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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Sep 28. 2016

팥빵 이야기

지금의 나는 심각한 팥빵 매니아다. 달콤한 단팥빵도 좀 거친 통팥빵도 좋고 생크림이 같이들어간 팥빵도 좋고... 아 그리고 팥뿐만 아니라 앙금도 너무나 좋아라해서 만주도 호두과자도 앙금들어간 모든 빵을 사랑한다. 그런 빵이 내 눈앞에 있다면! 나는 참지 못하고 (설령 그게  굳은 다의어트 결의 10초 후라 하더라도) 손을 뻗어 그 빵을 베어물것이다. 나는 인내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으니까....


이런 내가 사실은 팥빵을 좋아하지 않았던, 아니 싫어했던 시기가 있었다. 사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팥빵은 도대체 왜먹는지 이해를 못했다. 이 세상에 다른 맛있는 빵도 많은데 왜 하필 팥빵을..?이라는 생각이었다. 


우리 외할아버지 외할머니는 엄마가 국민학생이던 시절 대전에서 빵집을 했다고 한다. 학교 갔다와서 빵집에 들어서는 순간의 냄새가 아직도 기억난다고 했다. 학교 다녀와서 처음맡는 그 냄새와 함께 잘 다녀왔니, 하는 인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유년시절의 향이다ㅡ고 엄마는 회상한다.  천부적인 소질을 가진(?)제빵사였던 외할아버지의 명성이 자자해져서 빵집은 점점 커졌고, 나중에는 대전에 세개 점포를 낼 정도로 커졌단다. 그러나 제빵사로서의 무료한 삶을 견디지 못하고 외할아버지는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셨고...결국 빵집을 모두 말아먹고 서울로 이사를 갔다는 소설책에나 나올법한 이야기를 겪으며 엄마는 자랐다. 


어린시절 엄마의 정체성은 빵집 딸이었고, 그래서 엄마는 빵을 좋아한단다~ 라고 웃으며 이야기하면서 빵을 먹는 우리 엄마의 표정은 너무나 행복해 보였다. 엄마가 빵집 딸이었을 때 크로와상이나 패스츄리, 바게뜨나 깜빠뉴같은 빵이 있었을 리 만무하다. 엄마가 사랑하던 빵냄새는 팥빵, 꽈배기도너츠, 곰보빵의 냄새였다. 엄마는 아직도 그 냄새를, 그 빵들을 사랑한다.


처음 집에 팥빵을 사온 날이 기억난다. 요즘처럼 팥빵 체인이 마구 늘어나기 전의 일이다. 인사동에서 친구와 놀다가 출출했고, 팥빵만 파는 빵집이 신기해서 그냥 하나 사가본 것이었다. 얼마나 자신있으면 팥빵만 파는거지?, 내지는 마침 인사동이고 하니 좀 토속적인 빵을 먹어볼까?,하는 생각으로 그닥 좋아하지도 않은 팥빵을 사먹었고 먹다가 배불러서 남은것을 집에 가져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가 잠깐 세수하러 간 사이 엄마가 식탁위에 올려둔 빵을 잽싸게 먹어버리고 "아 맛있당+_+~" 하며 기뻐하고 있었다. 식탐이 강한 나는 내것을 먹어버린 엄마에게 비난의 눈초리를 보내며 내...내껀데?.?라고 말하려 했으나... 엄마는 진심으로 행복해 하고 있었다. 내가 뭘 하면서 애교를 떨어도 엄마가 저렇게 행복하지는 않을텐데.... 팥빵한테 완패당했다.


빵은 참 신기하다. 탄수화물... GI지수가 참 높을것이다. 먹으면 당이 뽝 오르겠지....

그렇게 당이 오르면서 그와함께 이토록 사람에게 행복감을 줄 수 있는 것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이 작고 사소한 밀가루 덩어리가 딸인 나보다 엄마를 더 행복하게 웃게 하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그 다음부터는 가끔씩 내 기분이 좋을 때마다 팥빵을 사들고 집에 가기 시작했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부터는내 기분이 안좋을 때에도 팥빵을 사게 되었다. 그렇게 습관이 되고 버릇이 되었다. 참새가 방앗간을 못지나치듯이 빵집을 지나치지 못하게 되었다. 팥빵도 가지각색이라, 어떤 팥빵이 맛있는지, 엄마는 어떤 팥빵을 더 좋아하는지 알게 되었다. 팥빵계에서는 이름있는 빵집들은 다 찾아다녀 보게 되었다. 가끔씩 우연히 지나치다가 마주치는 동네 빵집 팥빵이 맛있으면 마치 길에서 만원쯤 주운듯 행복해지곤 했다. 


나는 내가 팥빵을 사왔을 때의 엄마의 환호성을 좋아한다. 


평범한 아줌마가 된 우리 엄마는, 아직도 가끔씩 내가 어릴적에는 허리가 23인치였어...라는 말을 한다. 물론 사실 여부는 확인할 수 없다. 어쨌든 지금의 우리 엄마는, 무릎이 아파서 살빼야한다고 말하면서도 운동이라고는 동네 한바퀴 15분만에 돌고 오는 게 전부면서 눈앞에 놓인 빵은 언제 어디서든 덥석 집어무는 사람이다. 

팥빵을 열개를 사와도 다음날이면 다 사라져 있는 조금은 문제있는 우리 엄마가 팥빵을 먹으며 베실베실 웃는 것이 좋다. 


그래... 내가 빵순이가 된것도

빵먹느라고 살찌는것도

다 엄마때문인거지...고럼고럼...


나는 팥빵에 중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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