인해 다른 뷰포인트나 구도의 차이가 생기기도 하고, 사물을 보는 시선의 차이 때문에 서로 전혀 다른 메시지를 담은 결과물이 나오기도 한다. 결국 카메라는 시선을 기록해서 다른 사람들과 나눠 볼 수 있는 정말 재밌는 도구이기도 하다.
 


< 집중할 무언가 >
처음으로 내가 카메라에 빠지게 된 계기를 떠올려보면, 스물아홉 살이 되던 해. 남들이 아무리 말해도 과학적인 근거가 없다며 미신이라 치부했던 아홉수가 내게도 찾아왔던 건지, 여러 가지 일들과 복잡하게 얽힌 관계들로 인해 감당하기 힘든 상처들을 겪으며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 매일 밤 침대에 누워 눈을 감으면 안 좋은 생각들이 너무나도 실감 나게 눈앞에 펼쳐졌다. 그렇기에 잠이 드는 게 너무 힘들었고 매번 수면시간을 얼마 채우지 못한 채로 깼다. 그 아침은 마치 "백야"와도 같았고  밤이나 아침이나 전혀 다를 게 없는, 24시간이 늘 외롭고 고독한 밤의 연속 같았달까. 애석하게도 나쁜 생각들은 매일의 나를 분노의 상태로 끓어오르게 만들었다. 해소되지 못한 그 분노들에 짓눌려 화를 낼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을 때 나는 젖은 빨래처럼 무기력해졌고 이내 극심한 우울감이 후폭풍처럼 찾아왔다. 이런 일상은 나를 점점 더 피폐하게 만들었다. 세 번의 계절이 바뀌는 동안 나의 일상은 조금도 변하지 않았고, 결국 머리에 백 원짜리 만한 크기의 구멍이 났다. 조금씩 면적이 넓어지더니 결국 머리에 손바닥 만한 우울의 지도를 그려버렸다. 매일 아침이면 거울을 보면서 떨리는 손으로 이리저리 두피를 더듬으며 머리카락이 더 빠진 곳이 없는지를 확인하는 게 나의 일상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의 아침, 더 이상은 우울감에 끌려다니기가 싫어졌고 건강한 극복을 위해서 집중할 거리가 간절히 필요했다. 우연히 진열장 위의 아버지의 카메라가 눈에 보였고 그걸 가지고 며칠 뒤 혼자 제주도 떠났다.



< 나의 첫 번째 카메라 >
나와 제주도로 떠나게 된 카메라는 시그마의 dp2s 였다. 반강제로 아버지가 물려주신 내 생에 첫 카메라였다. 사실 중학교 수학여행 이후로는 제주도가 처음이었기에, 홀로 섬을 운전하며 마주치는 모든 풍경들이 새로워 보였고 아직은 손에 익지 않은 첫 카메라를 다루며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듯 제주를 담아냈다. 그간 서울에서의 안 좋았던 기억들을 잊기에는 그만한 곳이 없었다. 2010년 즈음 아버지가 구매하시고 6년이 지나 물려받았기에, 사실 당시 나오던 최신 기종의 카메라들에 비해 정말 구식의 카메라였다. 느려 터진 오토포커싱 속도는 말할 것도 없고 뷰파인더도 없어 밝은 날은 거의 보이지도 않는 어두운 LCD 화면을 감에 의지하며 찍어야만 했다. 심지어 스페어 배터리를 두 개나 더 가지고 다녔지만 온종일 찍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로 배터리 효율이 좋지 못했다. 하지만 그때 당시 제주에 집중하며 내 시선을 기록하기엔 크게 문제가 없었고 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모니터로 보게 된 사진의 결과물들은 그동안 우울에 잠겨있던 마음을 조금이나마 잊을 수 있었다. 내 시선들이 기록된 사진들이 점점 쌓여갈수록 집중할 무언가를 내게 알려주는 듯했다. 그렇게 사계절의 제주를 느끼기 위해 일 년 반이라는 시간 동안 네 번의 제주를 찾았고 그 불편한 카메라와 함께 생에 첫 전시회를 소소하게 열기도 했다. 당시의 그 우울감을 떨쳐내려 제주를 찾았던 그때의 기록들로 말이다.



< 달라진 일상 >
일 년이란 시간이 흐르는 동안 내 생활에도 변화가 생겼다. 더 이상 나의 아침에 우울이 찾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분노하기 위해 끊임없이 상대를 찾던 나쁜 생각들도 어느 센가 말끔히 사라져 버렸다. (물론 원형탈모는 워낙 면적이 넓었기 때문에 완벽하게 원상복구 되기까지 3년이나 걸렸지만.) 생각보다 나의 첫 카메라로 인해 바뀐 게 많았다. 끝이 보이지 않았던 우울의 터널을 빠져나와 새로운 시선을 얻었고, 어느 순간 눈으로 보는 것보다 렌즈를 통해 바라보는 게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며 내 시선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이야기를 하는 게 점점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 두 번째 카메라를 만나다 >
내가 카메라에 매력을 느낀 지 3년이 되던 해. 나의 dp2s는 9년이 된, 아주 노장 디지털카메라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배터리는 가용시간이 더욱 짧아졌고 전원을 누른 후 촬영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되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려, 찍고 싶은 장면들을 놓치기 십상이었다. 여행을 할수록 dp2s로는 꼭 담고 싶은 순간을 담아내는데에 점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정이든 첫 번째 카메라를 진열장에 다시 넣어두고 나는 두 번째 카메라를 찾기 시작했다. 두 번째 가지게 된 카메라는 소니의 A7m2 였다. dp2s는 렌즈 교환식도 아니었고 고정 화각이었기에 앞뒤로 열심히 뛰어다니며 촬영을 했는데, 두 번째 카메라인 A7m2에는 줌렌즈를 장착했고 인터페이스도 빠르고 편했다. 마치 오랜 시간 모래주머니를 달고 훈련을 하던 달리기 선수가 모래주머니를 푼 채로 트랙 위를 달렸을 때의 그 홀가분함과 비슷했을지도. 그렇게 조금 더 쾌적해진 카메라와 함께 본격적으로 순간을 기록하는 데에 더 집중할 수 있게 되었다.


< 확장 >
카메라가 없던 나의 일상과, 카메라를 통해 보게 된 후의 나의 일상엔 확실히 많은 것들이 달라졌다. 어쩌면 아직까지도 우울한 아침을 맞이하고 있었을 수도 있고, 또 하나의 재미를 발견하지 못해 삶이 무미건조했을 수도 있다. 운이 좋게도 마음에 쏙 드는 기록의 도구를 만나,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순간들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오랜 시간 잠들어있던 관찰의 세포들이 깨어나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소중한 일상의 기록들이 점점 쌓여갈수록, 새로운 세상을 담고 싶은 욕구가 점점 강해졌고 나의 기록의 반경들은 점차 넓어지기 시작했다. 시간과 돈을 만들어 여행을 다니며 새로운 장소와 새로운 장면들이 내게 안겨주는 자극을 느꼈고, 정신없이 그 자극을 쫒는 와중에 만난 인연들로 인해 나의 일의 형태에도 자그마한 변화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감사하게도 내 시선의 결과물들이 마음에 들었는지 카메라로 인해 생활에 보탬이 될 정도의 쏠쏠한 일거리들이 생겨났고, 덕분에 그동안 카메라를 알아가는 데에 들었던 시간과 돈에 대한 부담을 조금은 덜었다. 나는 그렇게 카메라를 통해 번 돈들을 카메라를 더 알아가는 데에 조금 더 투자하기로 했다.



< 첫 필름 카메라를 만나다 >
사실 필름 카메라는 단순한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여자 친구는 기억에 남는 생일 선물을 주고 싶다며, 한 달 정도 시간을 줄 테니 갖고 싶은걸 정해두라는 말을 내게 했다. 마침 한창 필름 카메라에 대해 관심이 생겨나던 시기였기에 여자 친구의 말을 듣자마자 사실 별다른 고민 없이 0순위로 필름 카메라를 생각해놨다. 하지만 필름 카메라에 대한 정보나 지식이 전무하던 시기였기에 첫 필름 카메라로 어떤 카메라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주어진 한 달이란 시간 내도록 했던 것 같다. 웹상에 소개된 유명한 필름 카메라들에 대한 스펙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도대체 무슨 소린지도 모르겠고 디지털카메라와는 또 다른 세계가 있는 듯했다. 흥미 있던 부분은 디지털카메라와는 다르게 대부분의 필름 카메라들은 생산이 중단되었기 때문에 짧게는 10년, 길게는 60년도 훌쩍 넘은 중고들이 거래되고 있었다. 우선은 좋은 상태의 중고 필름 카메라들을 구할 수 있는 판매처들을 찾아내는 게 관건이었다. 며칠간의 검색 끝에 상태 좋은 카메라들을 구매할 수 있는 판매처들을 몇 군데 찾아냈고 구매가 가능한 카메라들 중에서 내 취향을 추려나가기 시작했다. 아침에 눈뜨자마자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직전까지, 병적으로 관심 있는 카메라 기종을 구글링 하며 결과물에 대한 정보들을 얻었다. 똑같은 카메라여도 사용된 필름의 종류와 렌즈의 차이 때문에 생기는 여러 가지 결과물의 변수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마저도 거진 한 달 내내 들여다보고 있으니 약간의 감이 생겼다. 심지어 좋은 상태의 물건이 여러 대 존재하지도 않기 때문에, 좋은 상태의 카메라가 입고되었단 소식이 들리면 순발력 있게 판단해야 상태 좋은 카메라를 놓쳐버리는 불상사를 막을 수 있었다. 그때 당시 주식 현황판을 보며 매수, 매도 상황에 한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사람들의 심리를 조금은 이해했달까. 그렇게 고심하고 고심한 끝에 정한 첫 필름 카메라는 70년대 독일에서 출시된 EXA 1b 였다. 심지어 박스와 매뉴얼까지 있는 아주 좋은 상태였고, 여자 친구에게 선물 받은 '첫 필름 카메라'로 인해 난 또 다른 세계에 빠져들었다.


< 조금은 다른 리그 >
햇살 좋은 주말.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첫 필름 카메라를 를 들고 나왔지만, 완벽한 수동 카메라이기에 촬영 방법은 고사하고 필름을 제대로 끼우는 것부터가 문제였다. 어찌 저지 유튜브를 찾아가며 필름을 넣는 법을 겨우 익히고 한참을 찍었지만 필름이 제대로 장전되지 않아 많은 장면들을 날린 날도 있었고, 심지어는 이틀 동안 무한히 찍히는 카메라가 하도 이상해 결국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열어보니, 필름을 넣은 줄 알고 열심히 찍었던 '필름 없는 영혼의 카메라'였던 적도 있다. 그만큼 디지털카메라와는 완벽하게 다른, 적응하기 힘든 수동 필름 카메라를 호기심으로만 대하기엔 보이지 않는 벽이 느껴졌다. 본질적인 카메라의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도가 너무나도 부족했고 공부가 필요해 보였다. 디지털카메라는 뷰파인더에 보이는 그대로 찍혔기에 내가 보고 있는 장면을 담는 게 너무나도 당연하고 쉬웠다. 사실 이론도 잘 모른 채로 수년을 다뤄왔고, 당시 나의 의도와 조금은 다르게 찍혔다 해도 포토샵을 통해 후보정을 하며 아쉬운 부분들을 채울 수 있었다. 하지만 완벽한 수동 아날로그 카메라 앞에 서니 나는 얄팍한 사기꾼이 된 것만 같았다. 더구나 필름에 대한 수요가 줄어들며 날이 갈수록 필름 값은 점점 비싸졌고, 셔터 한방이 돈으로 느끼 지기 시작하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간극으로 내가 얻은 것 >
마치 당장 필름 카메라를 익히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사람처럼 당시 내 머릿속엔 온통 카메라 생각뿐이었다. 사실 필름이던 디지털이던 사진이 담기는 메커니즘에 대한 이해가 필요했는데, 그중에서도 빛을 수치로 느낄 줄 아는 '감을 가지는 것'이 가장 우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빛을 읽어낼 줄 알면 카메라 메커니즘의 기본이 되는 조리개 값과 셔터스피드에 대한 궁금증들을 해결할 수 있을 거 같았다. 편리하게도 현재의 광량에 맞는 조리개 수치와 셔터스피드 값의 수치를 볼 수 있는 애플리케이션이 존재했다. 하지만 매번 촬영을 할 때마다 애플리케이션을 켜서 광량을 체크하며 촬영을 하는 게 번거롭기도 하고 궁극적으로 메커니즘에 대한 정확한 공부가 되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애플리케이션 상의 수치를 정답지 삼아 나의 감을 비교하는 연습을 매일 같이했다. 두어 달간 빛을 읽는 연습을 하고 나니 얼추 카메라의 메커니즘이 머릿속에 정립이 되었다. 또 그 시간 동안 또 다른 한 가지의 변화가 생겼는데, 바로 사물에 대한 관찰력이었다. 어쩌면 디지털카메라는 편리함과 한계의 폭을 줄여주었지만, 관찰에 대한 기민함을 내게서 빼앗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빛으로 인해 사진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에 대해 피부로 느끼게 된 순간이었다.


< 다양한 빈티지 카메라들을 만나다 >
첫 번째 수동 필름 카메라로 20 롤 이상 테스트를 하다 보니 수동 카메라에 대한 자신감이 어느 정도 붙었고, 서서히 다른 카메라들이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심지어 오래된 필름 카메라들은 국가와 생산된 연도에 따라 우리 모두가 아는 역사와 맞물려 있기도 해, 그 시대를 내 손으로 직접 느낄 수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에 오묘한 기분이 들었다. 예를 들면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기 전의 독일의 카메라, 방사능으로 렌즈를 코팅해서 지금의 렌즈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질감의 M42 렌즈들, 광학기술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던 시기에 만들어진 각 나라들의 카메라들을 보면 그 나라 만의 느낌이 분명히 존재한다. 심지어 50,60년도 더 된 카메라에서 요즘의 카메라에서도 느낄 수 없는 마감의 완성도와 제품력을 보여주는 카메라들도 있다. 난 더욱 다양한 수입처들을 돌며 다양한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빈티지는 단순히 오래된 게 아니라 역사를 느끼는 물건이라는 매력에 완벽하게 홀려 빈티지 카메라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첫 번째 필름 카메라인 이하게의 exa1b를 시작으로 롤라이플렉스의 SL35M, 자이즈이콘의 Super B, 보이그랜더의 bessamatics M, 제니트의 ET, 그라플랙스의 graphic35, 미놀타의 x300, 올림푸스의 pen 시리즈, XA 시리즈 등. 수십 년간의 역사들을 기록했을 그 물건들을 나의 진열장에 채우기 시작했다. 개인의 기록을 담았던 물건에 역사가 더해진 모습들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묘해졌다.



< 두 번째 모래주머니 >
그렇게 거의 몇 달간을 필름 카메라에 빠져있었다. 아침에 눈떠서 잠들기 직전까지 만지고 궁금한 빈티지 카메라들을 검색하다 잠드는 몇 달. 어느새 디지털카메라에는 여간 손이 가질 않았다. 그러다 상업 촬영 일정이 생겨 오랜만에 디지털카메라로 촬영을 하게 되었데, 뭔가 전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단순히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에서 오는 차이가 아니라 뷰파인더를 통해 사물을 보는 나의 관점에 이전과는 조금 다른 변화가 생긴 듯했다. 필름 카메라를 익혀가며 빛을 읽는 법이나 신중하게 사물을 관찰하는 습관들이 생겨서 인지 여러 장 찍고 나중에 건지 자라는 식으로 그동안 쉽게 셔터를 눌러오던 내가, 더 이상 셔터를 남발하지 않게 되었다. 마치 저격수가 한 발의 방아쇠를 신중하게 당기듯 말이다. 그러다 보니 촬영을 마치고 난 후 A컷을 고르는 시간도 단축되었고, 결과물 역시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치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첫 카메라에서 두 번째 카메라로 넘어갔단 그때의 기분. 모래주머니를 풀고 전속력으로 내달리는 것 같았던 그 희열을 다시금 느꼈다.


< 카메라라는 물건을 통해 내가 얻은 것 >
빈티지 카메라를 수집하는 건 현재는 멈춘 상태이다. 카메라에 대한 애정이 식어서라기 보단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시작했던 컬렉션이었기에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카메라들은 어느 정도 경험해봤다는 생각이 들어 잠시 멈춰뒀다. 1년 동안 다양한 카메라들을 수집하며 누리게 된 생활의 활력과 피사체를 대하는 나의 시선이 변화된 것만으로도 이 컬렉션은 나에게 큰 의미를 선물했다. 우울함을 떨쳐내기 위해 만났던 물건으로 인해 자존감이 회복되며 점차 삶이 달라졌다. 어쩌면 좀처럼 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던 그 힘들었던 시간들을 떠올리면서도, 아름다웠다 추억할 수 있는 것도 카메라가 가진 기록의 힘이다. 가슴 아픈 일상이든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듯한 오늘의 평범한 일상이든 모이면 의미가 생긴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언젠가 마음의 쏙 드는 물건으로 인해 일상을 깨워줄 터닝포인트를 마주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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