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성장을 위한 자양분이라고
'MZ세대'라는 황송한 범주화에 합당하게도 나는 새로운 인연을 데이팅앱으로 찾는 편이다.
너무도 잘난 선남선녀들이 온갖 사진으로 본인의 퍼스널 브랜딩을 통한 목적(원나잇 혹은 LTR) 달성에 다가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보이지 않는 치열한 전투의 장.
나이가 찬 만큼 피부 속은 비어가는 게 느껴져 괜히 의기소침해진다.
오랜만에 좋아하는 유튜버인 '풍자'의 쓴소리 영상을 몇 개 챙겨본다.
당연하게 여기던 '어림'이 사라진 지금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아보라며.
나만의 매력을 갈고닦음으로써 사랑받을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미 축복인 게 아니겠냐며.
하나하나 친한 누나가 나에게 해주는 쓴소리 같아서 여느 때보다 더 깊숙이 와닿는다.
* 며칠 간의 초조함과 외로움, 불안감이 오늘은 '빵을 실컷 먹고 싶다'라는 욕망으로 표출됨을 느꼈다. 일도 손에 안잡히고 사는 곳 주변의 빵집이 몇 시에 문을 닫는지, 살 수 있는 빵의 종류는 무엇인지, 나의 지갑 사정이 어떠한지 쉴 새 없이 계산기를 두드렸다. 그러는 동안 마음은 쉴 여유를 잃고 자아는 피곤해지는 듯 하다.
밥을 먹고 돌아와 따끈한 커피에 내가 좋아하는 '오뜨'를 한 조각 베어문다.
세상이 달라보이고 '살 맛'이 느껴졌다. 이렇게나 황홀하다니.
그 다음에 베어문 '브라우니'는 그닥 임팩트가 세지 않았다.
그렇다
마트에서 소분해 800원에 파는 '오뜨' 한 조각이면 충분하다. 삶의 소소한 기쁨이라는 게.
빵집에 가서 미친 듯한 물가 덕에 몇 개만 집어도 만 원이 훌쩍 넘을까 아등바등 하지 않아도 되고
'이건 몇 칼로리', '저건 지방함량이 몇 그람'하며 이리저리 초조하게 재지 않아도 된다.
한 조각이면 되는 것을.
삶도 그런 게 아닐까 싶다.
내 할 일 잘 하고
좋은 사람 만나서 잘 대해주고 서로 보살펴 주고.
사람을 쇼핑하듯 고를 수 있다는 착각을 끊임없이 주입시키는 "大데이팅앱시대"를 살아가면서
늘 자신을 돌보고 돌아봐야지만 무너지지 않을 수 있다.
오늘은 그동안 모아둔 잔돈을 들고 집 앞 조그마한 과일가게로 갔다.
가격이 너무 오른 아몬드 대신 아침에 건강한 견과류를 땅콩으로 대신하고 있다.
'엘릭서'를 먹은 것 마냥 눈에 띄게 달라지는 점은 없지만 그래도 좋다. 맛있고 스스로를 돌본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다. 어릴 때 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의 아몬드씬 이후로 늘 내게는 하나의 로망이 되었다 아침에 챙겨먹는 건강한 견과류라는 것이.
잔돈이 좀 더 남아서 두 개에 3천원 하는 끝물 한라봉을 산다.
알이 굵고 꽉 찬 것들은 이미 들어갔고 자잘자잘한 귀여운 꼬마 한라봉들이 가판대를 가득 채웠다.
당장 먹지 않아도 방 한 구석에 두고 보고 있자면 싱그러운 시트러스의 힘이 나에게 활력을 주는 것 같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