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을 읽고
“페미니즘은 그렇게 거창하거나 ‘무서운’ 것이 아니다. 이제까지 잘 들리지 않았던 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여보자는 것이다.”(p.90)
저자 정희진은 여성들의 목소리 중에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그는 여러 이슈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데 여성주의 시각에서만 답하지는 않는다. 스스로를 탈식민주의 관점을 가진 평화학 연구자로 소개하기도 했던 그는 다제학적 관점에서 논쟁들을 분석하고 선명하게 주장을 펼친다. 사회적 통념을 깨고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는 정희진의 의견은 하나의 대안적 목소리로 인정받는 것 같다. 그 시작점에는 2005년도에 출간된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20)이 있다. 남성 중심적 세계관의 모순을 드러내고 대안적 인식론으로서 페미니즘을 자세하게 서술한 책이다. 최근에 15주년 기념판이 나올 정도로 개정과 가정폭력과 성과 섹스 문제, 성매매 특별법, 군 가산점 문제, 묻지마 폭력 등 첨예한 주제에 대해 여성의 언어로 재해석함으로써 많은 독자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책은 페미니즘의 고정관념과 편견을 해소시킨다. 여성주의는 남성을 적으로 두고 모든 여성이 페미니즘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다양한 목소리들이 공존하는 사회를 지향”(p.63)한다. 여성은 사회적 약자 중에 하나이며 “타자의 상징”(p.309)으로 이해하면 된다. 더 나아가 남성들도 여성주의 시각이 필요하고 도움을 받을 수도 있다고 본다. 타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는 여성주의는 결국 언젠가 타자가 될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관점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소수자이며, 어느 누구도 모든 면에서 완벽한 ‘진골’일 수는 없다. 특히 한국 사회에서는 성별과 계급뿐만 아니라 지역, 학벌, 학력, 외모, 장애, 성적 지향, 나이 등에 따라 누구나 한 가지 이상 차별과 타자성을 경험한다.”(p.42)
정희진은 가부장제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한다. 우선 ‘성역할 수행자’로서만 여성을 대상화하는 가부장제가 ‘공·사 영역 분리의 이데올로기’를 기반한다고 강조한다. 여성을 사적인 영역으로 규정한 가정에만 묶어둠으로써 보편적 인권을 보장받지 못하도록 만든다. 가정폭력을 당해도 보호받지 못하고, 가사 노동은 비가시화고, 직장에 나가더라도 남성보다 월급을 훨씬 적게 받는 것이 여성의 현실이다. 이에 대해 여성주의는 비정치적으로 간주된 사적인 영역에 인권 개념을 끊임없이 제기하였고 ‘일상의 정치화’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가정폭력을 포함한 교제폭력, 스토킹 범죄 등 ‘젠더폭력’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기사제목에서 보듯이 “여성 평균임금 남성의 64.9%”, “대기업 女 유리천장 여전…5년간 사내이사 '2.3%' 제자리”라는 현실도 여전하다. 정희진은 15주년 기념판 서문에서, 변화된 것이 없는 여성의 현실을 언급하며 “여성에 대한 폭력, 여성의 급여, 여성의 노동량, 여성 장애인, 여성 노인, 성 소수자, 가난한 여성들의 상황은 달라진 것이 없다. 아니, 더 악화되었다”(p.9)고 주장한다.
책은 한국 여성주의의 핵심 쟁점인 성매매 방지법 논란을 심도 깊게 서술한다. 성매매 방지법은 성매매를 방지하고, 성매매 피해자 및 성을 파는 행위를 한 자의 보호와 자립을 지원하기 위해 제정된 법으로 2004년에 제정, 시행되었다. 그러나 정작 성판매 여성들은 여성운동가들이 모든 성매매 형태를 동일하게 본다며 격렬하게 반발했다. 타자로서 여성의 위치를 인식한 여성주의에게 “여성 내부의 타자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수용”(p.225)하고 해결할지가 중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정희진의 지적처럼 성판매 여성을 주체로 생각하지 않은 점과 성을 사는 남성에 대한 문제제기의 부재 때문에 “여성운동이 여성을 억압하는 딜레마”(p.224)에 빠지게 된다. 대안적의 목소리였던 여성주의가 성매매 찬반 논쟁을 넘는 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한 것이다.
저자는 이 문제를 둘러싼 여러 입장을 서술하고 다른 나라의 성매매 상황과 비교하면서 다각도로 분석한다. 정희진은 성매매 ‘근절’이라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접근했던 태도에서 벗어나 “성판매 여성과 대화의 폭”을 넓히고, 보다 “다양화, 다원화되어야 한다”(p.259)고 강조한다. 혼란과 모순 속에서 정희진의 통찰은 빛나지만 여성 억압적 태도가 우리 사회에 얼마나 뿌리 깊은지를 보여주고 있어 암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이러한 시행착오와 경험의 공유는 여성운동가 뿐만 아니라 많은 대중들이 사회적 약자의 타자화에 대해 예민하게 인식하고 더 고민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은 여성주의의 개념과 필요성을 핵심 논점과 함께 충실하게 서술한 페미니즘 기본서이다. 대안적 시각을 위한 인식의 변화와 사고의 전환을 일으키는 세계관 교과서이기도 하다. 현재 진행되는 논쟁적 이슈에 대해 여성주의 시각에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을 만큼 구체적이다. 다만, 책이 다루고 있는 과거의 사건에 대한 배경과 내용이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지 않아 일부 독자는 내용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안적 목소리로서 페미니즘의 장점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없는 책이다. 여성주의 시각에 대한 궁금증이나 의문을 가진 사람이나 더 알고 싶은 독자에게 추천한다.