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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J Jul 18. 2016

나는 당신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나는 이해한다는 말을 신뢰하지 않는 인간이었다. 이해한다는 말은 복잡한 맥락을 무시한 채 편리하고도 단순하게 그것을, 혹은 너를 바라보고 있다는 무신경한 자백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었다. 나 역시 남들처럼 습관적으로 아니면 다른 마땅한 말을 찾지 못해 그 말을 할 때가 있었고 그러고 나면 낭패해 고개를 숙이곤 했다. 다른 사람들에게 들었을 때는 나중에 좋지 않은 심보로 그 말을 되새겼다. 그런데 그 밤에 그가 내 등을 두드리며 너를 이해할 수 있다. 이 사람이 나를 이해할 수 있다면 나도 해볼 수 있지 않을까. 저 날의 나를 내가 이해해볼 수 있지 않을까. 

-황정은, 웃는 남자 중에서


공감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sympathy가 아닌 empathy를 가져야 한다고 배웠다.

시험문제에 항상 나오곤 했다. "sympathy와 empathy의 차이에 대해서 설명하시오."

교육 받으러 가면 밑의 동영상을 보여주곤 했다. 

https://youtu.be/1Evwgu369Jw?list=PLmHmICyEzbjZELowSuV5_mM6Xv1kJ_wDc


연습을 굉장히 많이 했었다. 국가고시 실기시험을 볼 때 환자 의사와의 관계를 점수화하는 항목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환자의 아픔에 공감을 해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모의 환자들 앞에서 기계적으로 "정말 힘드셨겠네요" 하는 연습을 반복적으로 했었다. 내 앞에 있는 환자가 배가 아픈 환자든, 열이 나는 환자든, 어지러운 환자든 상관없이 반복적으로 정말 힘드셨겠네요, 라고 공허하게 말했다. 당시의 나에게는 그 한마디가 내가 할 줄 아는 공감의 전부였다. 


지금 나는 누구보다도 공감을 해주어야 하는 사람인데

정말 힘든 사람 앞에서는 나는 아직도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정말 바빠 죽겠고, 내몸 가누기 힘들때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나는 "그래 그럴 수 있지 뭐"라고 생각해 버리곤 했다. 환자가 우울하다고 하면 그래, 그냥 너는 우울한 사람이니까 우울한 게 당연해. 환자가 갖가지 것들이 다 불안하다고 하면, 그래 그냥 너는 불안한 사람. 이렇게 단정지어 버리곤 했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결론지어 버렸다. 너는 그런 사람이니까 그런거야, 라고 생각해 버리는 것은 정말 쉬웠다. 그렇게 단정짓고 "정말 힘드셨겠네요"까지 콤보로 했던 날이면 정말 스스로가 가증스럽게 느껴졌다. 


그 누구도 궁극적으로 내가 될 수는 없기 때문에 결국에는 나를 이해하지 못한다, 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이 환자 본인이 될 수 없기에 이 사람을 영영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정말 힘드셨겠네요."라는 한 마디가 그래, 바로 '무신경한 자백'이라고 생각했다.  온몸을 터뜨리면서 자신의 고통을 토해내는 환자들 앞에서 나는 아...네..........외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때도 있었다. 내가 하는 말이 그 앞에서는 너무나 작고 사소해서 뭐라고 말하는 순간 내 말이 우스워질 것만 같아서, 무서워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버릇처럼 공허하게 "정말 힘드셨겠네요"라고 말했던 날에는 "선생님이 어떻게 알아요!" 는 비난의 말을 듣고 단 한마디도 반박할 수 없었던 날들이 있었다. 


지금은,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내 딴에는 꽤나 필사적으로.

쉽지는 않다. 정말 많은 생각을 요하는 일이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수없이 많은 것들을 알아야 한다. 그 사람이 어떻게 말하고 어떤 눈을 하고 있는지, 어떻게 먹고 마시는지, 어떻게 돈을 버는지, 어떠한 아버지와 어머니 밑에서 어떻게 자랐는지, 어떻게 관계맺고 어떻게 사고하는지, 어떻게 즐거워하고 어떻게 좌절하는지 하나하나 알아나가야 한다 . 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이 상상해야 한다. 나라면 내가 저 사람이었다면 그랬다면 어땠을지, 저 사람이 느끼는 저 감정을 나도 같이 느낄 수 있을지. 그리고 나서는 결국에는 또다시 질문 또 질문을 던져야 할 것이다. 나의 상상은 궁극적으로는 내 것이므로, 네가 아니므로. 결국에는 또 질문한다.




"선생님은 몰라요"

라는 이야기를 들었던 날, "그래요. 난 몰라요"라고 단정적으로 대답해 버린 적도 있다. 

나는 영원히 당신을 이해할 수 없어요. 당신의 고통을 이해할 수 없어요. 나는 당신처럼 아프지 않은걸. 당신이 아무리 열심히 어디가 어떻게 얼마만큼 아픈지 아무리 자세히 매일같이 줄줄히 말해줘도 내가 그 고통을 느낄 수 없는 이상 나는 아마도 당신의 고통을 영원히 이해하지 못해요. 그게 당연해요. 

그렇지만

나는 당신처럼 아프지 않은 사람이지만 적어도 당신이 얼마나 아픈지 정말 있는 힘껏 최선을 다해서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고자 합니다. 

이해해 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나도, 결국에는 내가 경험한 세상만을 이해할 따름입니다

나도 인간이니까요


공감해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때로는 공감하는 척 했던 것 미안합니다

사실 나는 당신의 아픔의 반의 반의 반의 반도 모르는 사람이라서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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