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인처럼 전진

<비바, 제인>을 읽고

by 책선비

책표지에는 한 여성이 나온다. 얼굴에는 눈코입 대신에 작가의 이름과 책 주인공 이름이 교차되어 있다. 작가는 제빈, 주인공은 제인. 자세히 보면 손으로 얼굴을 가린 동작이 바탕에 깔려 있다. 여자의 머리색과 옷 색깔은 진한 주황색이고 책제목 색도 마찬가지다. 책 소개란에서 읽었던 ‘현대판 <주홍글씨>’라는 문구와 딱 맞는 그림이다. 하지만 소설은 ‘주홍글씨’에만 머물지 않는다. 얼굴을 가려야만 했던 사정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얼굴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드러낸다.

아비바는 정치학과 스페인문학을 전공한 대학생이다. 하원의원 레빈의 선거 사무실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다가 그와 불륜 관계를 이어간다. 우연히 일어난 교통사고로 이 사실이 세상에 드러나고 아비바 인생은 끝이 난다. 특히 블로그에 올린 인턴시절 글로 인한 주홍글씨 낙인은 언제 어디서든 살아나서 그녀를 쫓아다닌다. 반면 불륜의 또 다른 주인공 레빈은 하원의원에 재선되며 승승장구는 계속된다.

하나의 사건 혹은 상황은 왜 ‘하원의원 레빈의 불륜스캔들’이 아닌 ‘아비바의 불륜스캔들’로만 명명되고 회자되는가. 왜 한 사람은 더욱 성공하고 다른 사람은 영원히 고통받아야 하는가. 소설은 아비바를 둘러싼 4명의 여성의 이야기를 포함하여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한다. 아비바의 엄마 레이첼, 하원의원의 아내 엠베스, 아비바의 딸 루비 그리고 아비바를 극복한 제인. 각각의 시점으로 펼쳐진 여성의 이야기를 통해 일상 속에 촘촘히 박혀 있는 가부장적 사고와 그 폐해들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또한 제인의 삶을 통하여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엿볼 수 있었는데, 이 소설에서 가장 통쾌하고 강렬한 장면이다.

“어떻게 그 스캔들을 극복했어?” 그녀가 말했다. “수치스러워하기를 거부했어.” “어떻게?” 당신이 물었다. “사람들이 덤벼들어도 난 가던 길을 계속 갔지.” 당신은 가슴을 활짝 편다. 정장 재킷의 단추를 여민다. 머리칼을 단정히 쓸어넘긴다. 당신은 투표지에서 당신의 이름을 찾고, 선택한다” (p.395)


이런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은 죽을 만큼 어려웠을 것이다. 도대체 어떤 힘이 무너진 그녀를 일으키고 영원한 주홍글씨를 이겨내며 시장까지 도전하게 만들었을까. 아마 “무언가를 귀하게 여긴다는 건 사랑하는 거다.” (p.386)라는 외할머니가 해주신 이 말을 기억하고 행동했으리라.

제인으로 이름을 개명한 아비바는 다른 도시에 정착하여 딸 루비를 낳고 웨딩 플래너로 일을 하며 살아간다. 기획자로서 능력을 발휘한 그녀는 마을 사람들의 결혼 과정을 도우면서 그들의 은밀한 어려움을 알게 되었고 친구이자 마을 주민으로서, 동역자로서 그들을 아끼며 격려한다. 루비를 낳기로 결정했을 때 생명을 귀하게 여겼던 마음, ‘약자를 괴롭히는 놈’이자 ‘아내를 괴롭히는 놈’(p.386)이 시장 되는 걸 막고 싶었던 그 마음은 바로 사랑이었다.

사랑에 온전히 반응한 사람은 ‘용기’라는 사랑이 주는 선물을 받는 게 아닐까. 미혼모가 되어 아이를 키우고, 추잡한 정치적 공격에도 선거에 나가도록 한다. 과거의 실수를 인정하되 더 이상 수치스러워하지 않기로 결단할 수 있다. 그녀의 이런 점을 알아보는 사람들이 모이고 응원하며 힘을 준다. 연대를 이루고 세상에 나아가 조금씩 변화를 이끌어 낸다.

“남자의 구십 퍼센트가 마주걸어 올 때 길을 비키지 않는”(p.142)현실에서 ‘충돌하거나 말거나 그를 향해 똑바로 걸어갔’던 제인. 부딪히기 직전에도 계속 ‘전진’(p.167)했을 때 결국 그가 비켰다. 그는 마주 오는 여성이 비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동안 여성이 알아서 피할 것이라고 판단하고 마음껏 팔을 휘두르며 걸었지만 자신이 비킬 때도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더 많은 제인들이 이와 같은 전진을 이어간다면 세상은 조금씩 달라질 것이다. 우리는 제인과 함께 ‘전진’할 수 있는가.

사실, 더 나은 사회는 그냥 주어지지 않는다.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전진하지 않는 이상. 곳곳에 만연한 가부장적 편견의 그림자는 다양한 탈을 쓴 채 존재하고 있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낮은 임금을 받고 드레스 코드대로 입어야 하고 스캔들에 더 큰 책임을 져야하는 현실은 여전하다. 우연히 불륜 커플을 응징하는 중년 여성 모습이 담긴 유튜브 영상을 본 적이 있다. 한 여자가 다른 여자의 머리카락을 부여잡고 옆에 있는 남자의 뺨을 후려쳤다. 그 여자는 두 손 두 발로 다른 여자의 머리와 몸을 감싸며 엄청난 폭력을 가했다. 남자는 말리지도 못한 채 쩔쩔매고 있다. 주변 사람들은 그 폭력적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촬영까지.

가장 화가 난 부분은 가만히 지켜보는 사람들이었다. 남의 가정사에 끼들 수 없기 때문에, 불륜을 저지는 여자가 당하는 폭력은 당연해서, 말리다가 자신이 다칠까봐 등 여러 이유가 있지만 심각한 폭력 앞에서는 어떤 이유도 합당하지 않다. 무엇보다 그의 아내 모습은 어이없다 못해 서글프기까지 했다. 그녀는 부부의 약속을 깨고 다른 여자와 여행을 가려는 남편보다 여자에게 엄청난 폭력을 휘둘렀다. 너무 당당하게 더러운 벌레를 죽이는 것처럼 당연하듯…

소설을 읽는 내내 위 장면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지켜보는 사람 중에 누가 한명이라도 나서서 “왜 불륜 저지는 남편은 가만히 두고 여자에게만 그러냐”고 싸움을 말린다면 어떨까? 당신은 그럴 수 있냐고 물어본다면, 나는 하나의 ‘전진’으로 그렇게 해보겠다고 대답하고 싶다. 나의 이런 행동이 주변 사람들을 종용하는 모습이 될 수 있다. 또는 아닐 수도 있다. 그래도 일단 시도해보겠다. 어쩌면 우리는 시도해도 안될까봐, 결국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비난받고 고통받을까봐 알아서 피하고 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평생 피하기만 할 것인가, 아니면 마주오는 여성이 비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대방에게 알려줄 것인가. 지금까지 제인의 전진을 지켜봤으니 이제는 우리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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