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가 닳도록 질문받았다.
"왜 정신과를 선택했어요?"
그 질문은 절대로 쉬운 질문은 아니었고 나는 항상 적당한 미소와 적당한 표정으로 "하하하...그냥요...그냥 재미있을것 같아서요..."라고 얼버무리곤 했다. 그 이상으로 나에게 꼬치꼬치 캐묻는 사람은 없었다.
소의는 병을 고치고, 중의는 사람을 고치고, 대의는 사회를 고친다...라는 말을 의대 생활 내내 듣는다. 여러분은 병이 아닌 사람과 사회를 고치는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얘기를 귀에 못박히게 듣곤 하지만.... 그간 책상앞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국가시험을 갓 치루고 면허증 하나 딸랑 얻은 내 머리에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쓰잘데기 없...다고만은 할 수 없지만, 결국에는 내 머리속에서 찬란히 스러져 갈 찌꺼기 지식들의 나열뿐이었다. 나트륨이 떨어지면 어쩌고...열이 나면 어떻게 하고... 배가 아프면 어쩌구.....뭐를 감별하고 뭐를 배제하고 그 후에 뭐를 검사하고... 그런 것들 말이다.
그런 찌꺼기 지식들 중 일부인 정신과에 대한 나의 느낌은 "음....참으로 애매하군...ㅎㅎㅎ" 정도로 요약해볼 수 있겠다. 내과 소아과 외과 등등 다른 모든 과들에서는 환자의 증상을 자세히 관찰하고, 진단하기 위해서 이것저것 검사할 것들을 골라내고, 검사 결과를 보고 나서는 아닌 것들을 배제하고 바로 이 병이로군!하고 감별한 후 거기에 딱 맞는 치료를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그렇지만 정신과는 좀 다르다. 정신과에서는 환자의 증상을 보고 이...건...가?라고 수줍게 진단해서 일단...이걸....써볼...까?음? 나아지네 이거 맞나?...의 느낌으로 치료를 한다. 참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복잡미묘한 애매함이 있는 과였다, 정신과는. 그런 점이 다른 과들과 너무나 비교되어서 학생들 사이에서 정신과에 대한 호불호는 정말 극명하게 갈리는 편이었다. 이게 사이언스인가!라고 맹비난을 퍼붓는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바로 그 애매함 자체가 매력이라고 하는 아이들까지 다양했다. 나로 말하지면...그 스펙트럼 중에서는 맹비나..ㄴ...쪽에 가까웠던 것 같다. 그래, 그랬던 것 같은데... 나는 왜 정신과에 와있는 것일까....
나는 살면서 나 스스로 사소한 것에서 즐거움을 잘 찾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니 잘 찾고 싶은 사람이고자 했으나, 그렇지 못했던 경우가 더 많았다.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나는 훨씬 더 무섭고 혐오스러운 사람이었고, 나를 가장 우선에 두고 생각하는 진짜진짜 이기적이고 못되 쳐먹은 사람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화도 잘내는 사람이었고, 충동 조절도 잘 안되는 사람이었다. 입도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쪼끔 더 험한 사람이었다. 내가 잘 모르는 나의 모습이 자꾸자꾸만 나타날수록 나는 항상 미궁속을 헤매는 기분이었다.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나는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정신과적인 증상은 피검사 결과처럼 숫자로 딱딱 떨어져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환자의 정신상태 검사 (metal status exam)은 정말이지 태생적으로 주관적이다. 의사의 관찰과 의사의 잣대로 평가된 환자가 그대로 적힌다. 그렇다면, 정신과 의사가 되기 위해서라면 명확한 잣대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보다 나를 잘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나를 가장 잘 알 수 있게 되지는 않을까.
나를 알기 위해 정신과를 선택하였다고 말하는 것은 내가 생각해도 되도 않는 말이다. 사실 단 한번도 그 누구에게도 말해 본적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환자가 궁금해서도 아니고 내가 궁금하다는 것이....그냥 웃기긴 한것같다. 사실 이마저도 이렇게 저렇게 갖다 붙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는 말이 더 맞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궁금하다.
앞으로의 내가, 나는 가장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