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하라, 가난한 중산층과 불행한 엘리트여!

다니엘 마코비츠의 <엘리트 세습>을 읽고

by 책선비


사전적 정의에 따르면 능력주의란 “개인의 능력에 따라 사회적 지위나 권력이 주어지는 사회를 추구하는 정치철학”을 말한다. 귀족사회와 구분하여 도덕적이고 평등한 이념으로 들린다. 실제로 능력주의는 현대 사회 발전에 큰 역할을 했으며 현재에도 보편적인 진리처럼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 들어 능력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관련된 연구와 책들이 나오고 있다. 특히 예일대 로스쿨 교수인 대니얼 마코비츠는 <엘리트 세습>(세종, 2021)에서 능력주의와 엘리트 계층을 정면으로 비판하고 있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밟아온 저자가 미국 엘리트들이 능력주의를 이용하여 어떻게 새로운 신분제를 만들어 미국 사회를 현대판 귀족 사회로 변화시키는지를 고발한다.


저자는 엘리트 계층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한다. 혁신 기술을 장착한 엘리트는 중산층에게 배당되었던 노동력을 흡수하여 초고소득 연봉을 받으며 자기들만의 공간에서 생활한다. 일자리와 공간에서 밀린 중산층은 더 가난해져서 부유층의 빈부격차가 급격히 벌어지고 하층민과 비슷한 상황이 된다. 범접할 수 없는 ‘인적 자본’이 된 엘리트는 중산층을 몰락시키고 부와 권력을 세습하여 또다른 신분 사회를 만드는 주범이지만 능력주의 덕분에 그 비판을 피해가고 있다. “능력주의의 필수적인 논리는 혜택을 집중하고 차별을 개인의 기량과 노력이 부족하고 기준에 미달한다는 말로 정당화하는 것이다. 다른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분노와 모욕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책은 능력주의의 함정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현실을 보여준다. 몰락한 중산층는 현상 유지조차 어렵고 하류층과 비슷한 처지가 된 현실에 분노한다. 그러나 고액의 자녀 교육으로 지위와 부를 공고하게 만드는 엘리트를 향해 행동하기 보다는 ‘토착주의’와 ‘포퓰리즘’으로 반응한다. 이들은 소수자를 혐오하며 분노를 해소하고, 자기 불만을 들어준 대통령 후보자에게 표를 던진다. 중산층은 분노의 원인을 명확하게 판단했지만 실제로 능력주의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여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움직이기 어렵다. 이들은 “엘리트들처럼 능력주의 혜택을 향유하지 못하는 미국인들은 능력주의의 마력에 여전히 휘둘린다”(p.141) 여전히 노력과 능력으로 자신도 언젠가는 부유층이 될 수 있다는 능력주의 사고 방식에 벗어나지 못하는 게 아닐까. 능력주의가 개인의 꿈과 희망으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이 여전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저자는 교육과 직업적 측면에서 개혁을 제안한다. “최고 명문 학교와 대학에서라도 입시 경쟁이 완화”되고 “엘리트 근로계층에게 집중된 생산이 중산층에게 골고루 분산”(p.461)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국가가 할 수 있는 ‘세금 면제 혜택’이나 ‘공공 보조금과 입학 정원’ 등으로 대학을 압박하라고 제시한다. 또한 중산층 노동자에게 유리한 “생산 제품과 서비스의 종류를 규정”(p.467)하는 방법도 제안한다. 엘리트의 기반이 되었던 두 가지 영역에서 해체가 이루어진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견고하게 버티고 있는 능력주의의 두 가지 메카니즘을 누가 과연 정면으로 공격할 수 있을까? 이런 정책을 수행하고 법을 제정하는 이들이 엘리트 계층일 가능성이 크다.


책은 모든 계층이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제안하는 여러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엘리트의 역할이 필요하고 이는 그들을 위한 일이기도 하다. 저자는 엘리트의 자기 착취적인 모습을 자세히 그리면서 능력주의가 모든 계층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고소득과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경쟁하고 노동해야하는 엘리트 계층도 능력주의에 의해 고통받고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능력주의의 밝은 빛은 부유층에게 가짜 자부심을,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거짓 분노를 심어줌으로써 그에 따른 불평등이 두 집단에 끼치는 해악을 드러나지 않게 하”(p.477)는 능력주의의 덫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이어서 저자는 두 집단이 힘을 합쳐야만 진정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며 “단결하라. 노동자에게 잃은 것은 쇠사슬 이외에 없고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p.478)라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도 엘리트 세습으로 인한 부작용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초숙련된 법조인’ 출신의 정치인은 공정을 외치며 능력주의 신념을 드러내면서 권력을 얻었지만 부유층과 엘리트를 위한 정치를 하고 있다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법조인 출신의 여러 정치인들의 자녀 입시 비리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는다. 저자의 말대로 이들은 “적용 가능한 세금과 규제를 통해 재분배하려는 민주주의적 조치를 좌절시키”며, “적법한 절차와 법치주의는 엘리트가 휘두르는 정치적 도구로 변화해 사실상 계층 전쟁의 수단”(p.145)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한국 사회도 엘리트 귀족 사회와 가깝다는 저자의 진단과 함께 이 책은 우리 나라를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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