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동 친구 결혼식에는 잘 참석하고 왔다. 결혼식날 날이 참 좋았다. 적당히 흐리지만 해가 떠 있었고 춥지도 덥지도 않은 그런 날씨. 꽃과 풀들이 가득한 실내 인테리어와 고급진 웨딩 오브제들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찌질한 장난을 주고받던 친구는 근사한 양복을 입고 새 신랑이 되어 있었다. 여러 사람에게 인사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키워낸 것도 아닌데 뭔가 부모님 마음을 알 것도 같았다.
12월부터 이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서 영끌 다이어트를 진행해 왔고 약 6kg를 감량했다. 80kg에 육박하던 몸이 지금은 72kg 정도까지 내려왔다, 목표는 63~66kg 정도이다.
친구 결혼식에 양복을 입고 참석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시작한 다이어트였는데, 결국은 나 스스로가 행복해지기 위한 여행길에 오른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이어나가야 할 길고 힘들지만 보람찰 여행길.
간소하지만 알찬 식이 진행이 되고 신랑신부 입장 순서에서는 나도 모르게 열정적으로 박수를 칠 수밖에 없었다. '잘 살아라' 이 말이 계속해서 내 입 밖으로 스며 나왔다. 이 친구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에
저렇게 크고 근사한 한 사람의 성인이 되어서 또 다른 가정을 꾸려나간다는 게 참 멋지고 대단해 보였다.
스테이크와 세미 뷔페가 곁들여진 식사는 훌륭했다. 같은 자리에 오랜만에 보게 된 대학 친구들과 대화를 주고받았다. 곧 결혼할 또 다른 친구의 예비 와이프분은 본인 남자친구가 대학 때 어떠했는지 조심스레 물어왔다.
정말 있는 그대로 솔직하게 꽤나 괜찮은 친구였고 늘 바쁘고 성실하게 움직였으며 여러 동아리에서 활발한 활동을 했노라고 이야기했다. 내가 혹여나 말실수를 한 건 없을지 걱정이 잠깐 되었지만 전혀 하지 않은 듯싶어 다행이다.
모든 식이 마치고 하객 대부분이 돌아간 시점에, 친구와 와이프님은 공항으로 향했고, 나는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와 이야기를 계속 이어나가면서 주변의 이태원 구경을 했다.
몇 년 만에 와보는 이태원은 여전히 여러 나라의 분위기가 합쳐진 신비로운 동네였다. 보광동 길을 따라 언덕길을 오르내리락 하면서 그동안 못한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조용하고 담백하지만 천성이 따뜻한 이 친구는, 그동안 연락을 안 한 내게 화도 안 내고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힘내라고 응원도 해주고 나의 처치와 힘든 상황에 공감도 해주었다. 이런 인연은 참 귀한 것 같다.
명분상으로는 내 친구 응원 겸 신랑측 하객 보태기로 나의 양부모님을 모시고 갔다. 사실은 퇴직 후 집에만 계시는 어머니가 걱정되어 건강한 자극을 드리고 싶었다. 이쁜 공간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뜻깊은 체험을 한다는 데에 의의를 두었다. 엄마랑 같이 걸었고 미용실에서 헤어졌다. 드라이를 이쁘게 하고 나오셨다. 역시 사람은 머리스타일이 외모의 절반은 먹고 들어가는 것 같다.
이동 중에도 나는 본능적으로 이리저리 카메라를 움직이며 부모님 특히 엄마의 모습을 담는다. 가능하면 길게 동영상으로도 남겨본다. 그런 시기가 된 것 같다. 지금이 아쉽고 소중한 시간. 더 이상 지금이 당연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버린 나이.
국제마트와 할랄인증 한국음식점, 이집트 음식점, 페르시안 양탄자 가게 등을 지나 모스크 앞에서 사진도 찍고, 주말 저녁 사람이 들이차기 시작한 이태원 거리를 조금 구경하다가 지하철에서 각자의 길을 향해 갈라졌다.
아쉬운 헤어짐을 뒤로한 채 집으로 오는 길은 늘 외롭지만 한편으론 홀가분하다. 집에 가서 방귀나 뿡뿡 뀌면서 코도 파고 아무 생각 없이 b급 감성 유머 영상을 틀어놓은 채 낄낄거리고 싶다.
딴에는 차려입었다고 뒤집어쓴 고급 코트와 겉옷들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진다. 역시 나는 가볍고 훌훌 벗겨지는 운동복이 입기에는 제일 좋은 것 같다고 생각한다.
얼마 전에 알게 된 친구와 술을 먹었다. 복분자 1병, 소주 4병(비타 500 맛 소주 꼭 드셔보시길)을 마신 것 같다. 침대에 엎어져 누우니 하늘이 빙글빙글 돌고 세상이 가만히 있는데도 바이킹처럼 앞뒤로 움직였다. 이 기분이 너무 신기하면서도 겁이 났다. 아저씨처럼 술배가 나올까 봐 무섭다. 다음 날은 열심히 운동을 하리라 스스로 위로하면서 잠자리에 들었다.
일어나자 창밖에는 비가 내리고 머리가 너무 아파왔다. 4월까지는 술을 먹지 않겠다고 스스로 다짐해 본다. 언덕을 따라 비내리는 길을 내려간다. 일요일 오전 예배를 마친 인파가 편안한 얼굴로 각자의 곳으로 돌아가는 모습이 보였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부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나의 부모님 세대이거나 아니면 좀 더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이었다. 그들이 가는 길이 또 다른 차원으로 가는 갈림길처럼 느껴졌다. 옛 세대가 흘러가버리면, 지금의 세대는 씩씩하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당연하게 보내는 일요일 오전에 삶과 죽음, 만남과 헤어짐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다. 어머니 아버지는 어느 길로 가시는 중일까? 저분들은 어디로 가고 계신 중일까? 그 끝이 부디 안식과 평온의 아발론이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